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지만 알고 싶어 하면 안 되겠지.
딸이 16개월이 될 즈음이었다. 여느 때처럼 노부영 베이비 베스트 전집의 전곡이 들어있는 CD를 재생 중이었다. 그때는 <A Parade of Elephants>의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할 때였는데, 딸이 노래를 따라 "룩. 에어펀" 하는 게 아닌가. 원래는 Look! Elephants!이다. 이후에도 노래를 따라 "원, 투, 흐이....... 파입"하면서 숫자에 맞게 손가락까지 펴려고 했다. 실제 책 내용은 One, two, three, four, five이다. 결과적으로 딸은 16개월에 처음 영어를 내뱉었고 그 첫 단어들은 Look! Elephants! One, two, three, five이다.
딸이 영어 노래를 부르며 손으로 숫자를 표현하는 그 광경을 처음 목격하는 그 순간, 놀라움과 경이로움에 휩싸였다. 16개월 딸이 영어를 드디어 입 밖으로 내뱉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 <A Parade of Elephants>에는 더 아기일 때부터 관심이 별로 없던 터라 자주 읽어주지 않았던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노부영 베이비 베스트 전집 CD를 평소에 많이 재생시켜 두어서인지 노래를 익힌 듯했다.
결국 딸이 내뱉은 단어 look, elephants, one, two, three, five의 의미에 대해서는 딸이 알지 못할 것이다. 그저 딸에게 반복적으로 들렸던 소리가 차곡차곡 쌓여 어느 순간 흘러넘치듯 입 밖으로 나온 것일 뿐이리라. 이 글에서 딸이 영어를 '말한다'가 아닌 '내뱉는다'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숫자표현이 나올 때 딸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나타내려는 것도 그저 나를 모방하는 것이겠다. 'one, two, three, four, five'가 나올 때면 내가 노래를 부르며 손가락을 하나씩 펼쳐 항상 딸에게 숫자의 의미를 표현해 주었기 때문에.
딸이 16개월이 조금 더 지나 초중반이 되었을 때엔 최근 자주 읽던 책 <Noisy Peekaboo! Choo! Choo!>의 도입부를 또 따라 불렀다. "츄츄 베이캐아러~"라며 알 수 없는 불명확한 소리를 내었지만 'Choo! Choo! Baby can't find choo choo train' 부분을 딸은 입 밖으로 따라 부르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A Parade of Elephants>의 마지막 부분 'Good night!'부분에서 딸은 night를 따라 부른다. "나앗"이라고. 이외에도 자신이 낼 수 있는 소리가 노래로 흘러나올 때면 따라 부르는 부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지금도.
솔직히 딸이 입 밖으로 영어를 내뱉을 것이라고는 조금의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아기일 때부터 영어 소리를 빨리 노출시키고 영어 듣기에 익숙해지기만 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영어를 아기일 때부터 접하면 영어가 항상 옆에 있는 엄마처럼 익숙해질 것이겠거니. 나중에 딸이 영어를 싫어하지만 않았으면 했다. 엄마인 내가 영어를 좋아하니까. 그리고 조금 더 딸의 미래를 내다본다면 소리에 익숙해지면 나중에 발음은 좋을 거니까 영어를 읽고 말하고 쓰는 것은 차츰 익히면 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 딸이 의미를 모르는 채 소리만 따라한 것이라고 해도 나는 소름이 끼친다. 딸이 그동안 CD 플레이어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엄마가 읽어주었던 영어 그림책의 장면들, 엄마가 영어 그림책을 읽어줄 때 엄마의 목소리, 책은 엄마가 안 읽어줘서 잘 모르겠지만 반복해서 듣고 있는 노래를 '오 또 이 노래 나오네' 떠올리며 들었겠지 하고 생각하니.
솔직히 말하면 아직 너무 어리기에 '이건 모르겠지. 아직 모를 거야'라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 딸에게 겉으로는 책을 읽어주고 딸과 소통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이처럼 거짓된 마음이 종종 흐르고 있었기에 최근 광경에 놀라워 소름으로 내 피부에 드러난 것이겠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딸에게 많은 것들이 일어나고 있구나… 그러다 갑자기 딸이 영어 책을 읽을 때, 영어 노래를 들을 때 딸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이 몹시도 알고 싶었다. 그러다 딸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들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딸이라는 한 사람의 세계가 궁금해진 것이다.
또 그러다 상념에 젖어 딸이 커갈수록 딸의 그 세계는 내가 알고 싶어도 다 알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 약간은 울적하고 섭섭했으며 마지막에는 걱정이 되었으나 응원하는 마음으로 정리되었다. 어릴 적 내가 떠올랐기 때문에.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기까지. 아니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님께 내 마음을 솔직하게 전부 내 보인 적이 없었으니까.
상장을 받아 기뻤을 때도, 교우관계로 약간의 갈등에 휩싸였을 때도,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직장에서 힘든 일이 있었을 때도 또 수많은 상황 속에서도 혼자 기뻐했고, 고민했고, 해결하고자 부단히 애를 썼다. 혼자 힘으로 힘이 부칠 때도 부모님보다는 친구에게 상황을 털어놓았고 조언을 구했다.
나처럼 딸도 엄마인 나에게, 아빠인 남편에게 자신의 세계를 다 보여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아렸지만 결국엔 혼자 굳건히 바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기에 그 세계가 어떤 곳인지 불투명한 상태라도 그곳이 나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하는 마음만으로도 괜찮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나에게도 무조건적으로 믿어줬던 부모님이 계셨기에 많은 길을 헤쳐나갈 수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