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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Aug 16. 2023

집에서 즐기는 책바(bar)

홈바 | 남편과의 대화, 독서 그리고 글쓰기

 남편과 출산 전까지 집에서 '책바(bar)'를 종종 즐기곤 했다. 출산을 하고나서부터는 육아에 지쳐 딸과 같이 잠들곤 해서 책바는커녕 깊은 대화도 제대로 못 해본 것 같다. 여기서 '책바'란 지금 현재 망원동에 위치하고 있지만 이전에는 연희동에 있었던 술을 마실 수 있는 '바'인데, '책'이라는 단어가 붙었으니 말 그대로 책을 읽으며 그 책에 맞는 술을 곁들이며 독서와 그 바의 분위기에 심취하는, 잠시 현실과 동떨어져 책 속 세계로 더 짙게 빠져들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이다. 그 바의 이름이 'CHAEG BA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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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사진은 임신을 하고 남편과 서울 여행을 하던 중 당시 연희동에 있었던 책바를 방문한 사진이다. 도착했을 때 만원 상태라 웨이팅을 했어야 했다. 생각보다 빨리 자리가 나 독서와 술이 주는 또 다른 세상을 비교적 빨리 만날 수 있었다. 웨이팅을 하던 중에도 책바가 주는 느낌은 굉장히 낯설었다. 책바 주위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마치 SF영화를 보듯 이곳만 다른 차원의 세상 같았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마저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내가 모르는 낯선 직업을 가진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그 은은한 재즈의 선율과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연희동 '책바'.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공간. 그래서 남편과 집에서 우리만의 책바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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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책바를 방문했던 날, 남편과 내가 앉았던 자리. 김영하 작가가 방문 후 싸인을 해둔 액자가 있었다.


 남편과 내가 앉았던 자리이다. 임신 중이었던 나는 메뉴에 얼마 없던 차 메뉴 중 하나를 주문했고, 남편은 칵테일 한 잔을 주문했었다. 남편이 이북리더기로 읽으려고 했던 책이 <기사단장 죽이기> 였는데 메뉴에 그 책을 읽을 때 마시면 좋은 칵테일 ‘발랄라이카'가 마침 있어 주문했던 것이다. 실제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에 '발랄라이카'라는 칵테일이 등장한다.


 그렇게 책과 곁들일 음료를 주문한 후, 그 공간을 빠짐없이 즐겼다. 무심하게 쌓여있는 책들, 걸려있는 그림과 사진 액자들, 벗겨진 벽지, 약간은 어두운 듯한 조명까지 모든 것을 음미하고 그곳에 심취했다. 김영하 작가의 방문을 인증하는 싸인이 걸려있는 액자와 애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담은 액자 등 하나하나가 우리가 좋아하는 취향을 담고 있는 곳이었다.


그 당시 나는 책 <Pachinko>를, 남편은 이북리더기로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고 있었다.


 한참을 남편과 그 공간에 대해, 오브제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집으로 돌아가면 이런 것들은 차용해서 인테리어를 하면 좋겠다는 등의 얘기를 나누다 책바의 이름에 맞게 차와 칵테일을 음미하며 책 속 세계로 빠져보기로 했다. 약 2시간을 남편과 독서에 집중하며 중간중간 그 순간이 "너무 좋다. 행복하다."라는 말들을 하며 책바를 온전히 즐겼던 기억에 이 글을 쓰면서도 괜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그때 남편이 "우리. 집에 가서도 책바 해보자"라고 제안한 기억이 난다. 가끔은 나보다 남편이 더 현재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블루투스 스피커로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플레이하고,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고 분위기를 내자고 하는 사람은 남편이라서. 그래서 그 음악과 술이 주는 분위기에 바로 빠질 줄 아는 사람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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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남편이 제안했던 대로 우리는 서울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 자주 집에서 책바를 실천했다. 임신 중이라 술은 못 마시지만 나는 다른 음료로 대체하고, 유튜브로 재즈 음악을 블루투스 스피커로 연결한 후, 남편은 커피 리큐어로 칵테일 한 잔을 만들거나 와인 한 잔을 마시며 우리 집에서의 책바, 즉 '홈바'를 실현했다. 아. 분위기를 한층 따듯하고 감성 있게 만들어줄 노란빛의 LED 조명은 필수이다. 홈바는 임신 기간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한 태교 중 하나였다. 태교를 딱히 특별하게 한 건 아니지만 집에서 즐기는 책바 덕분인지 책을 참 많이 읽은 것 같다.


 하지만, 출산 후에는 딸이 가장 우선이 되었고, 몇 시간씩 쪽잠을 자며 딸을 먹이고 재우고 씻기며 하루를 보내다 보면 책바는커녕 책도 들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수개월동안, 부모가 처음 되어보니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두려움과 서툼 때문에 육아 하나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딸이 돌을 맞이했고, 1년이라는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크고 어려워 보이던 육아마저 익숙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집에서 즐기는 책바를 다시 개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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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젯밤 10시쯤 남편과 집에서 책바를 열었다. 우리는 항상 책을 펼치기 전 대화로 책바를, 아니 홈바를 연다. 며칠 전 별 것 아닌 걸로 남편과 언성을 높이며 언쟁을 했다. 언쟁의 원인이 별 것 아닌 것이라 화해도 빨리했지만 깔끔하게 종결되지 않은 느낌이라 책바의 시작을 알리는 대화의 주제로 선정되었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와이프에게 바라는 점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한 번 갈등이 있고 난 후에는 개선을 위해 서로가 노력해줬으면 하는 부분에 대해 가감 없이 얘기한다.


 내가 남편을 장난 삼아 놀리려고 했던 말들이 기분 나빴었나 보다. 장난으로라도, 아무리 사소해 보이더라도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반면, 나는 남편이 'a는 b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흑백논리처럼 들리는 말들이 너무나 갑갑하게 다가왔고 어떤 개별성이나 예외도 용납하지 않는 것처럼 들리는 말들이 나에게는 반감이 들게 했고 꼭 내가 그 개별성의 대표 주자인 듯 언제나 반례를 들고 싶게 만들었다. 그렇게 언성이 높아지고 갈등이 발생됐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자신이 신인 듯 모든 것을 다 알고 말하는 정답처럼, 참인 명제처럼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은 고쳐보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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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적인 대화 이후, 홈바가 시작되었다. 나는 글을 잠시 쓰기 위해 노트북을 열었고, 남편은 요즘 열심히 읽고 있는 서머싯 몸의 <면도날>을 펼쳤다. 좀 집중하는 듯하더니 남편이 하는 말, "와이프야. 나 컵라면 먹고 싶어."


"와이프야. 나 컵라면 먹고 싶어."

 

 나는 다음날 속이 불편할 것 같아 먹지 않겠다고 하고, 남편은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남편은 육개장에 물을 붓고 컵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 딸이 잠에서 깨 울기 시작해 나는 다시 재우러 딸 곁으로 갔다. 딸 옆에 누워 자장자장 하던 중 컵라면을 다 먹은 남편이 말했다. "와이프야. 책바가 아니라 책편의점 돼버렸다. 아. 책휴게소인가?" 그 말을 들은 나는 너무 웃겨 자는 딸 옆에서 소리 내어 웃을 뻔했다. 집에서 하는 책바의 단점이다. 책바가 책편의점 또는 책휴게소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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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집에서 책바를 몇 차례 열고 느꼈다. 더 자주 열어야겠다고. 남편과 더 자주 깊은 대화를 하고 싶다고. 같이 좋아하는 책이라는 취미를 더 자주 함께 즐기고 싶다고. 그렇게 무언가를 함께하는 시간을 더 오래 즐기고 싶다고.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님을. 집에서 남편과 책과 술과 음악과 조명만 있으면. 아. 딸이 코코낸내  달콤하게 잠들어 우리를 조금만 도와준다면. 언제든, 매일이라도 할 수 있음을 느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우리는 와인도 달콤한 맛을 즐긴다. 글 제목에 첨부된 이미지 속 와인인 ‘모아이 까베르네 쇼비뇽’은 레드와인이지만 달콤한 맛의 바디감이 있는 칠레산 와인이다. 이와 비슷한 와인으로 독일산 ’ 블루넌 까베르네 쇼비뇽‘이 있고, 이것보다 좀 더 깔끔하고 라이트한 ‘블루넌 돈펠더’가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우리 부부처럼 그렇게 쓴 술을 마시는 이유와 술 자체를 잘 모르는 분이 계시다면, 그런데 와인을 시도하고 싶으시다면 조심스럽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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