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ing Choenghee Jun 13. 2023

부부에게 여행은 감성 더하기이다.

수성동 계곡 산책, 서촌 느리게 걷기, 청와대 그리고 뜻밖의 선물

6월 1, 2일, 양일간의 서울 여행기 2편입니다. 1편 혹시 못 읽어보셨다면 여유되실 때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https://brunch.co.kr/@cjh8951/25


 서울시립미술관에서의 에드워드 호퍼 전시를 관람하고 난 후 숙소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걸으며 전시에서 서로 감명 깊게 봤던 부분들을 나누는 소회를 가졌다. 남편은 호퍼의 파리에서의 사람 구경과 그걸 그린 작품들을 얘기하며 본인도 사람 구경이 재미있는 것 같다며 동시에 서울 사람들을, 아니 그들의 패션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남편.

 한편, 미술관에서부터 계속 아기띠에 안겨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 딸은 버스에서 자유의 의지를 마음껏 표출했다. 딸을 안고 자리에 앉았더니 딸이 앞 좌석의 손잡이 부분을 잡고 일어섰다. 도무지 손잡이를 놓을 생각도, 앉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런 딸을 다행히 귀엽게 봐주는 승객분들에 감사했다. 딸이 행여나 불편을 끼치진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우리는 무사히 버스를 하차했고, 숙소 근처 편의점에 들러 여행 온 첫날 육퇴 후 토크 타임을 즐기기 위해 맥주와 안주거리로 과자 몇 개를 샀다.


 저녁 7시가 되기 조금 전에 숙소에 도착했다. 딸에게 마음껏 기고 눕고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좀 주고 우리는 딸과 반대로 바닥에 누워 미동 없이 체력을 충전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와이프야, 다음에도 서울 여행 오고 싶어?”

 “응! 이번에 해보니 장거리여행이긴 하지만 딸이랑 같이 충분히 가능하네! 너무 기분 좋아! 또 여행을 갈 수 있다니, 지금껏 어렵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아 그…그.. 그.. 그래”

 남편은 서울여행이 자못 힘든가 보다. 하지만 나는 여행지에서 가만히 있는 성격이 못된다. 최대한 많이 걸으며 많은 것을 느끼고 겪고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8시 반이 되어 나는 남편에게 저녁도 먹고 계획대로 수성동 계곡을 거쳐 야경이 예쁘다는 무무대로 산책을 나가자고 했다.


 먼저 통인시장에 들러 저녁거리를 간단히 사기로 했다. 근데 저녁 9시가 다 되어가서 그런지 거의 모든 상점들이 문이 닫혀있었다. 감성 있는 샵들이 많아 저녁에 산책하며 구경하려고 했었는데 너무 아쉬웠다. 내일 아침도 있으니 아쉬움을 뒤로하고 로컬한 만두집을 들러 저녁을 간단히 해결했다. 그리고는 근처 떡집에서 찹쌀떡도 하나씩 사서 봉지에 싸서 먹으며 걸었다. 빵순이인 나를 위해 남편이 근처 베이커리도 들리자며 마늘빵도 한 봉지 샀다. 결혼 전 단 둘이 연애할 때처럼 분위기 있는 맛집에 가서 여유 있게 저녁 식사를 하지는 못하지만 모든 것이 충분한 데이트였다. 집이 아닌 서울에 와있다는 기쁨, 딸과 함께도 우리는 먼 곳을 여행한다는 자신감, 산책을 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소소한 행복, 그 행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남편, 그리고 우리 보물 딸. 부족한 게 없다고 느꼈다. 순간순간이 즐겁고 행복했다.  


 수성동 계곡까지의 길은 경사가 높아 쉽지만은 않은 길이었다.

 “오빠 근데 지금 이렇게 걸으니까 나 임신해서 몸 무거워졌을 때 부산에 흰여울문화마을 걸으러 갔을 때 기억나. 출산 가까워져 와서 좀 걸어야 하니까 오빠가 여행겸 걷기 좋은 곳 찾아서 갔었잖아요. 그때도 경사 좀 높고 계단 많은데 몸이 무거워서 힘들었는데… 지금은 딸이 뱃속이 아니라 나에게 안겨있네” 시간이 흐르니 어느새 우리 가족 구성원 수도 늘었다.

 서울에 이런 곳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공기도 좋고 밤하늘의 달도 너무 밝았다. 계곡이 보이자마자 남편은 아이폰을 꺼내 풍경을 담은 사진을 찍었다. 최근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한 나를 위한 사진이다. 글에 쓰라며 본인이 사진을 다 찍어준다고 어디 가는 곳마다 남편은 연신 카메라 어플을 켰다.

무무대까지는 너무 어두워 못갔다. 남편이 찍어준 서울 경치와 밝은 달.

 “오빠가 이렇게까지 내 브런치스토리에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니까 잘 안될 수가 없겠다.” (아직 구독자수, 조회수가 많지 않다.)

 남편은 괜히 겸연쩍어했다. 그리고는 화제를 바꿨다.

 “산책은 참 좋은 것 같다. 걸으면서 대화도 하고 기분도 좋아지고 말이야.”

 남편의 말에 나는 이 말을 몇 번 하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했다는 생각을 하며 또 똑같은 말로 답했다.

 “맞아. 맞아. 오빠 참 행복해, 기분도 너무 좋고. 서울 잘 왔네.”

 이에 나보다 5살 많은 남편은 아빠처럼 어른스러운 말로 대화를 갈무리했다.

 “그래. 행복이 다른 게 아니라니까. 지금 현재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고, 너무 아끼지만 말고 합리적으로 소비하면서 즐길 거 즐기고, 미래를 위해서 너무 큰 욕심 가지지 말고 자분자분 쌓아가면 되는 거라.”

 다행히 남편과 나는 인생에 대한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마저 많이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또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했다.


 처음으로 이렇게 먼 길 떠나온 여행을 함께해서인지 피곤한 딸은 숙소에서 쉽게 잠에 들었다. 남편과 나는 테이블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나눠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맥주와 숏다리 오징어가 부족해서 더 사러 나가고 싶었다.

 나는 하루 동안 걸으며 느낀 서울 서촌이 지금까지 겪어온 서울과는 사뭇 달랐다고.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 비교적 조용하고 공기도 좋아서 처음엔 도시 외곽지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고. 남편은 그래도 많은 샵들이 좁은 곳에 옹기종기 자기만의 색을 뽐내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저 조용히 소소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업으로 하며 사는 게 좋아 보였다며 그런 샵들을 운영하려면 임대료 등 돈은 많이 들겠지만… 하며 덧붙였다. 또 남편은 통인시장 앞에 있는 정자에서 남녀노소, 외국인까지 너무 자연스럽게 각자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는지, 약속한 상대를 기다리는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을 머물고 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나중에 서촌의 작은 주택 같은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시티라이프를 즐기는 나의 눈치를 살피면서.




 다음날 아침, 내가 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남편은 딸을 데리고 아침 산책을 나갔다. 화장을 하는 동안 남편이 딸과 돌아왔다. 남편은 여기, 저기, 또 여기까지 가봤다며 나에게 감성 있는 샵들의 창에 비친 딸과 함께 오붓하게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자랑하듯 말하는 남편이 5살 많지만 귀여웠다. 남편도 딸도 나갈 채비를 한 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맞이하며 문을 나섰다. 어제부터 눈여겨본 카페 라 부아뜨 블루가 첫 번째 목표점. 파랑파랑한 외부가 빵도 맛있을 것 같은 느낌을 뿜어냈다. 저기 꼭 가보자며 남편에게 당부를 했었다. 원래 아침을 잘 챙겨 먹지 않는 우리는 간단히(?) 먹자며 크루아상 하나와 뺑오쇼콜라, 그리고 단 커피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바닐라 라테를 주문했다. 그리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평소였으면 딸 돌보느라 여념 없는 아침을 깔끔한 접시와 포크, 귀여운 라테아트가 드리워진 커피와 함께하니 그저 행복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카페 라 부아뜨 블루에서 아침을 열었다.


 빵으로 아침을 열었지만 또 스콘을 먹으러 스코프에 가기로 했다. 스콘이 맛있기로 유명한 스코프. 어제 숙소로 가는 길에 우연히 보고는 여기도 오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미국 영어보다 영국 영어의 발음에 매료되어 영어에 더 깊이 빠졌었다. 거기에 영드 스킨즈, 그리고 해리포터 소설까지 영국은 나에게 로망의 나라였다. 성인이 되면 꼭 영국에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것이 나의 학창 시절 버킷리스트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의 대표 빵 스콘이 있어서인지 베이커리류의 영어네임이 함께 있어서인지 실제 영국의 카페에 와있는 느낌에 더 흥분되고 기분 좋았다. 아침을 감성 깊은 카페 두 곳을 전전하면서 빵과 함께 하다니. 여행은 참 일상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스러웠던 스코프


 숙소 체크아웃을 한 뒤 우리는 다음 일정을 진행했다. 청와대 방문. 숙소에서 청와대까지는 산책 겸 걸어가기로 했다. 통인시장에 들러 남편이 먹을 김밥까지 사서. 역대 대통령들이 집무를 보던 청와대.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있던 벽면을 보았을 땐 걸어온 정치적 행보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위압감이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대통령이라는 직이 주는 엄청난 책임감의 무게 때문이리라. 그 무게를 잘했든 못했든 견뎌온 사람들의 얼굴이어서 그랬으리라. 남편, 딸과 함께 그런 청와대를 느릿느릿 걷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놀라웠다.

청와대 집무실


 이제 대구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남편이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걸어서 갔다가 버스 타고 서울역으로 가자는 제안에 한 때 걷기 중독이었던 나는 바로 오케이. 기차 승차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아 광화문 교보문고는 도장 깨기 하듯 들렀다 오게 생겼다. 그래도 걷는 건 좋으니까 그냥 쓱 지나가자고 하며 웃어넘겼다. 그런데 가는 길에 경복궁 앞에 배우 신현준이 떡하니 있었다! 우연히 그것도 쉽게 볼 수 없는 인물을 실제로 본다는 것은 선물과도 같았다. 함께 사진도 찍었다. 신현준 배우는 딸을 보고 첫째냐고 남편에게 물었고, 그렇다는 대답에 셋째까지 파이팅이라는 말을 남겼다. 아무튼 특별한 조우를 하게 되어 이번 여행에 더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그 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정말 발자국만 찍고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서울역으로 향하기 위해 버스에 승차했고 자리에 앉았다. 우리 버스 옆에 또 다른 버스가 나란히 달리고 있었는데 그 버스 안에 우리와 비슷한 위치에 앉아있던 아주머니 승객께서 딸을 보고 웃으며 까꿍 해주고 계셨다. 두 버스 다 달리고 있었는데. 남편과 나는 그 상황이 너무 따뜻했고 웃음도 났다. 아쉽게도 두 버스는 서로 다른 길로 갈라져야 했고 조금 후 서울역에 도착했다.

    


     

 남편과 나는 6월 1일~2일 양일간 서울 여행을 다녀왔다. 아직까지 서울 여행에 대한 얘기를 집에서 육아하면서 하고 있다. 그 여운이 생각보다 길다. 아무래도 우리 부부에게 이번  여행이 필요했나 보다.

 일상이 아이 돌보기, 집안일을 계속 번갈아 반복하며 딸의 이유식은 정성을 다해 만들면서도 우리는 간단히 때울 수 있는 걸로 배를 채우곤 했다. 그렇게 시간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감성도 부족했다. 바쁜 육아 생활에 했다 안 했다 옳다 그르다 따위의 이성과 사실만이 그득했다. 우리도 처음 부모가 되어보는 거니까. 허둥지둥 시간도 많이 걸리고 눈앞에 닥친 현실의 일을 쳐내기 바빴다.

 이번 여행을 통해 감성 있는 베이커리 카페, 문구점, 서점 등 이곳저곳 천천히 걸으며 더 궁금하면 들어가 보고 소소하게 빵 하나, 커피 한 잔 즐기고 예쁜 것들 구경하면서 그 순간순간의 아기자기한 기쁨을 느끼는 것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딸이 중심이 된 삶에서 잠시 벗어나 어쩌면 소소한 그 순간들이 너무나도 달콤하게 느껴졌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부부에게 이따금 여행이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