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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Sep 15. 2023

자동차는 달리고 딸은 걸었다.

6. <Beep Beep>

 이번에도 빼뜨르 호라체크의 책이다. 그중 <Beep Beep>.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딜 가나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럴 때마다 딸에게 “부릉부릉 자동차 탔네. 부릉부릉 부릉부릉”이라고 딸에게 얘기하곤 했다. 탑승 후 이동 중에는 창가로 볼 수 있는 옆 차선 차들의 색깔, 종류, 그리고 어김없이 “부릉부릉 부릉부릉 자동차 지나간다.”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딸이 요즘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듯 보였다. 사실 빼뜨르 호라체크 책 여러 권을 영어 도서관에서 빌려와 집에 두었는데 선명한 노란색 자동차 그림을 보고 딸이 관심을 갖고 책을 만지더니 나에게 읽어달라고 책을 내밀었던 것.



 책 <Beep Beep>은 한 가족이 자동차를 타고 할머니를 방문하는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자동차와 관련된 의성어들(vroom, chug, beep 등)과 가족들이 할머니댁을 방문하는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또한 자동차의 이동 경로 중 맞닥뜨릴 수 있는 위치나 장소들을 나타내는 부사구들(along the busy road, across the zebra crossing, down the hill 등)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다.



 어김없이 책의 음원 CD를 재생하며 소리부터 들려준다. 딸은 본능적으로 노래의 리듬에 몸을 맞긴다. 매번 보는 춤이지만 딸이 춤을 추는 것을 볼 때면 엄마인 나는 항상 같은 수치의 행복감에 도달한다. 조금의 줄어듬 없이. 딸이 일어서더니 박수를 치며 무릎을 굽혔다 폈다 춤을 추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그런데 딸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떼더니 총 네 발자국을 스스로 떼어 걷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본 남편과 나는 흥분해서 손뼉을 치며 딸의 또 한 번의 성장을 축하했다. 그렇게 자동차가 부릉부릉 달리는 여정을 담은 노래와 함께 딸은 걷게 되었다. 그저 딸의 발달 과정에서 우연히 틀게 된 책의 노래 <Beep Beep> 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딸을 마침내 걷게 만든 노래였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이렇게 딸이 발자국을 떼기 시작한 순간에 호들갑을 떠는 이유가 있다. 딸은 오늘로써 13개월에 접어든다. 발달 속도가 빠른 것으로 느껴졌던 나는 딸이 9-10개월만 되어도 걸을 줄 예상했다. 그 예상이 처참히 무너져 돌을 갓 지났을 땐 스스로 일어서기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3차 영유아 검진 당시에 그래도 15개월 전에는 걸을 수 있어야 대근육 발달에 이상이 없는 거라는 원장님의 말씀을 들었기에 마음 편하게 있을 수만은 없었으니까.






 그런 딸을 걷게 한 노래이니 얼마나 고맙던지. 남편과 흥분해서 노래를 들으며 딸과 같이 한동안 몸을 들썩들썩했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중에 ‘삡삡(Beep Beep)’이 나올 때 딸이 따라 했다. 요즘 우리가 하는 말이나 주위 환경에서 나는 소리를 딸은 부쩍 따라 한다. 춤에 걷기에 소리를 따라 하기까지 오늘 딸은 다 했다.



부릉부릉 차가 많은 도로를 따라서, 와아아 언덕을 내려가서



 한껏 춤을 추고는 딸에게 책을 펼쳐 읽어주었다. “Vroom vroom 부릉부릉 부릉부릉”, “busy road 차가 엄청 많네”하면서. “Wheeeee 와아아”, “down the hill” 손가락으로 차가 내려가는 언덕길을 훑으면서.



 딸을 걷게 한 노래가 맞는 것 같다. 며칠을 틀었는데 날마다 스스로 걷기를 시도하지 않다가 이 노래만 틀면 아빠와 함께 일어서서 춤추다가 몇 발자국을 떼곤 했다.






 <영어책 읽기의 힘> 저자 고광윤은 내 아이의 영어책 읽어주기를 위한 최고의 선생님은 어떤 유명 스토리텔러도 강사도 아닌 부모라고 한다. 구체적인 이유와 내용은 아래 인용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영어책을 읽어주는 것은 누가 해도 좋지만 엄마나 아빠가 직접 읽어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중략) 결론은 한마디로 영어 스토리텔링을 정말 잘하는, 재능도 경험도 많은 전문가 선생님보다 엄마나 아빠가 읽어줄 때 효과가 더 좋다는 것입니다. 설사 엄마 아빠가 영어를 잘하지 못해 발음이 엉터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어도 내 아이에게는 엄마나 아빠가 최고의 선생님입니다.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 아빠의 따스함을 말과 표정뿐 아니라 스킨십을 통해 느끼면서 책 속의 세계를 함께 탐험하고 대화하고 공감하고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것이 영어를 멋지게 읽어주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영어든 한국어든 엄마 아빠와 이런 책 읽기를 꾸준히 한 아이는 감성이 풍부해지고 여유와 차분함을 갖게 되며 집중력과 이해력도 뛰어납니다. 사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의 영어 자체를 위해서도 장기적으로 볼 때 더 바람직합니다.






1살 딸이 나에게 알려주는 답: 딸이 걸음을 내디뎠을 때 엄마 아빠가 우와하는 감탄과 박수로 함께 기뻐하며 불러주었던 영어 그림책의 노래는 어느 강사도 부모보다 더 잘해줄 수 없을 것이다. 내 딸에게는 엄마인 내가 아빠인 남편이 영어그림책을 읽어주는 게 최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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