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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Jun 01. 2023

남편도 나도 책육아 삼매경

내가 더 즐겁다

 딸의 2차 영유아검진으로 가기 시작한 친정 근처 소아과가 있다. 소아과 원장님은 옛 마을의 학장님처럼 친절하게 상담을 해 주셨다. 상담이 아니라 부모 교육처럼 느껴졌다. 먼저, 남편뿐만 아니라 나도 키가 커서 딸은 당시 먹는 분유량이 많지 않음에도 키가 큰 것으로 보아 유전적으로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는 농담 같은 농담 아닌 말씀으로 시작되었다. 아기에게 필요한 영양제부터 그 시기에 가정에서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아기의 몸 상태, 부모가 아기에게 TV, 휴대폰과 같은 디지털 매체를 노출시키지는 않았는지의 여부, 그리고 은근슬쩍 우리의 디지털 매체 사용량까지 체크하고 관련 필요 정보를 알려주셨다. 그 외에도 본인의 자녀 교육 방식, 현재 자신의 조카가 책을 너무 싫어해서 본인이 자주 서점에 데리고 가는 이야기 등 원장님 본인의 스토리까지 아낌없이 알려주셨다. 이 소아과를 방문한 아기들, 어린이들, 부모들이 많아 대기하고 있는 분들이 많음에도 진심 어린 마음으로 초보 부모인 남편과 나를 위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질문에도 성심성의껏 답해주시는 모습에 진정한 의사는 저런 분인가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던 분이다. 우리는 당시 딸의 사두증을 걱정하고 있었고, 큰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물리치료까지 받고 있었던 중이었다. 그래서 사두증에 대해 여러 질문을 드렸고,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고, 집에서도 부모가 스트레칭을 꾸준히 시켜주는 게 중요하다고 우리를 안도시켜 주셨다.


 이후에 또 궁금한 거 없으시냐며 괜찮으니 다 묻고 가라고 하셔서 우리는 여쭤보았다.

 “책육아를 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실 원장님의 자녀는 의대생이다. 그런데 어릴 때 책을 그렇게 많이 읽지는 않았다고 한다. 지금 현재 본인의 병원에 있는 그림책, 동화책들이 다 본인의 집에 있던 것들인데 많이 사줬지만 아들은 잘 읽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병원에 방문하는 아이들에게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병원에 두시는 거라고. 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시면서 휴대폰은 제발 최대한 늦게 주라고, 요즘 휴대폰이 문제라며 본인의 아들도 수능칠 때까지 2G 폰을 계속 썼다고 하셨다. 그리고 읽어보라고 추천하신 책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 또 본인의 조카가 책 읽기 뿐만 아니라 공부를 너무 힘들어해서 조카를 데리고 놀러 가는 것처럼 서점에 많이 데리고 간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아이가 책을 재미있어하는 게 책육아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이셨다. 요즘 젊은 부모들은 아이에게 놀이처럼 슬쩍, 장난감처럼 슬쩍, 놀러 가면서 슬쩍 책을 잘 읽히더라 하시면서.




 이제 곧 생후 10개월을 맞이할 딸. 남편과 나는 그림책을 자주 읽어준다. 온 집을 기어 다니기도 해야 하고, 장난감들 만지며 놀기도 해야지, 잠도 자야지, 아빠, 엄마와 산책도 나가야 해서 책을 읽을 시간이 많지는 않다. 그 사이사이에 잠깐씩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이 전부다. 오늘은 동물들이 실사로 담긴 책을 딸에게 읽어주었다. 동물들의 이름, 특징, 색깔, 모양 등등을 손짓과 효과음으로 표현해 주었다. 오늘 처음 보여준 탓이었는지 딸이 관심과 흥미를 보이는 것 같았다. 평소보다 꽤 오래 내 팔베개를 한 상태로 책을 유심히 쳐다보았으니까.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나도 재미있었다. ‘이렇게 많은 동물들이 세상에 살고 있구나, 아 이 동물 이름이 이거였구나, 오 비주얼이 비슷해 보이는데 둘의 차이점은 뭐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책에 빠져들었다. 딸도 엄마의 마음을 느낀 건지 꽤 오래 책을 쳐다보고 있는 그 상황이 마치 딸과 교감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 잠시 마음이 설렜다. ‘와, 나중에 딸이 말도 할 수 있고 책을 같이 읽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땐 어떤 느낌일까?’ 생각하니 진심으로 그 순간이 기다려졌다. 기대가 된다.


 자주 읽던 책이라도 시기를 두고 주기적으로 바꿔서 읽어주려고 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주로 읽던 책을 반복적으로 읽혀준다. 자주 읽혀주는 책이라 지루하지 않을까, 시시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달리 딸은 자주 보던 그림이라 그런지 더 집중하는 것 같고 익숙하고 친한 친구를 만난 듯 책 표지를 보여주면 더 좋아한다. 웃으며 책을 읽으러 엄마, 아빠에게 다가와 자신을 위해 활짝 벌린 팔에 머리를 베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남편이 딸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든다. 바쁘고 정신없는 육아의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어떤 아름다운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느낌. 따뜻한 휴식을 맞이하는 느낌. 남편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다행이고 행복이다.

정돈 안 된 주변환경이지만 즐겁게 책을 읽고 있는 남편과 딸


 책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아기에게 책을 읽어 주는 진정한 목적은 아기 안에 이미 있는 잠재력에 양분을 주고, 부모와 아이 사이를 친밀하게 묶어 주며, 아기가 자라나 책 읽을 준비가 되었을 때 아이와 책 사이에 자연스러운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다.




 딸에게 책을 자주 읽혀주면서 생각한다. 딸이 책을 통해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배웠으면 좋겠다고. 다양한 관점의 책을 읽으면서 너그러운 사람으로 많은 것을 포용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고. 동시에 자신의 길과 방향을 정립하고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우선, 딸이 책을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보자. 소아과 원장님 말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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