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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Jul 31. 2023

요즘 자주 생각나는 학부모로서의 부모님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최근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으로 추정되는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또 며칠 후 유명 웹툰 작가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들의 담당 특수 교사를 아동학대를 했다며 고소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기사를 본 그날부터 참 애통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스스로 생을 끝내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그리고 유명 웹툰 작가는 교사와의 면담을 건너뛰고 바로 고소를 했다고 한다. 이런 현실이 너무 답답했다.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른 것일까.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듯 좁힐 수 없고 이을 수도 없는 상황에 도달한 것 같았다. 한참을 생각하고 타인들과 이야기를 해보아도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가 풀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부모님이 떠올랐다. 남동생이 중학교 2학년일 때인가. 친구와 싸운 적이 있었다. 당시 동생은 안경을 끼고 있었고, 싸우는 과정에서 그 친구는 동생의 눈을 때렸다. 출혈이 많았던 동생은 병원으로 갔고 그 연락을 받은 아빠는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가셨다. 병원 도착 후, 수술 전에 만난 의사가 실명할 가능성도 있다고 하는 말을 들으시곤 아빠가 동생과 싸운 친구에게 참지 못한 화를 분출하셨다고. 그 친구는 울면서 무릎을 꿇고 제발 부모님이 아시면 안 된다고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당시 사정을 했단다.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났고 실명하지 않고 잘 회복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놀라운 것은 아빠가 그 친구의 부모에게도 연락하지 않았고, 학교에도 그 일로 문제 삼지 않았으며, 수술 후 동생과 그 친구를 데리고 밥을 먹이러 식당에 가신 것이다. 나는 당시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냐고 아빠께 여쭤보았다. 화가 나지 않았냐고. 그 친구 부모에 연락해서 화도 내고 수술비도 받고 잘잘못을 가리고 싶었을 텐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었냐고.


 아빠는 당시 그 친구한테 이런 말을 하셨다고 한다. “남자애들이 크면서 싸울 수 있다. 싸우면서 크는거다. 실명이 아니니까 다행이지. 만약 그랬으면 안 참았을 거다. 어쨌든 다행이다. 다음부터 절대 그러지 마라.”

 그리고는 나에게 이렇게 덧붙이셨다.

“꼭 상대 부모에게 연락해서 그런 식으로 해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렇게 울며 부모에게 연락하지 말라며 사정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다. 이렇게 하면 그 친구는 더 조심한다.”

 현재 그 친구는 동생과 여전히 자주 연락하며 친하게 지내는 사이이다.


 이번엔 엄마께 여쭤보았다. 아들이 맞고 수술까지 해야 되는 상황인데 아빠와는 다르게 그 부모한테 연락해서 생긴 감정을 다 분출하고 싶지 않았냐고. 그랬더니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행히 수술하고 괜찮다고 하니까 그렇게 넘어갈 수 있었지. 다 같이 애 키우는 입장인데. “




 이 일 말고도 부모님이 생각난 일이 하나 더 있다. 남동생 친구 중에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고 할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었고, 경제적 형편도 좋지 않았다. 교복을 살 돈이 없어 사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는 친구였다. 우리 집 가계 상황도 그렇게 넉넉한 편이 아니었는데 아빠가 동생 친구의 교복을 사주셨다. 그 당시 교복은 내가 기억하기로 꽤 비싼 편이었다. 당시에 나는 아빠가 왜 저럴까. 우리 집도 부자는 아닌데. 생각하며 그런 아빠가 존경스럽기도 하면서 약간은 이해되지 않았다. 나라면 그 돈으로 우리가 필요한 일에 쓸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친구가 친엄마가 아닌 젊은 새엄마와 함께 우리 집을 방문한 것을 기억한다. 감사 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현재 그 친구는 사는 게 여전히 힘든 것 같다고. 동생과 연락은 오래전에 끊겼다고 아빠는 말씀하셨다. 아빠는 이렇듯 크게는 아니더라도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 이따금씩 기부와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오셨다고 한다.




 연일 터지는 학부모의 교권침해 사안들에 교사로서 울분과 답답함에 한숨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던 중 부모님이 떠올라 지난 일에 대해 여쭙고 들으며 감정을 추스르고자 했다.


 지금까지의 이 글이 현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학부모에게 돌리는 것으로 곡해될까 봐 약간은 걱정스러워 이 글을 쓴 목적을 좀 더 상세히 덧붙여본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학생, 학부모, 교사는 교육 공동체의 일원이다. 한 아이를 바르고 건강한 한 사람으로 성장케하고 교육시키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함께 한 마음을 갖고 노력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자. 내 아이. 내 가정에서 우리 아이. 우리 학부모님. 우리 선생님. 우리 학교. 우리 사회. 이것이 교육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마음가짐이자 결국 아이가 바르게 성장하도록 돕는 길일 것이다. 한 아이를 학부모, 교사 모두 교육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서로를 조력자로 믿고 돕는 것.

 

 현재 실질적 교권 보호를 위한 정책적 움직임이 있다고 알고 있다. 지금과 같이 교사는 교사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각자의 분리된 섬에서 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교육 현장은 여전할 것이고 변화는 크게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학생, 학부모, 교사는 진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서로를 믿고 이해하고 도와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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