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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실 Jun 04. 2024

내가 따라갈게

저승사자와 가는 길

언제부턴가 나는 죽음도 삶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과거에 읽었던 책 어느 대목에서 적잖이 감동했었나 보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식탁에 앉아 남편과 캔 맥주를 마셨다. 그날 나는 무슨 중대 발표라도 하듯,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을 뱉었다.

“제발 나 따라오지 말라구.”

술기운 때문인지 기분이 언짢아서인지 남편은 살짝 불그레해진 얼굴로 왜냐고 이유를 물었다.

“죽는 날도 같이 가자고? 그건 싫어. 내가 죽어 저승 가는 날은 초가집 지붕 위 하얀 박처럼 둥근 보름달이 두둥실 떠있는 초가을 밤이라면 좋겠어. 이제 막 깎은 파리한 잔디 향이 난다면 감동일 거야. 어디선가 풀벌레가 찌르르 울어준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 육체가 빠져나갔으니 몸이 얼마나 가벼울까. 근데 죽을 때 얼굴 크고 무섭게 생긴 저승사자가 데리러 온다며? 난 저승사자랑 수다 떨면서 갈 거야. 저승 갈 때는 거칠고 황량한 길을 꽤 오래 걸어가야 할지 모르는데 맹숭맹숭 가는 건 싫어. 당신은 워낙 말수가 적은 데다가 재밌는 이야기도 재미없게 하는 특이한 재주가 있잖아. 저승사자랑 같이 가는 동안 얘깃거리가 떨어지면 그 오빠야 귀에 이어폰 한쪽 끼워주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같이 들으면서 갈 거야. 그러니까 나 따라오지 마. 당신이 옆에 있으면 재미없잖아.”

중대 발표를 들은 소도둑 같은 남편은 약을 올리듯 나를 향해 해죽거리며 이렇게 받아넘겼다.

“내가 그 꼴 보기 싫어서 따라가는 거야.”
 

몇 해 전 남편은 친구 아내가 유방암에 걸렸다며 안타까워했다. 어느 날인가는 그 부인의 암이 폐로 전이됐다며 친구가 당장 혼자되기라도 한 듯 매우 안쓰러워했다. 그러면서 아내 없이 살아갈 친구 인생이 꽤 쓸쓸할 거라고 했다. 그날 이후 남편은 치마꼬리 붙잡고 늘어지는 어린아이처럼 부부 동반 죽음에 대한 생각을 굳혀갔다. 맘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삶을 일구며 살았으니 죽을 때도 같이 죽고 싶다는 말이었다. 남편보다 네 살이나 어린 나는 그런 남편이 퍽 못마땅했다.
 

남편은 참 자상한 사람이다. 몸이 약한 나를 위해 건강식품 챙기는 건 물론이고 운동하기 싫다고 하면 달래고 달래서 헬스장도 같이 간다. 소소한 집안일도 엽렵히 챙겨주는 사람이다. 밤이면 자그마한 내 발을 꼭꼭 주물러 주기도 한다. 외출해서 늦으면 지하철역 앞까지 마중을 나오기도 하고 밥은 잘 먹었냐며 점심시간에 전화도 자주 걸어준다. 처가 일이라면 열 일 제쳐놓고 참석하는 대한민국 장모님이 좋아하는 사위이다. 그런 남편의 지나친 마음 씀씀이가 나는 달갑지 않다. 그런 나에게 친정 엄마는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누울 년이라고 핀잔이다. 그렇지만 나는 언제나 남편한테 이런 말을 한다. 관심이 지나치면 간섭이라고.
 

며칠 전, 퇴근한 남편은 신발을 벗자마자 인터넷 뉴스를 봤느냐며 무언가에 크게 감동한 듯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그러고는 이내 휴대전화를 열어 기사를 보여주었다. 〈지리산 소방 헬기 추락. 보호자 숨져〉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60대 초반 부부가 등산을 했고 남편의 심정지로 아내가 구급대에 신고했다. 심정지가 일어난 남편을 싣고 헬기는 상공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올라가던 헬기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바람에 아래서 지켜보던 아내가 헬기 날개에 골절상을 당했다.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끝내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남편은 살고 부인만 죽은 거야?”라며 나는 반전드라마 줄거리 묻듯 아무렇지도 않게 물으며 남편의 답을 기다렸다.

“그게 아니고 남편은 심정지 상태라 당연히 죽었지. 구급대원들이 무사했다는 걸 보니 헬기가 아주 높이 뜬 건 아니었나 본데. 남편이 저승길 혼자 가기 싫어서 헬기를 추락시켰나 봐. 참 좋겠다.”라며 기사 속 남자가 진심 부러운 듯 말하는 남편의 목소리에 물기가 촉촉 서린 듯했다. 기사 아래로 이런저런 댓글들이 달렸다.

‘한꺼번에 부모를 잃은 자식들이 얼마나 황망할까요.’라며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두 분 다 아직 젊으신데 천생연분인가 보네요.’, ‘남편이 저승길 혼자 가기 싫어하나 보네요.’라는 댓글도 있었다. 우리 남편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밥상을 차렸다. 그러던 중, 작년에 혼자된 언니의 말이 머릿속에 빗금을 그으며 지나갔다.

“형부 없으니까 화장도 하기 싫고 외출도 시답잖고 TV도 재미없어. 딸자식도 나를 대하는 게 예전 같지 않은 것 같고. 딸한테 짐이 되는 건 아닌가 싶고 그러네. 1년이 지났는데도 형부가 자꾸 따라붙어. 지지고 볶아도 신랑 그늘이 최고인 것 같다.” 

평소 부부 금실이 아주 좋은 것도 아니었던 언니네였다. 그런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언니가 우울증이 생겼나 하며 그땐 별스럽지 않게 넘겼었다. 다른 때 같으면 남편의 말도 투정처럼 흘려보냈을 터였다. 그런데 그날따라 저녁 설거지를 다 마치도록 촉촉한 물기의 남편 목소리와 언니의 말이 겹쳐져 떠나질 않았다.
 


5월의 늦은 밤, 여느 때처럼 나는 견과류를 안주로 식탁 위에 술상을 차렸다. 우리는 쓸쓸한 듯 소리 없이 맥주를 마셨다. 평소와 다르게 묵직한 기운이 식탁 위에 한참을 머물렀다. 남편은 겁이 참 많은 사람이다. 소도둑만 한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무서운 영화도 혼자서는 절대로 못 보는 사람이다. 묵직한 분위기를 내치려고 나는 힘주어 말을 뱉었다. 

“그래 알았어. 저승사자가 무서워서 그러는 거지? 크게 마음 썼다. 나 따라오지 마. 내가 당신 따라갈게.” 

이제야 나도 아주 조금 철이 드는 걸까. 어디선가 때아닌 가을 풀벌레가 날아온 듯, 저승 가는 길에 들으려 했던 찌르르르 소리가 잠깐 동안 가슴속에 머물다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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