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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간식비 5만원에 담긴 의미

by Opellie
어느 인사담당자의 경험은 그대로 두면 그냥 한 사람의 경험일 뿐이지만, 그 경험이 공유되면 다른 경험을 만들어가는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기존의 글들보다는 조금 더 주관적인 인사담당자 Opellie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기억의 조각에 크고 작은 살을 붙였기에 기본적으로 브런치북 '인사담당자 Opellie'는 실제 인물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인사담당자의 시간을 기록합니다.

회사 경영 상황이 나빠지면서 비용을 줄이기 시작했다. 그 비용에는 당연히 복리후생비용도 포함된다. 건강검진 등 비교적 비용 비중이 큰 복지제도들이 중단되고 그 대상에는 간식비도 있었다. 사실 간식비는 비용이 그리 크지 않았지만 구성원들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복지제도였다. 경영진에게는 단순한 간식비였을 수 있지만 현장에서 간식비는 구성원들에게 조직생활에서 일종의 부담없는 즐거움을 제공하기도 했다. 다른 팀의 간식을 구경하러 가기도 하고 이번 달 간식을 고르는 재미를 즐기는 구성원도 있었다. 간식 택배가 오면 같이 들여다 보기도 하고 선심 쓰듯 나누어 보기도 한다. 때로는 간식을 매개로 잠시 모여 티타임을 하기도 한다. 간식비는 간식을 사는 비용이지만 조직 내 상호작용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간식비는 차지하는 금액 비중이 높지 않으니 이건 유지하면 어떨까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 인사팀장이 지금 상황도 모르는 소리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지만, 기업 경영 상황이 어려워도 기업은 계속 운영되고 있고 또 그래야 한다. 물론 내가 건넨 제안은 무시되었고 간식비 지원 제도 역시 중단하기로 했다.


멀리 있는 법보다 가까운 주먹이 무섭다고 한다. 현장에서는 건강검진제도가 사라진 것보다 간식비 지원 제도가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의 반응들이 보였다. 인사팀장은 기업 전체 인사를 담당하지만 동시에 인사팀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지금 상황에서 인사팀이 힘을 낼 필요가 있었다


"일단 오늘부로 모든 복지제도 운영을 중단합니다"


팀 미팅을 잡고 결정 사항들을 공유한다.


"간식비도 못 쓰는 거죠?"


"넵"


"아쉽네요"


"그래서..."


"우선 우리팀은 간식비를 운영해보려 합니다"


나는 우리팀에서 팀원분들이 간식비를 통해 만난 경험들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 경험을 조금이라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별도의 간식비 통장과 체크카드를 만들어 통장에 5만원을 입금하고는 카드를 팀원 중 선임에게 건넸다.


"금액이 크진 않지만 당분간 매월 5만원씩 간식비를 넣어둘께요"

"우리 팀 간식비로 사용하죠"


사비를 들여 팀 간식비를 운영한다는 말에 다들 놀라며 말리기도 하지만 그들은 기업 안에서 그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렇게 수개월이 흘렀다. 기업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고 인사팀장으로서 인력 구조조정을 마치고 나 역시 기업을 나왔다. 간식비 통장도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간식비.

어쩌면 그리 거창한 복지제도는 아닐 수 있다. 나처럼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먹어도 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먹는 것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에게 간식비는 더더욱이나 그리 큰 이슈는 아니다.

하지만 인사담당자로서 나에게 간식비를 통해 만나고 보았던 조직 내 경험은 간과할 수 없는 소중함이 담겨 있었다. 적은 비용이지만 이를 통해 구성원들이 만나고 이야기하고 웃고 나누고 즐거워하는 시간들이 '간식비 지원'이라는 제도에 담겨 있었다.


간식비 5만원에 담긴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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