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Beep Beep>
이번에도 빼뜨르 호라체크의 책이다. 그중 <Beep Beep>.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딜 가나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럴 때마다 딸에게 “부릉부릉 자동차 탔네. 부릉부릉 부릉부릉”이라고 딸에게 얘기하곤 했다. 탑승 후 이동 중에는 창가로 볼 수 있는 옆 차선 차들의 색깔, 종류, 그리고 어김없이 “부릉부릉 부릉부릉 자동차 지나간다.”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딸이 요즘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듯 보였다. 사실 빼뜨르 호라체크 책 여러 권을 영어 도서관에서 빌려와 집에 두었는데 선명한 노란색 자동차 그림을 보고 딸이 관심을 갖고 책을 만지더니 나에게 읽어달라고 책을 내밀었던 것.
책 <Beep Beep>은 한 가족이 자동차를 타고 할머니를 방문하는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자동차와 관련된 의성어들(vroom, chug, beep 등)과 가족들이 할머니댁을 방문하는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또한 자동차의 이동 경로 중 맞닥뜨릴 수 있는 위치나 장소들을 나타내는 부사구들(along the busy road, across the zebra crossing, down the hill 등)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다.
어김없이 책의 음원 CD를 재생하며 소리부터 들려준다. 딸은 본능적으로 노래의 리듬에 몸을 맞긴다. 매번 보는 춤이지만 딸이 춤을 추는 것을 볼 때면 엄마인 나는 항상 같은 수치의 행복감에 도달한다. 조금의 줄어듬 없이. 딸이 일어서더니 박수를 치며 무릎을 굽혔다 폈다 춤을 추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그런데 딸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떼더니 총 네 발자국을 스스로 떼어 걷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본 남편과 나는 흥분해서 손뼉을 치며 딸의 또 한 번의 성장을 축하했다. 그렇게 자동차가 부릉부릉 달리는 여정을 담은 노래와 함께 딸은 걷게 되었다. 그저 딸의 발달 과정에서 우연히 틀게 된 책의 노래 <Beep Beep> 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딸을 마침내 걷게 만든 노래였다.
이렇게 딸이 발자국을 떼기 시작한 순간에 호들갑을 떠는 이유가 있다. 딸은 오늘로써 13개월에 접어든다. 발달 속도가 빠른 것으로 느껴졌던 나는 딸이 9-10개월만 되어도 걸을 줄 예상했다. 그 예상이 처참히 무너져 돌을 갓 지났을 땐 스스로 일어서기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3차 영유아 검진 당시에 그래도 15개월 전에는 걸을 수 있어야 대근육 발달에 이상이 없는 거라는 원장님의 말씀을 들었기에 마음 편하게 있을 수만은 없었으니까.
그런 딸을 걷게 한 노래이니 얼마나 고맙던지. 남편과 흥분해서 노래를 들으며 딸과 같이 한동안 몸을 들썩들썩했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중에 ‘삡삡(Beep Beep)’이 나올 때 딸이 따라 했다. 요즘 우리가 하는 말이나 주위 환경에서 나는 소리를 딸은 부쩍 따라 한다. 춤에 걷기에 소리를 따라 하기까지 오늘 딸은 다 했다.
한껏 춤을 추고는 딸에게 책을 펼쳐 읽어주었다. “Vroom vroom 부릉부릉 부릉부릉”, “busy road 차가 엄청 많네”하면서. “Wheeeee 와아아”, “down the hill” 손가락으로 차가 내려가는 언덕길을 훑으면서.
딸을 걷게 한 노래가 맞는 것 같다. 며칠을 틀었는데 날마다 스스로 걷기를 시도하지 않다가 이 노래만 틀면 아빠와 함께 일어서서 춤추다가 몇 발자국을 떼곤 했다.
<영어책 읽기의 힘> 저자 고광윤은 내 아이의 영어책 읽어주기를 위한 최고의 선생님은 어떤 유명 스토리텔러도 강사도 아닌 부모라고 한다. 구체적인 이유와 내용은 아래 인용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영어책을 읽어주는 것은 누가 해도 좋지만 엄마나 아빠가 직접 읽어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중략) 결론은 한마디로 영어 스토리텔링을 정말 잘하는, 재능도 경험도 많은 전문가 선생님보다 엄마나 아빠가 읽어줄 때 효과가 더 좋다는 것입니다. 설사 엄마 아빠가 영어를 잘하지 못해 발음이 엉터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어도 내 아이에게는 엄마나 아빠가 최고의 선생님입니다.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 아빠의 따스함을 말과 표정뿐 아니라 스킨십을 통해 느끼면서 책 속의 세계를 함께 탐험하고 대화하고 공감하고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것이 영어를 멋지게 읽어주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영어든 한국어든 엄마 아빠와 이런 책 읽기를 꾸준히 한 아이는 감성이 풍부해지고 여유와 차분함을 갖게 되며 집중력과 이해력도 뛰어납니다. 사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의 영어 자체를 위해서도 장기적으로 볼 때 더 바람직합니다.
1살 딸이 나에게 알려주는 답: 딸이 걸음을 내디뎠을 때 엄마 아빠가 우와하는 감탄과 박수로 함께 기뻐하며 불러주었던 영어 그림책의 노래는 어느 강사도 부모보다 더 잘해줄 수 없을 것이다. 내 딸에게는 엄마인 내가 아빠인 남편이 영어그림책을 읽어주는 게 최고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