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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Aug 13. 2016

왜 하는가?

Why라는 질문과 기업에서의 현실

모 기업에서 갑작스레 특정 제도를 운영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당시의 '나'는 그 제도를 시행하는 이유가 궁금했었고, 상급자분에게 "왜 하는가?"라는 질문을 드렸었죠. 새삼 그런 질문을 던진다고도 생각하셨을 수 있지만 그래도 다행히 화를 내거나 퉁명스럽지 않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만 시간이 흐른 지금도 정확히 그 why를 모른 채 아마도 그래서일 거 같다 정도로만 생각하는 건 당시에 몇몇 분들에게 들었던 답이 모두 달랐던 게 가장 크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책을 보다가 why를 강조하는 이야기를 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권하기도 하는 TED 영상 중 Simon Sinek의 "Golden Circle"도 why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제가 HRM을 시작할 때도 why를 모른 채 실무상의 operation을 한다는 게 명확한 한계가 있다는 걸 체감하기도 했고, 그리 많이 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의 '공부'를 하게 된 것도 그 why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자 함이었고요.


why를 이해하고 일을 하는 것과 why를 모른 채 일을 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후생활의 보장이라는 퇴직금 제도의 why를 이해하지 못한 채 퇴직금만 바라보면 퇴직금 중간정산에 제한을 둔 현재의 퇴직연금제도가 불합리한 제도로 보일 가능성이 커지겠죠. 지하철에서 뛰노는 아이를 통제하지 않는 아버지, 그 모습만으로 우리는 그 아버지를 나쁜 사람으로 판단하겠지만 아내의 상을 치르고 온 남편이라는 그 이면의 사실에 대해 이해하면 우리는 그 아버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why"가 중요한 건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라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왜 하는가? 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문제가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왜 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why는 우리가 알기 쉽게 눈에 보이는 형태로 드러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특정 사물, 제도, 말, 글 등 다른 형태를 빌려 우리 눈에 보이죠. 따라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므로 why를 이해하려면 더 많은 지식과 경험, 생각과 이야기들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등장합니다. why를 이해하기 위해 지식과 경험, 다양한 생각 등이 필요하고 이들에는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기업의 경영 현실은 생각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빨리 돌아가는 환경 속에 사는 우리들에게 why를 이해하고 파고들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생각만큼 많이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되겠죠.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그렇게 움직여지기도 하구요.


HRM을 고민하는 입장에서 그 절충점으로 고려하는 부분은 리더의 역할과 성과의 명확성 확보라는 두 관점에 있습니다. why를 이해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을 가진 리더와 기업이 지속적인 유지와 성장이 가능하기 위한 성과물에 대한 정의를 의미합니다. 전자는 우리가 직무분석에서 말하는 성과책임(Performance Accountability)을, 후자는 일의 결과물 내지 산출물과 연결됩니다. 현실적으로 어떻게 그 균형점 내지 연결고리를 찾아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의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한 축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why, 즉 왜 하는가?라는 질문은 2016년 오늘날 그리고 앞으로 를 살아갈 우리들에게 정말 중요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장시간의 끝장 토론을 하고 경청을 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why라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외형적인 무언가를 보이기 위해 그러한 것들을 내세우는 책이나 글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안타까움이 드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하죠.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why를 던지고 탐구하는 습관을 기르고 그렇게 배우는 것이겠지만 이미 그렇지 않은 시절을  보낸 우리들에겐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그런 면에서 기업이라는 현실 속에서 우리만의 대안을 어떤 모습으로 찾아보고 구현할 수 있을까를 글을 쓰며 조금 더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이미 지났더라도 지금의 어린 친구들은 조금 더 일찍 why에 대해 가까워질 수 있는 그런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을 함께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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