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부 안 해도 성적이 높은 학생들에 대한 문제와 해결책
중학교에 근무하다 보니 이런 학생들을 종종 보곤 합니다. 고등학교에서는 아마 보기 힘들 거예요. 영어 공부에 그다지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음에도, 혹은 시험 며칠 전 잠깐 벼락치기를 했음에도 중간, 기말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거두는 경우 말입니다. 교사 입장에서 어찌 보면 이런 학생들이 조금 얄밉기도 하지만 슬프게도 이런 학생들의 경우 중요한 것을 놓치고 갈 확률이 많습니다. 그건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중학교 영어 공부를 내실 있게 해 나갈 수 있을까요?
중학교 시험 범위가 적은 편에, 문제 난이도가 낮기 때문입니다. 학군지에 속한 학교의 경우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 학교 수업 중 배운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문제를 출제하는 편입니다. 배운 내용을 확인하는 차원의 문제랄까요? 그러므로, 암기에 능한 학생들은 시험 범위에 속하는 얼마 되지 않는 양의 지문들을 깊이 이해하지 않고 그저 통째로 외워버리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시험 당일, 영어 시험지에 제시된 문제들은 자신이 외운 지문과 다른 부분을 찾으면 답이 되는 경우가 많을 거고요.
하지만 이는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중학교에서나 통하지, 고등학교에서는 절대 통하지 않습니다. 상급학교로 갈수록 시험범위부터 어마어마해지니 그 내용들을 통째로 외우기란 현실적으로 벼락치기 공부론 거의 불가능하죠.
정작 중학교에서는 지필평가에서 높은 영어 성적을 유지하다 고등학교에 가서야 더 이상 내 공부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곤 합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중학교에서부터 ‘아, 영어는 이런 거구나’를 느끼며 제대로 공부해야 고등학교에서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겠지요.
중학교에서 영어 지문을 논리적, 구조적 이해 없이 그저 통째로 외우며 시험공부를 해온 학생들은 많은 것들을 놓치고 맙니다. 그 방법이 제대로 된 공부법이 아님을 알면서도 계속 유지하는 것은 그렇게 해도 중학교에선 성적이 어느 정도 잘 나오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어떤 것들을 놓치게 되는 걸까요?
첫째, 글을 제대로 읽는 법을 터득하지 못합니다. 구체적으로, 글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못한다고 할까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외우기만 한 학생들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아왔습니다. 단어나 구, 문장을 정확성을 우선으로 암기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을 겁니다. 어차피 글 전체를 통째로 다 외우게 되면 상관없는 거 아니냐고요.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만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 글 전체가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글인지, 어떤 주장에 대해 몇 가지 근거를 내세우며 설득하는 글인지, 혹은 어떤 이론을 예시로 이해하기 쉽게 쓴 글인지 등등. 전체적인 글의 구조를 보고 세부적으로 읽어 들어가는 것과 아무 생각 없이 외우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전자의 경우, 외우지 않아도 상당 부분 외워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진짜 영어를 잘하는 학생들은 글 앞부분 몇 문장만 읽어보면 이 글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그래서 전체적으로 어떤 구조를 갖고 있는지 파악이 됩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영어로 된 글을 많이 읽어왔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다양한 영어 텍스트에 노출되어 글의 첫 부분만 읽어보아도 예측이 가능하죠. 그렇게 글을 끝까지 꼼꼼히 읽어나가며 자신이 예상한 대로 글이 흘러가는지 점검합니다. 읽기 처리 방식인 하향식(top-down)과 상향식(bottom-up)이 자유자재로 상호작용하며(interactive) 이뤄지는 거죠. 그러나, 영어를 잘 못함에도 암기를 잘해서 그나마 성적이 잘 나오는 학생들의 경우 상향식 읽기 처리 방식에만 몰두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 가지 방식으로만 읽기가 이뤄지니 두 가지 방식을 모두 활용하는 학생들보다 읽기 이해의 양이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영어 문법에 대한 이해가 계속 부족할 겁니다. 영어 문법을 공부할 필요 없다는 얘기들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문법은 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고의 틀입니다. 그 틀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습니다. 그 내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틀인 핵심 문법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도 문법을 알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문법을 위한 문법, 수학처럼 공부하는 문법은 반대합니다.
학생들은 생각 없이 지문 전체를 외워버리는 이유도 문법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지문 내용을 다른 표현이나 문장 구조로 바꾸지 않는 이상 문법을 몰라도 교과서 내 지문을 외우면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이죠.
셋째, 영어는 잘한다는 착각 속에 빠져 제대로 된 공부법을 끝까지 모를 가능성이 큽니다. 중학교에선 암기만 제대로 해도 성적이 잘 나옵니다. 심지어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영어 성적은 상위권인데 다른 주요 과목 성적은 중, 하위권인 학생들 말입니다. 생각보다 많습니다. 암기하는 방식이 고등학교에서는 먹히지 않는다는 영어 선생님의 충고를 자주 들으면서도 공부법을 바꿀 생각이 좀처럼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적이 당장은 잘 나오기 때문이죠. 고등학교 진급 후 공부법을 바꾸기엔 시행착오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제대로 된 공부법을 주위의 도움과 함께 스스로 찾아가며 실천해 보고 부족한 점은 보완해 나가며 완성해가야 합니다.
영어 텍스트를 전체적으로, 그리고 세부적으로 읽고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한 문장 한 문장을 꼼꼼히 읽고 제대로 이해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뤄야 하는 것은 어떤 새로운 글을 맞닥뜨리더라도 글의 전체적인 구조, 세부적인 내용, 글을 이루고 있는 문장들을 제대로 읽어내는 능력입니다.
중학교에서 영어 성적이 꽤 괜찮은 학생들도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어휘적 표현, 문법이 부족해 어느 부분을 뭉뚱그려 이해하고 있거나 글의 전체적인 구조를 몰라 글을 요약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저 외우는 것 말고 어떻게 영어를 공부해야 할까요?
먼저, 글이 전체적으로 어떤 구조로 쓰였는지를 파악합니다. 그러면 첫 문단/가운데 몇 문단들/마지막 문단은 각각 어떤 역할을 하는지, 좀 더 자세히 들어가면, 각 문단의 주제 문장, 뒷받침 문장 등을 찾아볼 수 있고요. 또, 각 문단들이 어떤 흐름으로 전개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세부적으로는, 각 문장들을 해석해 보고, 제대로 의미 파악이 되지 않는 부분들을 해결합니다. 모르는 어휘가 있어서인지, 문장이 너무 길어 구조 파악이 힘든 것인지, 어떤 문법을 몰라서인지 등 이유를 파악하고 원인에 해당하는 부분을 공부해 나갑니다. 그런 맥락에서 영어 어휘와 문법 공부는 중요합니다. 중학교 필수 영어 어휘, 핵심 영문법 책을 따로 구매하여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덧붙여, 내신과 상관없이 영어 듣기도 문제집이나 EBS 기출문제를 풀어보는 등 꾸준히 시간을 투자합니다. 영어 독해 문제집으로 다양한 텍스트를 접하며 위와 같이 글을 제대로 읽는 연습을 꼼꼼히 해나가야 합니다. 관심 분야와 난이도를 고려해 원서를 읽어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모든 공부의 근간인 읽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읽기 스킬이나 생각 없이 외우는 방법으로는 글을 제대로 읽는 방법을 터득할 수 없습니다. 제대로 읽고 많이 읽으면 읽기 스킬, 내용 암기는 따라오는 것입니다. 고등학교보다 비교적 시간이 여유로운 중학교 시기에 그 훈련, 시행착오, 완성과정을 거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