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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글이 Mar 14. 2024

영화 ‘듄’과 결정론

운명에 맞설 것인가? 아니면 받아들일 것인가?


  듄 세계관에서 핵심적인 조직 중 하나가 베네 게세리트이다. 주인공 폴 무앗딥의 어머니 제시카도 베네 게세리트에 속해 있으며 폴도 그 능력을 물려받았다. 처음엔 여자들만으로 구성되며 초능력, 예지력 등을 사용하는 존재라 마녀 느낌의 단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듄 파트 2를 2회 차 관람하면서 베네 게세리트는 마녀보다는 과학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완전한 J(계획)형 인간들이다. MBTI 중에선 INFJ에 가까우려나..? 극 중에서 귀족들의 혈통을 수집?하여 퀴사츠 해더락(완전한 예지능력을 가진 자)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실행하고 있다. 대체계획까지 세울 정도로 철두철미하다. 예를 들어 유전자를 수집하기 위해 페이드 로타 하코넨을 유혹하는 마고트 펜링은 사전에 그의 기질을 확인하며 적합한 인물인지를 테스트한다.


  폴의 어머니 제시카를 포함해서 이 집단에 속해있는 인물들은 개인적 욕망을 극도로 절제하며 오로지 조직의 사명을 수행한다.(유일하게 제시카가 자신의 뜻대로 한 게 원래 계획인 딸 대신 아들을 임신한 거다 : 성별도 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통제 중심 캐릭터성의 특징이 나타나는 게 대표적인 능력인 'Voice'다. 특정 말투로 강하게 명령하면 상대방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명령을 수행하게 되는 강력한 힘이다.

  

  영화를 보다가 든 생각이 이 단체가 그냥 만악의 근원이라는 거다. 계획대로 폴의 가문, 아트레이레스를 멸문시키질 않나.. 주인공을 흑화시키질 않나.. 그냥 목적을 위해서는 자식이고 남편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의 모습이다.



  이제 좀 철학적인 얘기를 곁들이면, 베네 게세리트는 결정론 세계관을 옹호하는 듯하다. 결정론이란 쉬운 말로 운명을 믿는 거다. 모든 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도 인터스텔라, 테넷에서 강조하고 있는 메시지인데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다.'는 주제다.



  흔히 운명을 믿는다는 사람들도 절대적 운명론(자유의지는 아예 없다)을 들으면 상식적으로 수긍하기 힘들어한다.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충돌, 이 문제는 철학사에서 웬만한 철학자들은 한 번씩 고민해 본 매우 유명한 주제다.


  상식적으로 당연히 내 의지대로 손을 움직이고, 내 의지대로 점심메뉴를 고르며, 내가 끌리는 대로 연애상대에게 대시한다고 생각하지만 놀랍게도 내가 읽었던 철학, 종교책들의 다수설은 결정론을 옹호한다.(물론 어디까지 결정론의 영향력을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묘하게 다르다)


  예를 들어 중세시대 기독교가 부흥했던 시기에는 '이 모든 것은 신의 뜻입니다' 이 한마디면 해결되었다. 그리고 뉴턴 등 과학이 발달한 근대 시기에는 완벽한 계산공식만 알아낼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 이후에 무슨 말을 할지까지 예측할 수 있다고 진지하게 생각했다.(언어도 뇌에 전기적 신호가 가해져 입으로 나오는 것이므로, 전기적 신호의 작동원리와 상황변수를 정확하게 가지고 있다면 이론적으로는 계산할 수 있다는 논리)



  나도 20대 때 거장들의 강력한 결정론 논리를 반박해 보려고 여러 책들도 열심히 읽고, 깊게 고민해보기도 했다.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니 너무 무서운 말 아닌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 깊은 무력감이 든다. 결국 찾아낸 게 불교(절대적 상대주의), 양자역학(확률론적 결정론)이다.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도 결정론에 대한 질문을 듣고 이렇게 대답한다.


모피어스 : 운명을 믿나? 네오

네오 : 아니요.

모피어스 : 어째서지?

네오 : 왜냐면 내 삶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을 좋아하지 않거든요.(Because I don't like the idea that I'm not in control of my life.)


  


  어쨌든 다시 영화 듄 얘기로 돌아와서, 베네 게세리트는 어쩌면 결정론을 옹호한다기보다 자신들의 계획대로 통제한 운명을 만들어내는 작업에 진심인지도 모른다. 인간들은 그 계획을 신의 뜻이라 여길 거고 베네 게세리트는 자신이 마치 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 만족할 것이다. 마치 히틀러의 우생학 프로젝트가 떠오른다.


  내가 생각하기에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는 여주인공 챠니가 폴에게 말한 한 문장이다.(정확한 대사가 기억 안 나서.. 재구성함;)


 : 내가 남부로 가면 너를 잃게 될지도 몰라, 그게 두려워

챠니 : 그럴 일은 없어. 난 널 버리지 않아. 네가 니 자신으로 남는 한.



  폴은 이 대화 직후에 남부로 가서 생명의 물(아기 모래벌레를 죽여 뽑아낸 파란 색깔의 액체)을 마시고 본격적으로 종교지도자의 역할을 맡아 행동한다. 챠니는 이 모습을 보고 실망하며 폴을 떠난다. 폴이 더 이상 개인으로서 폴 아트레이데스가 아닌 폴 무앗딥으로 다시 태어나 베네 게세리트가 마련한 운명에 순응했기 때문일까..?




  영화를 보고 감독의 전작을 살펴보다 놀랐다. 그중에 내가 매우 애정하는 작품인 '컨택트'가 있어서이다. 역시 결정론을 한 번 다뤄본 감독은 솜씨가 뛰어나다.


  컨택트에서 주인공은 딸이 결국 불치병으로 사망한다는 걸 알면서도 딸을 낳는 선택?을 한다. 남편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떠나지만, 주인공의 심정은 관객에게 정확하게 묘사된다. 즉 딸을 잃는 고통을 다시 겪더라도 딸이 태어나고, 첫걸음을 걷고, 첫마디를 세상에 내뱉는 순간들 또한 매우 소중한, 절대 잃을 수 없는 순간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양립이 이해되는 멋진 묘사다.


  당신은 당신을 위해 마련된 운명에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조금이라도 반항할 것인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만약 선택이란 게 존재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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