어느 인사담당자의 경험은 그대로 두면 그냥 한 사람의 경험일 뿐이지만, 그 경험이 공유되면 다른 경험을 만들어가는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기존의 글들보다는 조금 더 주관적인 인사담당자 Opellie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기억의 조각에 크고 작은 살을 붙였기에 기본적으로 브런치북 '인사담당자 Opellie'는 실제 인물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인사담당자의 시간을 기록합니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늦은 저녁 핸드폰이 울린다. 본부장님의 다소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략적인 상황을 듣고 가장 먼저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한다. 관련 법령을 재확인하고 이후 진행 상황 등을 현재 버전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구성원 한분이 사고가 났다고 했다. 문제는 그 사고가 난 상황이 다소 모호했다. 내 판단으로는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볼 여지와 그렇지 않을 여지가 동시에 존재했다. 내 생각을 정리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자문 노무사와 통화를 하면서 내 생각, 판단을 점검했다. 긴급 사안이니 아침 일찍 회의가 잡힌다.
대표이사님 실에 들어가자 인사임원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나보다 먼저 대표이사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건 당연히 산재 승인 되죠."
내가 회의실에 들어서자 그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이 말에 일단 내가 안도했던 건 기업이 산재를 숨기려 하지 않고 산재를 신청하고 인정받는 방향을 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기업이 산재 신청서를 인정하더라도 공단에서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인사담당자로서 내 판단에서 이 사건이 그랬다
"산재 신청 안내하고 진행하겠습니다."
"다만 제 판단에 이 사안은 산재 불승인 가능성도 있어 보여서 같이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자문 노무사님 의견도 이와 같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임원은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내가 산재 건 여럿 해봤거든. 그래서 잘 알아"
"당연히 된다니까!"
이 말과 함께 그는 자신이 경험한 지난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회의의 효율은 한없이 낮아지고 있었다.
가족분들에게 산재 신청 절차를 안내하고 공단에 보낼 답변서를 작성하고 공단담당자 면담도 진행했다. 업무관련성이 있음을 회사는 일관되게 전달했지만 공단의 판단은 '업무관련성 없음'이었다. 다행히도 이 사건의 최종 결과는 산재인정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는 2년 남짓의 시간이 걸렸다. 공단의 반복된 불승인에 이어 소송까지 진행한 결과였다.
그 과정에서 '내가 다 알아'라고 장담하던 임원은 은근슬쩍 발을 빼고 있었다. 그가 당연히 된다고 했던 산재승인까지 두 차례의 불승인을 거쳐 소송까지 2년이 넘는 시간과 애쓴 시간이 걸렸다.
'내가 해봐서 다 알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사회생활 과정에서 만나곤 한다. 어떤 이는 '누군가가 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음'을 근거로 '해봤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누군가가 만든 결과물만 받아서 사용한 경험'을 근거로 '해봤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에 '해봤음'의 한 가지 유형을 추가하면 '왜 하는지 모르고 외형적인 절차 등을 경험한 경우'를 이야기한다. 이는 대기업에서 하던 대로 스타트업에서 해야 한다고 말하고 그대로 하려고 하는 모습과 같다. 이들은 '해봤지만' 상황에 맞게 다르게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거나 혹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걸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음을,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하는지를 모른 채 주어진 대로만 일을 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례이다.
일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일의 보이는 부분(누구나 보면 볼 수 있는)만 보는 것이 아니다. 일을 안다는 것은 일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음을, 그래서 상황에 맞게 일을 판단하고 진행할 수 있음을 포함한다. 우리는 과거의 상황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황 일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은 보이는 것보다 오묘하다
그 일이 사람에 대한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인사라는 일도 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