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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Jun 09. 2023

부부에게 이따금 여행이 필요하다.

서울 서촌 일대, 서울시립미술관

 남편과 나는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사랑스러운 딸이 있다. 우리 부부에게 온 첫아기라 오매불망 금지옥엽 보물인 딸이다. 무엇 하나 조심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외출을 하려고 해도 코로나19, 미세먼지 등 대기상태, 기온, 날씨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이 중 하나라도 좋지 않을 경우엔 집을 나서기를 망설이곤 했다.


 그런 우리가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것도 1박 2일로. 그것도 대구에서 서울까지. 그것도 자차가 아닌 수많은 타인과 함께 이용하는 KTX를 타고. 딸이 울면서 보채기라도 한다면 많은 이들의 눈총을 받을 수도 있는 대중교통을 타고 말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난관들이 도사리고 있는 모험을 시도해 보기로 결정했다. 언제까지 벌어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을 두려워하며 시도조차 하지 않을 순 없으니까. 남편과 딸, 우리 셋이 함께라면 뭐든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유치한 패기가 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여행을 간다는 설렘과 함께.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6월 1일 목요일. 여유 부리며 당일 아침에 짐을 꾸렸다. 그래서일까. 제일 중요한 딸의 젖병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동대구역에서 발견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 남편과 나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딸의 빨대컵에 물과 분유를 타 먹였다. 그리고 서울역에 도착해서 바로 찾을 수 있는 롯데마트에서 젖병을 사자고 계획한 후 기차에 탑승했다. 다행히 딸은 보채지 않고 낮잠을 자기 시작했고 걱정이 무색하게 서울역에 도착했다. 롯데마트에 들러 젖병도 사고 순조롭게 다음 코스로 이동했다.


 이번 여행의 주요 일정은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관람과 서촌 걷기, 그리고 청와대 방문이었다.  이 모든 것을 어렵지 않게 소화하기 위해 서촌 쪽에 숙소를 잡았고, 숙소 근처 통인 시장에 들러 기름 떡볶이를 늦은 점심으로 먹기로 했다. 우선 서울역에서 버스를 타고 통인시장 근처에서 내렸다. 나는 딸을 아기띠로 안고, 남편은 유모차와 모든 짐들이 든 가방을 책임지며 약 2-30분가량을 걸었다. 대구에서부터 KTX 안, 그리고 현재까지 약 10kg의 딸을 아기띠로 안고 있는 나를 남편은 연신 걱정했다.

 “괜찮나 와이프 너무 힘들겠는데… 우리 딸이 엄마만 찾아서 큰일이네. 엄마 힘들겠다.”

 나는 유모차와 무거운 가방을 드는 게 더 힘들게 느껴졌다. 최근 목 디스크 발견으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던 남편이라 어깨, 팔에 하중이 많이 드는 짐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나도 자못 걱정이 많이 되던 차였다.

 “오빠 나는 오빠가 들고 있는 가방이랑 유모차가 더 무거울 것 같아. 괜찮아요?”

 날이 더워지는 탓에 짐도 더해져 딸을 케어하기 쉽지 않았지만 우리 부부는 서로를 안쓰러워하며 그래도 여행차 먼 타지에 와있다는 설렘과 기쁨을 지켜낼 수 있었다.


 통인시장에 도착해 항상 국물떡볶이만 먹던 나는 처음으로 기름떡볶이를 사 남편과 숙소에 도착했다.

 통인 시장이 숙소에서 가까운 터라 걸어서 마침내 숙소에 도착했다. 그제야 더위와 무거운 짐, 부부 둘만의 여행보다 보호해야 할 자녀를 동반하는 셋이 하는 여행의 피로가 선뜻 느껴졌다. 우선, 허기를 달래기 위해 기름떡볶이를 먹기 시작했다. 먹으면서도 남편은 “KTX 안에서 와이프한테 너무 미안하더라. 딸 재운다고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서서… 얼마나 마음이 그렇던지…”  

 나는 또 “난 유모차랑 가방 드는 게 더 싫고 힘들어. 그래서 난 오빠가 더 힘들 것 같아요.”

서로를 걱정하면서도 곧 관람할 전시에 대한 기대를 한껏 나눴다.


 드디어, 서울시립미술관에 도착했다. 예약한 티켓을 발권한 후 입장했다. 에드워드 호퍼. 그의 전시에 과연 관람객들이 아주 많았다. 남편은 작품 구경과 함께 사람 구경에도 들떠 있었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남편은 깔끔하게 차려입은 관람객들의 패션을 관찰하며 급기야 호퍼가 파리에 있을 당시 카페나 거리에서 파리지앵들을 관찰했다는 안내문을 보고 호퍼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작품과 작품 정보에 집중하며 전시를 오롯이 느끼는 것에 집중하는 편이라 호퍼의 그림과 그림 방식, 재료에 심취했다.


 그러던 중 호퍼의 한 작품이 어떤 다른 한 그림을 떠올리게 했다. 촬영이 불가능한 구역이라 호퍼의 그 작품을 찍지 못해 아쉬웠다. 그것은 호퍼가 울창한 나무를 유화로 그린 것이었는데 남편을 처음 만나기 전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있던 그림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그 그림은 남편이 당시 아이패드로 통영의 모습을 직접 그린 그림이었다.

남편이 그린 통영 나무 그림. 호퍼 작품을 못 올려 아쉽다.

 “오빠 이 작품 봐봐요. 뭐 생각 안 나요?”

 “뭐가 생각나? 난 딱히…”

 “오빠 우리 처음 베리베리 카페에서 만나기 전 며칠동안 카톡으로 인사하고 얘기했었잖아요. 그때 오빠 프로필 사진에 있었던 오빠가 그린 통영이랑 느낌이 비슷해요!”

 “그렇지. 우리 아티스트들은 그리는 방식이 비슷하거든.”

남편이 호퍼 전시에 와있다는 들뜬 마음과 즐거움으로 한껏 부린 너스레에 나는 그냥 웃어넘겼다. 풉.


 남편과 전시 내내 에어팟을 하나씩 나눠 끼며 호퍼의 작품에 대한 오디오가이드를 들으며 전시를 충실히 즐겼다. 전시 마지막에 호퍼 부부에 대한 다큐까지 시청 후, 남편은 엽서를, 나는 호퍼의 초기 습작이 그려진 작품을 표지로 한 노트 한 권을 기념으로 사고 숙소로 향하는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빠 근데 그러고 보니 우리 첫 만남 때 오빠가 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보고 우리가 취향이 비슷할 것 같다고 만나기 전부터 예상했다고 했었잖아. 그 사진도 생각해 보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찍은 사진이었네. 히히. 호크니 전시 때.”

 “응 맞아 맞아. 호크니. 서울시립미술관이었지.”

 연애 때의 추억을 의도치 않게 회상케 한 서울시립미술관에서의 호퍼의 전시였다.  




 부부에게 여행은 자주는 어렵겠지만 가끔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 중인 집에서는 나오기 힘든 대화의 주제들이 자연스레 수면 위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아니, 대화 자체가 힘들다. 육퇴 후에는 아기 따라 우리도 쓰러져 잠들기 바쁘다. 딸을 재우다 옆에서 나도 모르게 같이 잠드는 꼴이니. 여행을 하며 생각지도 않았던 연애 때의 몽글몽글한 추억들이 소환되니 그때의 우리를 마주한 현재의 우리는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친구처럼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집에서 먼 타지에서의 여행을 가족과 함께 한다는 것은 어떤 미지의 장소를 모험하는 느낌이 들게 해 그 과정에서의 고난과 역경에 대하여 서로를 챙기고 걱정하는 또 다른 모양의 사랑을 표현하고 느끼게 한다.



*서울 여행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

*2023.6.1.(목)-6.2.(금) 서울 서촌 등 여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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