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지 않는 편인 엄마가 너와 함께 하며
책을 사는 편이 아니다. (전자)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밀리의 서재와 같은 독서 플랫폼에 일정 금액을 결제하여 책을 읽는 편이다. 서점에 가서 책을 사서 읽는 것보다 가격이 합리적이라서다. '이건 꼭 사고 싶어' 또는 '이 책은 소장해야겠어'와 같은 마음이 드는 책들은 전자책으로 구매하는 편이다. 실제 공간을 차지하면서 먼지가 쌓여가는 서재가 아닌 나의 가상공간과 같은 전자 서재에 아무리 많은 권수라도 평생 깔끔하게 정리되어 진열돼 있다는 사실이 꽤 정갈한 느낌이 들게 한다.
한편 책의 물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을 물리적으로 가져야 한다. 책의 물성이란 책이 물건이기에 가지는 성질을 의미하니까. 예를 들어 책장을 손으로 촤르르르 펼쳐보다 보면 나는 책의 냄새, 종이를 만질 때 느껴지는 감촉, 예쁜 디자인의 책 표지, 책을 읽으며 만나는 주옥같은 문장에 직접 형광펜이나 연필을 들고 하이라이트를 하고 메모를 한다는 그 행위 등. 태블릿이나 노트북, 휴대폰, 이북리더기로 전자책을 읽을 때 쉽사리 느낄 수 없는 책의 물성이다.
다양한 책의 물성 덕분에 이북리더기로 책을 읽었을 때보다 좀 더 깊게 사유하고 더 생생하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아 그 내용 몇 쪽 왼쪽 편에 나왔었던 것 같은데 하면서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실제로 책을 넘겨 찾아보는 과정이 더 용이하다. 나의 경우 전자책보다 물성을 가진 책을 더 자주 펼쳐보고 다시 읽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뿐만 아니라 딸이 요즘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최소한 딸의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거나 전자책으로 사지 않고 서점에서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빼뜨르 호라체크의 책들과 음원 CD를 영어도서관에서 빌려 딸에게 읽어주었다. 현재 이 글이 실리고 있는 매거진 <1살 딸과 영어 그림책은 사랑이다>에 그 과정들이 실려있다. 그의 책들 중 딸의 반응이 좋았던 책도 있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책도 있다. 어떤 그림책은 딸이 춤을 추며 자주 읽었고 다른 그림책은 다시 읽어주어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딸이 온몸으로 즐기게 만든 책과 음원이 지금 현재 도서관에 비치돼 있다는 사실이다. 딸이 좋아하는 책을 읽어줄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내내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딸이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책들은 구매 전 알면 좋겠지만 덜컥 사놓고 그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책에도 다 시기가 있는 듯하다. 지금은 그 책에 흥미와 관심이 없어 보일지 몰라도 나중에 그 책을 읽어달라고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또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책에 흥미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딸이 최근 노부영 베이비 베스트 전집 중 하나인 <Noisy Peekaboo! Choo! Choo!>도 그런 책들 중 하나. 책 속 아기들 사진만 만지작거리며 놀던 딸이 flap을 들춰보기도 하고 음원 CD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손가락으로 의사 표현(?)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딸이 요즘 읽어주지 않는 책들 중 최근 갑자기 나에게 가져와 읽어달라던 책도 몇 권있다. 육아템 중 인기 아이템인 튤립 사운드북. 그중 보라색 튤립 사운드북인 아기영어동요. 그리고 <Here are My Hands>. 다음 글에서 딸과 그 책들을 함께 즐기며 소통했던 과정을 써내려 갈 것이다.
이렇듯 딸에게 책은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책들로 나뉘기보다 지금 흥미로운 책과 나중에 흥미로운 책으로 나뉜다. 딸 옆에서 항상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책들은 딸의 성장 스토리를 조금씩 갖게 될 것이다. 더 어릴 때 더 아기일 땐 이 책을 볼 때 이랬었는데 지금은 엄마 아빠와 스킨십도 하고 웃으며 이 책에 관심을 보이고 즐기는 너. 딸과 읽었던 책들을 펼치면 그렇게 책과 소통하는 딸의 모습들이 점점 성장곡선을 그리듯 펼쳐지겠지.
내 책은 몰라도 딸이 읽을 책들은 그래서 사야 되겠다,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너의 성장과 너와 함께한 추억과 나중에 들려줄 이야기들이 책 속에 차곡차곡 쌓이니까. 그래서 엄마도 너의 책들에 애착이 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