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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May 22. 2017

제도로서의 포괄임금제

성스러운 계약covenant로서의 임금과 포괄임금제라는 제도에 대하여

본 글은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로 HR실무를 담당하는 한 개인이 작성하는 글입니다. 경영자 혹은 근로자의 어느 일방에 대한 입장을 대변하기 보다는 오늘날 우리에게 HR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는가를 개인적으로 고민하면서 만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완벽한 인간이 아닌 까닭에 논리나 내용에 혹여나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 부탁드립니다.
구성원의 발전을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개인과 조직의 관계를 은연중에 평가절하하는 것이다. 허먼 밀러社의 전 CEO 맥스 드 프리는 조직과 개인의 관계를 '성실하게 하루 일하면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한다'는 전통적인 '계약contract'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성스러운 '서약covenant'이라고 말한다. 드 프리의 설명을 들어보자.
"계약은 해당 관계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완전한 관계는 서약을 요구한다. 서약 관계는 생각, 이슈, 가치, 목표, 관리 프로세스에 대한 헌신을 공유하는 관계다. 또한 관계의 성스러운 본질을 표현하는 화합, 은총, 균형 등을 반영한다. - 학습하는 조직, 피터 센게, p193

우리가 '임금'이라 말하는 보상은 일종의 '계약'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 중에서도 일반적인 민법상의 계약이 아닌 그보다 특별한 목적, 즉 근로자의 생활보장과 지위향상(근로기준법 제1조 목적)이라는 목적, 을 달성하기 위하여 특별한 보호를 받는 계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계약'이라는 관점에서의 보상이 그래서 참 어렵습니다. 법적인 측면에서의 보상은 분명 '계약'이고 따라서 8h을 초과하여 근로하면 시간외 근로가 발생한 것으로 인정하고 이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하며, 법에서 정한 시간 단위로 이를 책정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생각해볼 점은 우리가 하고 있는 '근로계약'을 법적인 관점으로만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라는 점입니다. 피터 센게가 이야기했듯이 조직과 개인의 관계는 법적인 관점의 전통적인 '계약contract'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성스러운 '서약covenant'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계속 법적인 관점으로 이를 접근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이유는 이 성스러운 '서약'을 과거에 성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운영을 해온 경험, 그리고 그러한 경험에 기반한 사회의식이 아직 남아있다는 이유에서일 겁니다.


대선을 전후하여 '포괄임금제'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로서 논의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은 포괄임금제도가 나쁜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나쁜 것이므로 제도를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보면 HR이라는 일을 하는 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조금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움직이는 파도만 보고 그 파도를 움직이는 바람은 보지 못했노라는 영화 '관상'의 마지막 대사가 생각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일정한 흐름에 따라 변하고 있는데(제가 작성한 직무의 흐름이라는 글과 맥을 같이합니다.)제도와 규정은 그대로 남아 있고, 사용자와 근로자가 서로 win-win할 수 있는 모델을 찾기보다는 서로 빼앗기 위한 관계의 프레임을 만들거나 유지하려는 모습이 제도 자체를 나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여러 글에서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HR에서의 제도들은 제도 자체가 나쁜 것보다 그 제도를 왜곡하거나 아전인수로 해석하여 운영한 것이 나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포괄임금제는 근로자에게 조삼모사하지 않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보상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1동안 그래서 매월 어느 정도의 수입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근로자에게 일종의 예측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효용이 언제 어디서 어떤 경우에든 다 적용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적용에 있어 직무의 수행방식 내지 형태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는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법에서 종종 사용되는 '통상적으로 합리적이라 할 수 있는' 수준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우리들의 이성이 제 역할을 해줄 것을 요구하게 될 겁니다.


어느 기술자는 자신이 가진 기술을 적용하고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특정 장치를 사용해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 장치가 고정된 형태라면 그 기술자는 해당 기계가 있는 곳에서만 일이 가능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시간 단위의 측정과 그 시간에 따른 생산량의 측정이 가능한 형태입니다. 반면 어떤 기술자는 스스로의 사고와 논리를 통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유형의 일을 합니다. 이 기술자에게 필요한 건 특정 장소가 될 수도 있지만 그에게 insight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이 기술자는 특정 장소에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그가 만들어 낸 가치와 양의 비례관계를 갖기가 힘듭니다. 여담이지만 후자의 근무에 대한 인정은 근로자에 대한 신뢰가 전제로서 필요합니다.


제가 하고 있는 HR이라는 일을 생각해보면 채용을 하려면 특정 장소에 있어야 합니다. 면접을 진행하고 결과작업을 하는 것은 특정 장소에서 해야 할 겁니다. 반면 제도를 새롭게 만드는 일은 다른 특성을 지닙니다. 어느 글에선가 이야기드린 바와 같이 문서를 작성하는 건 1~2시간이면 되지만 그 문서에 담을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 건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여기에 우리 사람의 사고라는 게 근무시간이 8-5제이므로 오후 5시가 되면 생각의 문을 닫고 아침 8시가 되면 생각의 문을 여는 식의 작동이 되기 어렵습니다. 사고란 일련의 흐름의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포괄임금제에 대하여 제가 생각하는 바를 위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은 전달 드릴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짚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1. 왜 보상이야기를 하면서 제도설계보다 먼저 포괄임금제를 이야기 하고 있는가?

2. 그럼에도 법이 있고 그 법을 지켜야 한다면 포괄임금제는 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라는 두 가지 질문입니다.


이 두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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