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잘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학생들에 대한 해결책
몇 해 전, 새로 발령받은 학교에서의 첫해 3월은 여느 때와 같이 담임학급부터 교과 담임을 맡은 학급의 학생들까지 전반적인 학급 및 학생들의 분위기, 성향 등의 파악으로 바쁜 시기였습니다. 그런 시기에 제가 부로 노력하지 않아도 저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준 학생이 있었습니다.
원어민 선생님과의 회화 시간에 들려준 팝송을 마치 K-POP인양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고, 원어민 선생님과 막힘없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제 수업시간에 우연히 나온 일론 머스크에 대해서는 테슬라와 주가, 당시 화제가 된 기삿거리에 바삭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취미를 넘어 장래희망으로까지 자리 잡은 스케이트 보드 라이딩에 대해서도 알려주더군요.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나 학업에 대한 열중도가 주위 학교들보다 낮은 편에 속했던 학교였습니다. 그랬기에 영어를 이해하고 표현하는데 유창하며, 영미문화권에 대한 배경지식까지 겸비한 학생이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이 꽤 놀라웠습니다. 이 학교에서 지필평가 성적이 압도적으로 높은 학생을 봐도 이렇게까지 놀랍진 않았을 겁니다. 최상위권 학생은 어딜 가나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자연스럽게 그 학생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박학다식할 것 같았고, 갓 중학교 2학년으로 진급한 3월이라 학생의 지필평가 성적을 파악하진 못했지만 당연히 상위권에 속할 것이라 속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와, 마침 그 학생의 담임 선생님이 계시기에 전반적인 학급 분위기와 감명 깊었던 그 학생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한술 더 떠 그 학생에 거는 기대까지도요.
그랬더니 담임선생님의 의외의 반응에 또 한 번 놀라고 말았습니다. “아마 그럴 일 없을 걸요.”로 시작되는 담임선생님의 견해는 저와 많이 달랐습니다. 물론 학생의 과거 행동에 의거 현재와 미래를 미리 판단하는 것은 선입견에 발목 잡힌 교사의 안일함과 경솔함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1학년 때 그 학생의 전반적인 학교 생활과 한 학기 성적에 대해 알고 나니 담임선생님의 의견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의 학교 생활, 그리고 다른 과목은 차치하고 영어 성적만 놓고 보아도 제 기대에는 훨씬 못 미쳤습니다. 학생의 개인정보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그의 학교 생활에 대해서는 자세히 쓰고 싶지 않습니다. 영어 성적에 대해서는, 작년 지필평가가 아주 쉽게 출제됐음에도 성적이 중하위권에 속했고, 학생과의 상담을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영어 듣기, 말하기는 잘하는데 문법, 독해는 약해요. “라고 말하더군요.
원어민 선생님과의 막힘없는 대화와 여러 팝을 잘 알고 따라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영어 팝송 같은 걸 계속 틀어두셨어요. 그리고 어릴 때 아버지랑 1년 동안 미국에서 산 적이 있어요. “라고 했습니다.
위에 언급한 학생은 영어 듣기, 말하기 성적은 최상이었습니다. 교내 원어민 선생님과의 말하기 평가에서도 항상 100점을 받았고, 영어 듣기 평가도 쉽게 출제되는 경향이긴 하지만 쉬이 틀리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가끔 지필 평가에서 아주 최하위권에 속하는 학생들도 영어 듣기 평가는 100점인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전반적인 영어 의사소통능력은 한 장면만 보고는 알 수 없습니다. 왜냐고요? 영어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는 서로 연관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별개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분리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공인영어시험인 토플, 아이엘츠도 영어의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 네 부분의 평가를 따로 실시하지요. 토익, 텝스도 리스닝, 리딩과 별개로 스피킹, 라이팅 부분도 따로 접수 및 실시할 뿐이지 네 기능 모두 평가하고 있습니다.
다시 그 학생 이야기로 돌아가, 제가 그를 관찰하고 상담한 바로는, 학생 스스로가 영어 청취 및 회화에 유창하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영어 독해와 쓰기도 본인이 공부하면 듣기와 말하기만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는 듯했고요. 하지만 자신감은 공부에 윤활유 역할을 할 뿐이죠. 결국, 영어를 잘 읽고 잘 쓰려면 팝송을 자주 듣던 것처럼, 미국에서 생활하며 일상 영어 회화에 많이 부딪치고 시간을 썼던 것처럼 읽기 공부와 쓰기 공부에 따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아쉽게도 아직은 학습 동기가 유발되지 않아 굳이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해 공부를 할 필요성을 못 느꼈으며, 친구들과 어울려 추억을 보내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청소년이었죠.
아이가 듣기, 말하기 평가에서 받은 높은 점수, 자신이 팝송을 듣고 부르고,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보고 이해한다는 것에 자신감, 자기 효능감을 느끼며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영어 독해, 작문에 부족함을 느끼면 그 공부를 회피할 가능성도 있어요. 자신이 잘하는 분야가 더 재미있거든요. 그 공부를 할 때 스스로가 더 돋보이기도 하고요. 또, 본능적으로 어려운 건 하기 싫잖아요.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람들마다 기준이 다 다를 것이지만, 언어의 네 가지 기능(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을 고루 유창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즉, 영어를 잘 이해(듣기, 읽기)하고, 표현(말하기, 쓰기)할 줄 안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려면 어느 한 기능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각 기능을 고루 발달시켜주어야 합니다. 어느 한 기능을 잘한다고 해서 나머지 세 기능이 자동적으로 발전하지는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