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면서 얼마나 몸을 떨었는지 모릅니다. 완독 후 돌 틈을 비집고 꽃을 피운 민들레부터 창턱을 넘어온 바람 한 줌까지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전 국민 필독도서 『아리랑』그 일부를 옮겨 적어 봅니다.
한 마을에서 고무신을 신은 사람은 한둘에 지나지 않았다. 그 새로 나온 희한한 물건은 값이 너무 비싸 부자가 이니고서는 가질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그 귀한 물건은 그야말로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무든 사람들의 관심거리였고 구경거리였다. 그 누구나 고무신을 손에 쥐었다 하면 이리저리 매만져보고, 엎어서 밑바닥을 보고, 고개를 돌려가며 코 안을 들여다보고, 주인의 눈길을 피해 잡아늘여 보고 하는 것이었다. 그 말랑말랑하고 보들보들하고 매끈하게 생긴 고무신을 신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특히나 처녀들로서는 고무신바람에 들릴 만도 했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손가락마다 봉선화물을 들이는 처녀들에게 고무신은 너무 욕심나는 물건일 수밖에 없었다. 고무신은 우선 그 매끈하고 맵시 고운 생김만으로 짚신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건 비단과 무명의 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겉맵시만이 처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아니었다. 고무신의 말랑말랑하고 보들보들한 부드러움은 억세고 뻣뻣한 짚신에 비해 발 매듭매듭을 흉잡히게 하거나 군살이 박이지 하지 않을 것이 자명했던 것이다. 거기다가 발도 편하고,물도 스며들지 않으니 탐을 내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일본세상이 된 다음에 그런 바람은 여러 차례 불어왔었다.석유와 함께 불어닥친 호롱바람, 무명을 똥값으로 만든 광목바람, 엿을 천한 먹거리로 몰아붙인 눈깔사탕바람, 가마를 조롱거리로 삼은 인력거바람, 윷놀이를 싱겁고 맥빠지게 만든 화투바람, 걷는것을 한없이 따분하게 만든 자전거바람 같은 것들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 바람들은 그래도 고무신바람처럼 거세지는 않았다. 고무신바람은 여자들이 가세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세차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 갑순이 혼인날 받았담서?" "그런갑데." "고무신 받게 된디야?" "피이, 지 팔자에 그런 호강 어찌혀." 어느덧 처녀들 사이에서는 그런 말이 오가게 되었다. 고무신은 어느새 채단의 곁다리 물목으로 올라 있었고, 고무신을 받는 것이 사집 잘가는 호강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처녀들은 친정에서 얻어신지 못한 고무신을 시집가면서나 얻어신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