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냉동실에 보관 좀 부탁드릴게요.”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갓난아기 베개만 한 제법 묵직한 물건을 나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산고가 심했음을 말해주는 듯 유독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K 산모는 조리원 106호에 입실했다. 내가 일하는 산후조리원은 보통 2~3주 동안 산후조리를 위해 산모와 신생아가 함께 기숙하는 곳이다. 산모 방에도 소형 냉장고가 버젓이 있건만 따로 부탁을 하는 걸 보니 특별한 물건인 것 같았다. 강력한 냉동이 필요한 듯도 하여 두말하지 않고 받아 들어 큰 냉동실에 보관했다. 신문지로 싸고 비닐봉지로 다시 한번 싼 물건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일단 점심을 먹게 한 후 K 산모 방에 다시 들렀다. 식사는 잘했는지 크게 불편한 점은 없는지 인사치레를 하고 난 후, 좀 전에 맡긴 물건이 무엇인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그거요. 탯줄이 달린 태반이에요. 좀 있다가 남편이 집으로 가져갈 거예요.”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고 환한 미소까지 지으며 그녀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깜짝 놀라서 좀 전에 태반을 들었던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태반의 무게가 다시 한번 고스란히 느껴졌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야릇함이 손을 통해서 가슴으로 전달되었다.
K 산모는 조산소에서 출산했다. 조산소는 분만과 신생아 간호를 주 업무로 하는 곳으로 관리 의사를 두고 조산사가 개설하는 의료기관이다. 과거에는 조산소에서 출산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요즘은 산부인과 의원이나 대형병원에서 하는 것이 보통이다. 출산 때 나오는 부속물인 태반이나 탯줄은 적출물로 분리돼 법적으로 인정된 업자에 의해 처리된다.
절차야 어떻든 산모는 태반을 직접 가져왔다. 간혹 탯줄 일부를 가져오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 몹시 당혹스러웠다. K 산모가 출산한 조산소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며 그녀는 의아해하는 내 표정을 더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조선 시대 왕실에서는 왕자나 공주의 태반을 태실에 보관했다지만 지금이 조선 시대도 아니고 그것을 어찌할 요량인지 궁금해 물었다. 그녀는 물어봐 주길 기대했다는 듯이 활기찬 얼굴로 대답해 주었다.
“우선 탯줄과 태반에 물감을 묻혀 찍어서 그림을 만들어 놓았어요. 한 2주 후면 액자에 끼워져서 배달될 거예요. 그리고 냉동실에 있는 저 태반과 탯줄은 나무 밑에 심을 거예요. 아무렇게나 처리되는 것보다 낫잖아요. 다행히 친정이 시골이라 울타리 안에 감나무가 있거든요. 아기가 크면 빨갛게 익어가는 감을 보여줄 거예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배 안에서 아기에게 생명을 이어주던 그것을 죽어서 들어가는 어둡고 차가운 땅속으로 곧바로 묻겠다니. K 산모로부터 태반과 탯줄을 나무 아래에 심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의 탄생과 죽음이 가깝다는 생각에 저절로 가느다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죽음도 삶의 한 과정이라 죽어가는 순간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것일까. 끊어질 듯 가느다랗게 이어지는 생명줄을 1분 1초라도 더 붙잡아 두는 것이 행복한 일일까. 그래서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줄이 필요한 것일까. 링거 줄, 산소 줄, 줄…. 줄들.
줄을 잘 잡아야 성공한다고 흔히들 말한다. 학연, 지연, 혈연, 돈줄, 명예 줄…. 우린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줄 서기를 배우고, 살아가는 내내 자신도 모르게 거미줄 같은 줄에 얽히고설킨다. 그리하여 어느새 줄과 더불어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지내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란 동화에서 오누이는 튼튼한 동아줄을 잡고, 호랑이는 썩은 동아줄을 잡는다. 요즘 사람들은 내가 잡은 줄이 튼튼한지 썩어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끈질기게 줄에 매달려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 같다. 최초에 나를 있게 한 줄은 까마득하게 잊은 채 말이다.
내 탯줄과 태반은 어디에 있을까 무척 궁금해졌다. 우리 집안은 신라를 건국한 혁거세 집안이니 혹시 내가 모르는 태실이 있는 건 아닐까? 친정집 울타리 옆 감나무 아래 묻혀있는 건 아닐까? 만약 셋째 딸의 탯줄이라 중요하지 않다며 아무렇게나 버렸다고 한다면 따져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밤 열시다. 궁금해서 죽을 지경이다. 엄마께 물어봐야겠다. 줄 없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띠디디딕… 한 번 두 번…. 신호음이 갔다. 새까만 밤하늘을 뚫고 보이지 않는 아득한 최초의 줄을 따라가는 듯 더딘 신호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잠시 후, 자다가 깨어나 아직 채 돋우지 못한 물기 없는 목소리가 귓가에 전달되었다. “내일모레가 네 생일이여. 미역국 끓여줄 테니 집에 와서 밥 먹고 가. 더워 입맛 없다고 대충 먹지 말고 밥 꼭 챙겨 먹고 댕겨. 고단할 텐데 어서 자거라.”
엄마는 돌아눕는지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전화기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순간 가슴 한가운데서 빚어진 뜨거운 무엇이 목구멍을 타고 얼굴로 치솟아 올랐다. 그 밤, 나는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고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끌어안은 무릎 위로 뜨거워진 얼굴을 깊숙이 묻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