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하다 갑자기 떠오른 영점조절의 비유. 인생은 공평한가? 공평하지 않은가? 단순하게 말하면 공평하지 않다.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단어가 유행하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공평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인생의 시작과 끝을 전부 한눈으로 볼 수 있다면 말이다.
군대에서 사격할 때 소총을 지급받으면 사격 전에 영점조절이란 걸 한다. 가늠자? 클리크? 뭐 이런 걸 조절해서 사격이 정확히 되게 하는 절차다. 난 사격에는 별로 소질이 없었지만, 사격통제관도 몇 번 해봐서 절차는 정확히 알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사격할 때 랜덤으로 지급받는 소총 같은 걸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영점조절이 완벽하게 되어있는 총을 받는다. 대충 쏴도 만발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시작이 엉망진창이다. 아무리 집중하고 자세를 완벽하게 연습해도 빗나간다. 많이 쏴보면서 알게 된다. ‘내 총이 약간 이상한가?!’
어떻게든 과녁에 명중하고 싶다면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영점조절을 해서 제대로 맞추는 총으로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많은 실패경험으로 그 총에 맞는 자세나 사격타이밍 등을 연구하는 것이다.(다시 태어날 수는 없으니 총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인생으로 치면 첫 번째 방법은 나를 통째로 바꾸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영점조절이 안 맞는 나지만, 그런 나조차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나 사람, 분위기 등을 익히는 방법이다. 나는 주로 두 번째 방법을 사용해서 살아남았다. 나를 본질적으로 바꾸지 않고도 다양한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각종 방어기제를 익혀왔다.
뭐, 어느 정도 잘 맞추는 사격실력을 갖게 되었지만 문제는 사격할 때마다 잡는 자세가 매우 불편하단 점이다. 표준적인 자세로는 과녁에 명중할 수 없다. 나만의 불편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래야 몇 발이라도 맞춘다. 하지만 이상한 자세를 장시간 취하긴 힘들고, 시간이 갈수록 사격 자체를 피하게 된다.
결론은 이렇다. 나이를 먹으며 점차 영점조절이 되는 느낌이다. 이제 표준자세를 취해도 어느 정도는 사격에 성공한다. 물론 그동안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치를 쌓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