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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Aug 10. 2019

"주어진 것"에서
"만들어가는 것"으로

철학적 분석은 어떻게 하는가? 존 호스퍼스

직무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간혹 '주어진 것'이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철학적 혹은 개념적 정의보다는 말 그대로 우리의 의지나 생각이 개입되지 않은 상태 혹은 그럴 수 없는 상태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된 것 정도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어진 것'이 필요하고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우리 나름의 해석이나 기준을 적용하기 위해서 그 분야 혹은 그 직무가 우리가 개입하기 이전에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었고 어떤 철학이나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점에 있지요. HR을 예로 들면 우리가 HR담당자로 기업에 입사하기 이전에도 그것이 체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상관없이 이미 조직과 사람과 직무는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중간에 담당자로 들어간 우리들은 그 흐름을 유지 혹은 개선/변화하기 위해 이전의 흐름을 알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주어진 것'이라는 다소 엉뚱한 문장을 책을 보면서 만났습니다. 

해석이나 분류 이전에 우리의 감각 기관에 직접 나타나는(또는 "나타난") 것을 일컬어 "주어진 것(the given)이라고 한다.  - 철학적 분석은 어떻게 하는가?  존 호스퍼스 서광사 p192

사실상 누군가의 말이나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문서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이미 그 누군가의 해석이나 분류가 기준이 되어 만들어 놓은 상태라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책에서 말하는 "주어진 것"이라 말하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주어진 일을 지금 현재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을 기준으로 우리들의 해석이나 분류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는 "주어진 상태"로 말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주어진 것에서 시작하는 것" 만으로는 그것을 지식이라 할 수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 대하여 책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주어진 것을 전혀 해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주어진 것에서 시작하는 것" 그것만으로는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익숙한 것(acuqaintance)일 뿐이다. 우리가 원한다면 그것을 "익숙지"라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은 어떤 것이 옳다거나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 주지 않는다. 어떤 것을 안다는 주장은 반드시 그 주장이 잘못될 가능성을 포함한다. p193~194


"주어진 것에서 시작하는 것"은 지식보다는 익숙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익숙하다는 것 자체가 일에 대하여 "옳다거나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실무 현장에서 우리는 이러한 익숙지를 종종 마주합니다. 그들은 "관행"이나 "원래 그래왔던 것" 혹은 "시키는대로 해" 등의 이름으로 우리들을 찾아오곤 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들 자신도 어느 샌가 누군가가 말하는 "원래 그래왔던 것"에 익숙해져서 그 익숙함이 '옳은 것'이라 생각하게 되기도 했지요. 왜 하는가? 라는 질문이 들어갈 여지가 없고 주어진 누군가에게 익숙한 것이 외형적 권위와 결합되어 '옳은 것' 내지 '당연한 것'이 되는 상황을 우리는 종종 마주합니다. 왜 하는가? 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고 공유하면 해결할 수 있음에도 그것을 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일들입니다. 


"주어진 것"이 익숙지가 아닌 "옳고 옳지 않음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 되기 위해 우리들은 결국 해석 내지 분류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합리성을 기반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제 글의 또 다른 어딘가에서 이야기한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에는 그 과거에서의 합리성에 기반해 그렇게 해왔다 하더라도 그것이 오늘날에도 적합하려면 오늘날의 '합리성'이 개입을 해야 함을 말합니다. 


"주어진 것"에서
"만들어가는 것"으로


이로서 '만들어가는 것'에는 우리들의 해석 분류가 담기게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 '주어진 것'으로 남아 다시 또 다른 '만들어가는 것'이 되어가게 됩니다. 어쩌면 이렇게 누군가의 만들어 진 것과 주어진 것의 순환이 제대로 이어질 수 있다면 우리는 굳이 인위적으로 무언가 개혁, 변혁, 변화 등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이러한 모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글의 앞에서 이야기드린 바와 같이 주어진 것을 왜 하는가?에 대해 어떤 철학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HR담당자로서 제가 사용하는 말로 표현하면 '제도의 취지'라 말할 수 있습니다. 


A라는 제도를 시행한다는 상급자분들에게 "왜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대답하는 모든 분들이 서로 다른 대답을 해주는 상황, 결론으로 아무도 왜 하는가를 모르는 상태로 "원래 해왔으니까"라는 답으로 귀결되었던 제 지나온 시간 속 어느 경험에 대하여 그러한 경험들이 앞으로는 좀 더 보이기 어려운 경험이 되길 바랍니다. 대신 누군가에게 일을 전할 때 자신이 해왔던 방식을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제시하고 왜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는 모습들이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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