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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Aug 29. 2023

당근, 플라밍고를 만지고 싶어.

1. <Lemons are not Red>  

 6개월 전후부터 영어 노래로 이루어진 보라색 튤립 사운드북, 여러 노부영(노래 부르는 영어) 픽쳐북 음원 CD를 자주 들려줬었다. 픽처북은 그중에서도 한쪽에 한 단어 또는 한 문장만으로 구성되어 가장 쉬워 보이는 책을 골라 그 책의 음원만 하루종일, 그리고 며칠을 반복재생 하기도 했다. 또, 동시에 노래의 해당 페이지를 같이 펼쳐가며 음원을 따라 부르기도 하고, CD를 재생하지 않고도 노래를 불러주며 책을 같이 보기도 했다. 딸의 얼굴을 보고 눈을 마주치며 외운 노래를 직접 불러주기도 했었다. 이런 방식으로 가장 많이 들려주고 부른 책의 노래가 <Lemons are not Red>였다. 이 그림책은 과일이나 동물 등의 이름과 색깔 관련 영어 어휘를 담고 있고, ‘A is/are B.’ 또는 ‘A is/are not B.’의 문장구조가 반복되어 나타난다.



 최근 딸에게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어주기로 했다. 먼저 음원 CD를 재생시켰다. '나 이거 아는 노래야!, ' '많이 들어봤는데?' 하는 느낌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씩 웃는다.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아기들은 정말 많은 것을 그대로 흡수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한편, 우리가 자주 잊고 있지만 아기들이 말대신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 왔다. 가령 짜증 섞인 고함소리, 울음, 손짓 등의 몸짓으로. 딸이 노래 리듬에 맞춰 박수를 치고 팔을 흔들기도 하고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몸을 위아래로 흔든다. 자기가 출 수 있는 춤은 다 추는 느낌이다.



 노래를 몇 번 다시 들으며 몸을 들썩들썩하며 리듬을 함께 즐기다 책을 같이 보며 딸에게 읽어주었다. 책을 읽어줄 때 책에 제시된 문장을 그대로 읽지 않는 편이다. 지금은 그저 딸과 책에 나오는 그림을 즐긴다는 표현이 더 낫겠다. 그림 하나하나에 대해 딸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그림에 대해 얘기해 주는 것이다. 반대로 딸이 나는 신경도 쓰지 않아 이런 그림이 있었는지도 인지하지 못했던, 종이 가장자리 쪽에 있는 아주 작은 그림을 손가락으로 만지기도 한다. 그러면 그 그림에 대해 오 ~가 있었네 하면서 알려준다. 그렇게 그림을 즐기며 딸과 얘기하다 보면 제시된 문장은 자연스럽게 발화된다. 모두 영어로 말하고 책을 읽어줄 때도 있고, 우리말을 섞을 때도 있다. 우리말을 섞을 땐 최대한 짧게 단어로 말하려고 한다. 그저 구구절절 길게 말하는 것이 돌아기인 딸에게 효과적인 input(언어 입력)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다.  



"우와~ 빨간색. red."  


"레몬이네. 노란색~ Lemons are yellow." "우와 사과다. apples. 빨간 사과. Apples are red."






 엄밀히 말하면, 딸이 처한 언어환경은 bilingualism(이 언어 사용)은 아니다. 이 언어 사용 환경이 되려면 남편은 한국어, 나는 영어로 계속 딸과 소통하는 구조여야 한다. 한국에서 이 언어 사용 환경을 만들어주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든 상황에서 영어로 말해야 하기 때문에. 딸이 간접적으로 보고 듣고 있는 상황, 즉 내가 타인과 소통 시에도 영어를 사용해야 하니 독한 마음을 먹지 않는 이상 쉽지 않은 일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딸에게 하루의 작은 시간을 할애해 영어를 노출시켜주고 있을 뿐이다.    





 영어가 모국어일 경우, 생후 1년쯤 되면 자주 반복되는 몇 개의 단어들을 듣고 이해할 수 있고, 단어 1개나 2개 정도를 말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빠빠이'라고 하면 아기가 손을 흔들거나, '박수'하면 손뼉을 치는 것을 들 수 있다. 또, '맘마 줄까?' 하면 부엌으로 먼저 가려고 한다거나. 2살이 되면 적어도 50개의 서로 다른 단어들을 말할 수 있게 되고, 이때쯤 단어 몇 개를 조합해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아래 원문 참조)


 By the end of their first year, most babies understand quite a few frequently repeated words. They wave when someone says 'bye-bye'; they clap when someone says 'pat-a-cake'; they eagerly hurry to the kitchen when 'juice and cookies' are mentioned. At twelve months, most babies will have begun to produce a word or two that everyone recognizes. By the age of two, most children reliably produce at least fifty different words and some produce many more. About this time, they begin to combine words into simple sentences such as 'Mommy juice' and 'baby fall down'.

- <How Languages are Learned> by Patsy M. Lightbown & Nina Spada  1. Language Learning in early childhood에서






 그렇다면,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서 잠시 노출된 영어로는 딸이 만 2세가 되더라도 영어 단어 50개를 발화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언어적 재능이 있다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1살인 딸에게 영어 그림책 읽어주기의 목표는 영어 그림책으로 즐겁게 놀아주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영어와 친해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그로 인해 딸이 이해할 수 있는 영어가 점점 많아지며(input) 2세보다 그 시기가 늦더라도 언젠가 딸의 입 밖으로 영어가 하나둘씩 점점 나오게 될 것이다(output). 그렇다면 조바심 낼 필요가 없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영어를 친숙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돌을 갓 지난 지금의 딸에게는 들리는 모든 영어가 input으로 쓰이고 output을 하기에는 현재 힘들다. 언젠가 한 단어라도 output으로 나오기를 기대하며 지금은 딸과 그림책으로 즐기며 노는 것인데, 그래서인지 딸은 영어보다 당근, 플라밍고와 놀고 싶어 한다. 마주치기만 하면 손으로 만진다. 결국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이미 당근과 플라밍고 쪽이 찢어지고 말았다. 더 이상 찢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책을 덮으면 스스로 당근, 플라밍고 부분을 펼쳐서 또 만진다. 나의 눈치를 슬쩍 살피면서. 딸이 부쩍 뭔가를 시도하거나 손으로 만지려고 할 때 먼저 나를 한 번 쓱 쳐다본다. 내가 무서운 건가......






1살 딸이 나에게 알려주는 답: 글자보다 소리가 먼저다. 귀로 먼저 노래를 들려주고, 몸으로 리듬에 맞춰 춤을 한껏 추며 놀고 난 이후에 책을 읽어준다. 그 과정을 통해 딸이 소리와 책에 나온 그림(의미)을 연결 짓는 느낌이 든다. 나중에 글자를 배우면 책에 나오는 글까지 연결 짓게 될 것이다. 결국 소리-그림-글의 순서로 문해력이 점차 형성될 것이라는 당연한 추측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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