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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Feb 16. 2024

딸보다 우리가 더 심하다.

아빠, 엄마에 이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까지

 우리 집에는 TV가 없지만 자주 가는 친정에는 TV가 있다. 딸의 TV 시청을 극구 말리는 나는 친정에만 가면 어쩔 수 없다. 손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고픈 나의 아빠, 엄마가 계시기 때문에. 처음 뽀로로를 접한 딸은 그 이후부터 친정에만 가면 뽀요 TV 채널을 틀어달라고 리모컨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아빠, 엄마에게 가져온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뒤로하고 어쩔 수 없이 뽀로로를 함께 시청했던 남편과 나는 웃픈 경험을 했다. 남편이 딸과 뽀로로를 보다가 "아, 재미있네."라고 말했다. 어이없음과 동시에 웃음이 났다. 

 "뭐가 재미있는데?"라고 물으니

 "에디가 수영 배우는 게 재미있네."라고 남편이 자연스럽게 말하는 게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고 말하는 담담한 소회처럼 느껴졌다. 




 손녀를 끔찍이 사랑하시는 우리 부모님 때문에 친정을 자주 간다. 일주일에 많으면 4번도 가는데 그러다 보니 생긴 부작용 아닌 부작용이 생겼다. 남편과 내가 뽀로로에 대한 약한 중독 증상이 생겼다는 것. 


 하루는 내가 뽀로로를 보다 나온 노래가 너무 듣고 싶었다. 딸이 아닌 내가. 남편에게 "아... 그 노래 뭐더라. 엄청 중독적이었는데... 오빠 조금이라도 기억나는 부분 없어요? 그걸로 검색하면 노래 나올 것 같은데..." 하며 남편과 몇 분을 집단지성으로 골똘히 기억해 내 그 노래들을 찾았다. '티키타카', '놀자', '안녕 친구들'.


 집에서 한 곡 한 곡 영상 없이 노래를 틀었다. 딸이 좌우로 몸을 가볍게 흔들며 춤을 추는 반면 남편과 나는 흥겹게 격정적으로 춤을 추고 말았다. 노래가 끝났을 땐 마치 유산소 운동을 한 듯했다. 딸은 의외로 무심하지만 남편과 나는 진심으로 노래를 즐겼다. 우리를 보는 딸의 눈빛이 당황스러운 듯했다.


 나는 그 증상이 가끔 더 심해져 혼자 집안일을 할 때면 그 노래들을 흥얼거리곤 한다. 




 이번 설에 친정을 방문했을 때의 에피소드다. 딸은 TV로 뽀로로를 시청하고 있고, 남편과 나를 포함한 어른들은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남편이 밥을 먹다 "저 로봇같이 생긴 애는 이름이 뭐지?"라고 했다. 남편처럼 나도 처음 보는 캐릭터라 이름을 몰랐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던 아빠가 식사를 하시다가 "로이인가? 그럴걸."라고 하셨고, 나는 빵 터지고 말았다. 아빠가 뽀로로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이름을 꿰뚫고 계시는 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라서. 그런 나를 보고 아빠는 "뽀로로 저거 OO이 때문에 같이 보고 있으면... 귀엽드라. 볼만 하드라니까." 하셨다. 옆에 계시던 엄마는 웃음으로 동조하셨다.


 직접 검색해 보니 로이가 아니라 로디였지만. 그 딸에 그 아빠다. 그 딸은 나다.




 결혼 전에는 아무리 뽀통령, 뽀통령해도 관심 밖이었다. 직접 겪어보니 왜 뽀통령인지 알겠다. 영유아뿐만 아니라 30, 40대를 넘어 60대까지 홀려버린 뽀로로. 대단하다. 세대를 아울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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