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보적 과학, 추상과 구체화, 그리고 진보
도서명: 온도계의 철학
저 자: 장하석 교수님
출판사: 동아시아 출판
별 점: 5/5
두께가 살짝 있는 책들의 경우 책의 후반으로 가면 그 긴장감이 다소 느슨해지는 경우를 종종 마주합니다. 길어지는 여정만큼이나 떨어지는 독자들의 집중력과 느슨한 긴장감이 결합되면 자연스레 대각선 읽기를 하기도 하죠. '온도계의 철학 / 장하석 / 동아시아 출판'은 뒤로 갈수록 대각선 읽기를 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의 뒷부분을 읽어야 비로소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확인할 수 있고 온도계를 둘러싼 지금까지의 여정을 이야기한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상보적 과학'입니다.
'상보적 과학'에 대하여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철학은 조직된 회의와 비판(organized skepticism mand criticism)이라는 유용한 습관(habits)의 제공자로서 역사학은 잊힌 물음과 답의 제공자로서 기여한다. 과학사와 과학철학은 과학 지식을 확장하고 풍부화하는 과정에서 뗄 수 없는 동반자이다. 나는 둘이 함께 이루는 학제를 일러 상보적 과학이라고 부르고자 제안한다. 그것은 전문가적 과학에 중요한 보완으로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p464
이는 오늘날 우리가 복합계 혹은 학제 간 연구라 부르는 그것과 유사한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책이 출간된 시점이 2004년이라는 점도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이는 제 브런치 어딘가에서 전문성과 관련하여 기록했던 이야기와도 그 맥을 같이 합니다. (전문성의 개념 확장 중 horizontal transition)이러한 '상보적' 개념이 2017년의 오늘날 중요한 이유는 갈수록 상호 보완적 영역들이 우리의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과거에 주류로서 인정받지 못했던 의견들에 대해 오늘날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비정형 데이터가 과거에는 아무런 의미 없는 데이터로서 치부되었지만 오늘날 중요한 데이터로 그 위치가 변한 것과 어쩌면 유사한 맥락이라 할 수 도 있을 듯합니다. 이러한 발달의 영역은 기존의 것을 인정하고 그들에 대한 인정을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일단 새로운 표준이 확립되고 나서, 그 새로운 표준을 참조 기준으로 삼아 새로운 영역에서 새로운 현상론적 법칙이 입증될 수 있고 다시 그 법칙이 더 나아간 새로운 영역으로 외삽될 수 있다면, 더 나아간 확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 p300
사실 우리들이 제도의 개선을 이야기할 때 지금 내 자신이 제안한 제도의 우수성을 상대방에게 알리기 위해 이전 제도의 부정적인 면을 이야기하는 경우를 만나곤 합니다. 하지만 항상 알아야 할 점은 우리가 개선의 대상으로 삼은 그 제도가 없었다면 어떤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있는지 ,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들의 판단 역시 하기 어렵거나 하기 위해 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을 수도 있다는 점일 겁니다. 어찌 보면 기존의 것은 그 상황에 적합한 일종의 표준이었고, 그 표준을 오늘날의 우리들에 맞게 혹은 앞으로의 우리들에게 맞게 바꿔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 내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호봉제가 무조건 나쁘니 연봉제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호봉제의 어떤 부분들이 IMF 이후 국내 경영환경에서 맞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맞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한 장하석 교수님의 이야기를 남깁니다.
웨지우드 이후에 고온 측정법은 물이 많이 새는 배였다. 노이라트의 은유를 좀 더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다면, 전에는 배 자체가 없었기에 우리는 물 새는 배라 해도 그것이 이미 상당한 성취였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p304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상보적 개념을 이해하면서 알아야 할 또 하나의 지점은 추상성과 구체성의 연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이론적 정의는 구성할 수야 있지만 그 정의가 물리적 조작의 세계에 연결되지 못한다면 경험 과학에서 쓸모없는 것이 될 것이다. p359
대학시절 제1전공을 배울 때 느꼈던 괴리감이랄까요.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는 공부를 한다는 생각으로 배우지만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느껴지는 현실과의 괴리감 말이죠. 이론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기에 이론에 대한 비판적 사고가 그 이론 자체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알 필요가 있을 겁니다. 비판적 사고가 이론이나 선배들의 생각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론과 생각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라는 점 말이죠. 제 브런치의 책에 대한 글 중 Grit에서 "이론은 설명이다. 이론은 무수히 많은 사실과 관찰 내용들이 무슨 뜻인지 가장 기본적인 용어로 설명해준다. 이론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하다. 지나치게 단순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친 단순화를 통해 이해를 돕는다. p070"라는 문장을 소개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제 이해가 맞다면 이와 관련한 '온도계의 철학'의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추상을 어떤 대상 entity에 관한 설명에서 특정 속성들을 제거하는 행위라고 받아들인다. 그 결과는 실제의 대상에 맞대응할 수 있지만 그것에 관한 충분한 설명을 담지는 못하는 어떤 개념이다. p385
이러한 추상과 구체성의 개념과 상보적 개념이 결합됨으로써 다음의 결론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됩니다.
추상화와 구체화라는 잘 정돈된 두 가지 과정이 갖춰질 때 우리는 개념-조작적 체계 conceptual operational system를 구축할 수 있다. 그것은 변화와 새로운 발견에 직면하여 최대의 유연성 flexibitity과 최소의 파괴 disruption와 더불어 진화할 수 있다. p413
이러한 개념에 기반한 반복적인 개선은 '풍부화와 '자기교정'pp439~444의 특성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책은 풍부화와 자기교정의 개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이야기를 해줍니다.
전체의 온도 척도를 개관하면 반복적 확장이라는 그림을 떠올릴 수 있다. 거기에서 초기 영역의 개념은 보존되지만 새로운 영역으로 증강된다. 이 과정에서 확장되는 주요한 인식적 덕목은 적용 범위다. p4(중략) (안경을 벗을 때와 착용했을 때의 이야기를 통해) 내 안경은 내게 안경 자신의 결점을 보여줄 수 있다. 이것이 자기 교정의 놀라운 모습이다. 그렇지만 결점 많은 동일한 안경을 통해서 얻은 결점 많은 안경의 상을 나는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p442
1.
HR이라는 분야는 그렇습니다. 오랜 시간 검증된 이론들이 존재하지만 그 이론들만으로 우리의 전체 현상을 다 설명하기란 어려운 그런 분야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론은 그 자체로서 우리가 복잡한 HR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표준 내기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이론에 우리들의 경험과 사고를 추가함으로써 HR은 보다 더 풍부한 contents를 가진 전문분야로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HR에서 더 많은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오길 희망합니다. 누가 말했는가? 그 누군가가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어느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사고와 경험이 우리가 다루는 HR이라는 분야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길 바랍니다. HR을 만난 초기에 어떤 분이 쓴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HR은 전문분야인가?라는 주제였죠. 그분의 결론은 HR은 전문분야다 였습니다. 지금의 저에게 HR은 전문분야이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HR을 그들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만큼의 전문분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다양한 사고와 경험들이 기존의 HR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정작용, 즉 반복적 자기교정의 과정이 HR이 온전히 전문분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
정말 많은 개념과 이론과 철학을 담고 있는 책이기에 작은 한 두 페이지로 이 책을 소개드리는 것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저에게 먼저 던져보게 할 정도로 조심스럽습니다. 과학이라는 분야와 인연이 그다지 없는 저이긴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개념을 접하고 나서 비로소 온도계의 철학에 대해 조금은 다가갈 수 있었던 듯합니다. 어려울 수 있지만 경영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