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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Jul 26. 2023

“특별하게 말고 평범하게 키워라.”

“아빠, 평범한 게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중복날 저녁 7시가 넘어 엄마가 전화를 주셨다. 삼계탕 끓이고 있는데 먹으러 올래 하시려고. 옆에 계시던 아빠가 스피커폰으로 OO이 데리고 오라고 채근하셨다. 백화점에서 산책 겸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던 우리는 백화점이 우리 집과 가까워 잠시 산책하다 집으로 갈 요량으로 딸의 기저귀도 챙기지 않고 왔었다. 남편과 나는 삼계탕을 먹으면 밤이 깊어질 것 같아 어차피 오래 못 있으니 기저귀를 챙기지 않고 바로 친정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친정에 도착해 삼계탕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후, 아빠가 손녀 먹이겠다고 사두신 크고 탐스러운 수박을 두 동강 내셨다. 그리고, 수박의 가장 달콤하고 빨간 가운데 부분을 잘라 그릇에 옮긴 후 11개월 된 손녀가 먹을 수 있게 씨를 빼고 작게 자르셨다. 먹일 때마다 작은 수박을 주는 사람이 미안할 정도로 입을 크게 벌려 야무지게 받아먹는 딸을 보고 아빠, 엄마는 너무 귀여워 함박 미소를 지으셨다.


 엄마는 남편과 나에게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라며 주셨는데 작은 밀크 아이스크림에 초코가 뒤덮고 있는 티코라는 아이스크림이다. 아빠가 OO이도 하나 주라며 껍질을 까지 말고 그저 갖고 놀게 해 주라며 딸에게도 티코 하나를 건네 주셨다. 달콤한 티코를 즐기며 아빠, 엄마와 함께 모처럼 수다를 떨고 있는데 딸이 계속 티코를 껍질채 빨고 있는 게 수상하게 느껴졌다. 왠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느낌…


 확인해 보니 티코 껍질 가운데 부분이 아주 미세하게 터져 있었고, 그쪽으로 조금씩 나오는 초콜릿과 밀크 아이스크림을 딸은 연신 빨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놀라서 바로 티코를 빼앗아 버렸고 딸의 입 안을 닦아주었다. 정말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고 싶은 것이었다. 아이스크림, 빵, 과자 같은 달콤한 가공식품 말이다. 한편 얼마나 달콤했을까. 태어나서 세상 처음 맛보는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이니… 아빠와 남편은 흥분과 놀라움에 어쩔 줄 모르는 나를 괜찮다며 정말 조금 먹은 것 같다고 지금부터 안 먹이면 된다고 달래주셨지만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마침 딸이 수박을 많이 먹어서인지 용변을 봤다. 챙겨 온 기저귀도 없었기 때문에 빨리 집으로 가야 했다. 아이스크림 사건과 용변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짐을 싸 친정을 나왔다. 집에 도착해 딸을 씻기고 양치질을 시켜 재우려고 하는데 아빠가 전화를 주셨다. 잘 도착했냐고. OO이 자냐고. 물으시면서 뒤에 갑자기 어려운 말을 덧붙이셨다.


애는 특별하게 말고 평범하게 키워라.


 삼계탕 드시며 술을 한 잔 하셨던 아빠는 취기가 조금 올라온 상태셨다. 저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잘 와닿지 않아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술에 취하신 아빠는 말씀이 많아지시기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다음에 기회 되면 여쭤봐야겠다고 머릿속에 메모를 하고 푹 쉬시고 빨리 주무시라고 인사드리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며칠 후 아빠 생신이라 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때 말씀하신 게 무슨 의미인지 여쭤봤다.


저번에 휴대폰도 그렇고… 애한테 너무 못 하게 하지 말고 휴대폰도 좀 쓸 수 있게 해주고 하라고.


 딸이 초콜릿 아이스크림 조금 먹었다고 놀라서 허둥지둥했던 나를 보니 예전에 내가 휴대폰도 최대한 미루고 미뤄서 딸에게 늦게 줄 거라고 했던 말이 아빠는 동시에 생각나셨었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평범하게 누리고 즐기는 것들을 못 하게 하는 것이 손녀에게 가혹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반문했다. 아빠 그러다가 스마트폰에 중독되면 어떡하냐고. 그랬더니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거 쓴다고 다 중독되나. 안 그렇다. 내 말은 너무 막지만 말고 조금씩 쓰게 해주란
말이지.


 아빠의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았다. 아빠가 말씀하신 평범하게 키운다는 것은 남들 다 하는 것들을 똑같이 다 할 수 있게 해 주면서 동시에 건강하게 클 수 있도록 스스로 그 양을 조절하고 절제하게 하는 것이다. 반면, 특별하게 키운다는 것은 자식을 소위 부자로 혹은 똑똑하게, 몸매도 예쁘고 건강하게 키우려고 남들 다 하는 휴대폰, 단 음식 등을 막거나 미루는 것이다.


 거듭 생각하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아빠가 말씀하신 평범하게 키운다는 것이 특별하게 키우는 것보다 어려운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어떤 것을 과하지 않게 소비할 수 있고 절제할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자녀가 자제력을 갖추었다고 생각되기 전까지는 자녀가 좀 더 스스로에게 건강하고 이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주고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아빠가 하고 싶으셨던 말씀은 손녀가 외롭지 않게 남들 다 하는 것들을 평범하게 같이 하면서 조화롭게 사랑받으며 살았으면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에 특출 나게 빼어나고 훌륭한 사람보다 평범하게 즐기면서 사랑 주고받으며 행복한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글 제목 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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