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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글이 Feb 14. 2024

사람은 타인을 그 자체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람은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이론적으로' 언어(논리)를 주로 사용하여 풀어보자.


  사람마다 '진정한'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여기서는 100%를 추구하는 완전성의 함정에 걸리지 않기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기준은 꽤 높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솔직하게 밝혀두면 불행하게도 나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여기서 '진정한'의 의미를 좀 더 세밀하게 설명해 보면 타인을 도구화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 정의하겠다.


  기독교의 아가페적 사랑을 떠올릴 수 있으나 개인적으로 아가페는 100%에 가까운 이상향으로 여긴다. 나를 완전히 내려놓은 채로 타인을 100% 받아들인다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경험하기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적이지 않다. 그것은 '신'의 사랑이다. 결국 예수도 자신을 버려 십자가에 못 박혀 희생하는 결말이 나지 않았던가?

  

  인간은 동물의 속성을 함께 가지고 있으므로 자기 보존본능을 항시 가지고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아가페적 사랑은 내가 지향하는 사랑은 아니다. 마이스터에크하르트나 에리히프롬처럼 기독교의 사랑에 정통한 학자들이 어떠한 견해를 가졌는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가페적 사랑을 긍정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럼 내가 생각하는 사랑에 가까운 것은 무엇인가? 인도철학자 오쇼의 견해에서 힌트를 얻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을 얘기하다 뜬금없이 정반대의 미움을 얘기하는 게 황당할 수 있겠지만, 선과 악이 그 자체로만 존재할 수 없듯이 사랑과 미움도 형제다.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기대가 생긴다. 그리고 그 사람을 대하는 내 행동에 기대에 따른 의도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내 뜻대로 흘러가는 일들만 있지 않다. 타인은 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다. 거기에는 나의 사랑에 대응해야 하는 어떠한 필연성도 없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심한 경우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것이 미움이다.

  

  처음부터 타인에게 바라는 것 없이 자신은 무조건적으로 잘해줬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미안하지만 거짓말에 가까울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그 사람의 의도는 상대방에게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흔히들 거리낌 없이 사랑이라 말하는 부모자식 간의 사랑을 비유로 이야기해 보자. 내가 좋아하는 심리유튜버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 부분이 있다. "우리는 부모가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준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부모에겐 사랑을 줄지, 주지 않을지 결정할 선택권이 있다. 그러나 자식은 선택권이 없다. 자식은 태어난 순간부터 무조건적으로 부모를 사랑하게 되어있다."

  

  훌륭한 통찰이다. 이런 설명이라면 자식을 버리는 부모, 학대하는 부모가 설명이 된다. 그럼 부모를 버리는, 욕하는 자식은 뭘까? 유튜버가 말하는 것은 어린 시절의 자식을 말한다. 자식에겐 강력한 생존본능이 있고 살아남기 위해 가장 먼저 붙잡아야 할 대상은 바로 근처의 부모다. 부모에게 버림받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한다.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부모를 따를 수밖에 없다.(자식의 사랑은 진정한 의미의 무조건적 사랑인 아가페와는 다르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생각을 해보니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본능적인 사랑을 뜻한다. 내 생각에는 이것도 인간적이지 않다. 무언가 부족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미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타인에게 기대가 생기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타인을 도구화하는데 집중하면 결국 자신도 사랑을 '실행할' 수 없는 사람이 될 뿐이다.

  


  잘 모르겠지만 균형점은 신의 사랑과 동물적인 사랑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것 같다. 거기에 진정한 인간성이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미워하면서 동시에 내가 사랑하고 미워한다는 사실까지 수용하고 지켜볼 수 있는 것, 이것은 그냥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는 것보다 실천하기 훨씬 어렵다. 본능적이면서 동시에 이성적인 요소까지 필요하니까 말이다.


  유퀴즈를 보는데 이혼전문변호사가 나와서 결혼상대로 추천하는 사람이 무취향의 사람이란다. 어떤 한 가지 취미에 몰두한 사람은 결국 결혼 후에 그것 때문에 싸울 일이 많다는 논리다. 경험적으로도 쉽게 이해되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냥 이기적인 사랑을 추천하는 걸로 보인다.


  진정한 사랑은 나와 덜 싸우기 위해 무취향인 상대를 찾는 게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취미임을 명확히 인식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지켜봐 줄 수 있는 그 무엇이다.(지나치게 자신을 희생하며 같이 할 필요까지는 없다)


  나는 이 사람을 미워하지만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동시에 사랑하는 감정도 인식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사랑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물론 사랑은 언어나 논리로 설명되는 수학공식 같은 게 아니다. 어쩌면 언어는 이해를 방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게 정답이지만, 지금 어디쯤인지 확인할 수 있는 나침판 정도의 역할은 필요한 거 같다. 비록 완벽하게 작동하는 나침판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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