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천재 사로잡힌 자, 사로잡은 자

우리가 만들어가는 오늘날의 천재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으로...

by Opellie

인문학 장르의 책을 볼 때면 어김없이 깨닫게 되는 한 가지는 내 자신이 가진 이해력과 능력이 얼마나 부족한가에 대한 돌아봄일 듯합니다. 일전에 한 번 읽고는 덮어두었던 책인데 독서모임에서 소개할 책을 고르다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딱딱한 책이고 두 번째 읽어도 여전히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이전보다는 조금 더 나아졌으리라 생각하며 책을 읽고 소개드립니다.

도서명 : 천재 / 사로잡힌 자, 사로잡은 자

저 자 : 피터 키비

출판사 : 쌤앤파커스

혁신적인 천재성을 소유한 사람들은 일반적인 규칙들을 벗어난 일탈행위로 우리를 즐겁게 한다. 반면 심미안을 지녔거나, 혹은 쾌락을 주는 미세하고 부차적인 사항들에 대해 섬세한 식별력을 지난 사람들은 규칙에 충실한 한도 내에서 남들이 발명해 놓은 것들을 개선해 세련되게 한다. p98

세상을 바꾸는 것은 혁신적인 천재성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유지하고 그러한 유지가 멈춤이 아닌 진행형으로 갈 수 있게 하는 건 그들이 하지 못하는 영역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 , 그리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소수의 혁신가에 의한 세상의 변화보다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우리들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필요한 '천재'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글귀입니다.


쇼펜하우어에게, 천재란 현실 부적응자라는 면에서 어린아이와 닮아 있다. '어린아이 같은 어른'이 그가 추구한 천재의 이상이다. p118
"인간의 성숙이란, 놀이에 대한 어린아이의 진지함을 회복하는 것이다."-프리드리히 니체 p163
모짜르트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것(어린아이의 진지함)을 회복할 필요가 없었다. 천재 신화에 따르면 그는 일생동안 단 한 번도 그 특성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p168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잃어가는 게 하나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진지함' , 개인적으로는 '순수함'이라는 단어로 이야기를 합니다. 아파트에 설치된 동물 모양의 조형물을 보면서 신기해하고 그것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말하는 아이에 대해 함께 바라봐주고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어른들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그들을 종종 외면하곤 하죠. 아이들이란 우리 어른들에게 우리들이 어릴 적 간직했던 순수함을 잃지 말라는 가르침을 매 순간 주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동떨어져 있지만 어쨌든 연관성 있는 관념들을 기꺼이 연합하려는 광범위한 상상력을 지닌 사람. 천재에게 '통합의 원리'는 너무 강력해서, 마음속에 어떤 관념이 떠오르기만 하면 그것과 가장 미미한 연관성을 갖는 모든 다른 관념들까지 즉시 떠올리게 된다. p194

'통합의 원리'는 오늘날에도 중요합니다. 어쩌면 과거보다 더 복잡해진 오늘날에 그 복잡성을 연결 지어 의미를 만들어 내는 '통합의 원리'는 이전보다 더 중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건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저를 포함해 어린 시절 암기에 익숙해있는 우리들에게는 더더욱 말이죠.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점일 듯합니다.


천재성이란, 예술에 규칙성을 부여하는 자질이며 타고난 재능이다. - 칸트 '판단력 비판' p199
베토벤의 규칙 파괴는 특히 프랑스 초기 비평가들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 p247

책을 읽는 동안 여전히 천재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내리기는 어려웠습니다. HR의 영역에서 '역량'이라는 것을 대할 때 마치 그것이 타고나는 것인가? 육성이 가능한 것인가?라는 논의를 벌이는 것처럼, 만일 타고나는 것이라고 하면 '역량'이란 HR에서 제도적으로 다룰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므로, 천재성이란 신에 의해 부여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신을 사로잡은 사람의 몫인가에 대해 사실 판단은 좀 어렵습니다. 다만 '천재성이란 예술에 규칙성을 부여하는 자질'이라는 점에 오늘날을 사는 한 개인으로 동의합니다. 다만 그것이 '타고난 재능'인가? 에 대해서는 판단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판단이란 일종의 단정을 짓는 일인데 제가 그럴 정도의 통찰을 갖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우리들 역시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일종의 규칙 파괴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법을 어긴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당연하다 여긴 것들, 혹은 기존에 해왔기에 그대로 해오던 것들에 대해 새로움을 제기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러한 행동은 그 제도를 만들었던 우리 선배님들의 비위를 건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행위 자체가 없다면 우리는 고인 물에 사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남깁니다.

'맞네. 그래도 나는 실수를 허용했지만 permit, 자네는 실수를 범하지 commit 않았던가?'p249
규칙을 파괴해서 무엇을 얻고자 원하는지 명확하게 알게 되는 그 순간, 오직 그때에만 규칙을 어길 수 있다는 뜻이다. p260

굉장히 자기중심적 발언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책은 '규칙을 파괴해서 무엇을 얻고자 원하는지 명확하게 알게 되는 그 순간'이라는 전제를 달았습니다. 단순한 자기중심적 발언이 아닌 세상에 대한 통찰의 제시가 될 수 있겠죠. 만일 그러한 발언을 하는 그 이면에 담겨 있는 본질적 가치가 긍정적인, 예를 들면 누군가 혹은 세상에 기여하고자 하는, 가치를 담고 있다고 한다면 permit과 commit에 대한 그의 발언은 외형적 발언 그 내면의 무언가를 같이 살펴볼 필요가 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후기-

여전히 전 천재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저 자신이 그 범주가 아님은 명확하기에 그들의 영역을 이해하기 어려운 게 당연함에도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책을 보면서 가진 생각 중 하나는 내가 만일 천재성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오늘날에 보다 적합한 천재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선택된 자, 모짜르트와 같은,로서의 천재성이 아닌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 그것이 신이든 사람이든에 관계없이, 것에 대해 permit 할 수 있는 베토벤의 천재성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의 성장을 위해서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베토벤의 말을 다시금 기록으로 남깁니다.


'맞네. 그래도 나는 실수를 허용했지만 permit,
자네는 실수를 범하지 commit 않았던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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