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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질문일까?

by Opellie

세미나 등에 참여해 강연을 듣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 때가 있다. 이러면 어떨까? 이렇게 연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건 다른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등의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강연이 끝나고 드디어 Q&A시간이다. 질문이 입까지 올라왔지만 선뜻 손을 들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의 질문이 이어지고 나도 해볼까? 를 망설이다가 세미나가 끝난다. 나는 못내 아쉬움을 간직하고 돌아선다. 내 질문을 막아선 건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반복해서 묻고 있었다.


'내 질문은 좋은 질문일까?'


또 다른 세미나에 참석해 강연을 듣고 다시 Q&A시간을 만난다. 갑자기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손을 들고 질문을 하자 강연자분이 말한다


"좋은 질문이네요"


강연자분의 말에 조용히 안도의 숨을 들이내 쉰다.


정말 좋은 질문이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어쩌면 그 질문을 들은 다른 청중, 패널 중에는 '뭐 저런 질문을 하지?' 하는 생각을 한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에게 내 질문은 결코 좋은 질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좋은 질문이란 무엇일까?'


일단 '좋은'이라는 표현은 일종의 가치판단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판단을 해야 한다. 그 누구는 누구일까? 혹은 누구이어야 할까?


이 질문을 생각하며 떠오른 건 '대행사'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었다. 팀원들이 야근 중이었지만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 팀원 한 명이 신세한탄을 한다. 철창 없는 감옥에 갇혀 있다고, 교도소는 잠은 재워주는데 잠도 못 자고 밤을 새우고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하필 리더가 지나가다 그걸 보고 만다. 그걸 본 다른 팀원들은 긴장한다. 바로 집합 지시가 떨어지고 회의실에 다들 모여 큰일 났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이윽고 리더가 입을 연다.


"그렇네. 그 억울함을 보여주면 되겠어"


밝은 분위기의 배경음악이 흘러나온다.



팀원의 신세한탄은 그 자체로 '좋은'보다는 '나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세한탄을 본 다른 팀원들도 직감적으로 '망했다'를 외치는 표정들을 하고 있죠. 그런데 리더는 이를 관점을 전환하는 계기로 받아들입니다. 이제 조금 전까지 부정적이었던 말들이 가장 희망적인 말들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질문이 좋은 질문인지 나쁜 질문인지를 결정하는 건 질문을 듣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 인사이트가 있다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좋은 질문이 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이 경우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동일한 질문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음을 말합니다.


좋은 질문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받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면 듣는 사람은 어설프거나 이상해 보이는 질문도 좋은 질문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합니다. 드라마 '대행사'의 이야기에서 리더처럼 말이죠.


이렇게 보면 리더들은 팀원의 의견에 대해 '쓸데없는 소리'로 단정 짓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팀원의 의견을 좋은 의견, 좋은 질문으로 만들기엔 스스로 부족함을 드러내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질문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생각 기록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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