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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실 Jan 04. 2024

얼의 꼴

성형수술 후유증과 부작용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놈의 코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 관상 중 뭐니 뭐니 해도 코가 제일이야. 한가운데서 떡 버텨줘야 예뻐 보이고 일도 잘되는 건데.” 당장 성형외과로 달려갈 기세로 낮은 코에 대한 이런저런 불만을 늘어지게 퍼부으며 그녀는 아이스커피 속 얼음을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었다.

“사람이 어디 한 군데라도 빈구석이 있어야지 완벽하면 신이 질투해서 더 안 풀린다니까. 누가 알아? 옴폭하게 들어간 콧잔등 위로 말년에 돈다발이 폭 들어가 앉을는지.” 위로 반 걱정 반으로 그녀에게 우스갯소리 한마디를 던졌다. 밥공기만 한 얼굴에 쌍꺼풀진 커다란 눈, 짙은 눈썹, 앵두같이 빨간 입술을 가진 그녀는 누가 봐도 예뻤다. 어여쁜 외모 덕분인지 소위 잘 나가는 사업가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 나이 마흔을 넘기면서 남편의 사업은 바닥을 드러냈다.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던 그녀의 고운 손도 아이 셋의 뒷바라지를 하고 생계를 꾸리는 도구로 거칠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더위가 물러가자마자 평생 지켜온 신체에 대한 보수공사가 오래된 아파트 구조 변경하듯 지인들 사이 여기저기서 시작되었다. 지인들은 같이 가서 할인받자고 부추겼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기만 했다. 살아오는 동안 나에게 예쁘다고 말해준 남자는 딱 둘밖에 없었다. 기분 좋게 퇴근하신 친정 아빠가 그랬고, 술에 취해 들어온 남편이 흐린 눈 꼬인 혀로 그랬었다. 미모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되는 대로 살아온 터였다. 성형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다. 거기에다가 제아무리 찢고 넣고 갈고 붙이고 치켜세운들 가을꽃이 봄꽃 될 성싶냐는 나만의 생각이 돌 틈 사이로 삐져나온 풀꽃처럼 언젠가부터 자리 잡았다는 것이 이유다.
  

흔히 여자를 꽃에 비유한다.

바람이 따스한 입김을 불어넣어 피는 듯한 봄꽃은 이제 막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새댁 같다. 산자락을 휘감아 두른 연분홍 진달래가 그러하며 마을 어귀에 나무 한 그루만 서 있어도 동네 전체가 환하다는 봄밤의 벚꽃이 그러하다.

바람이 서늘한 입김을 불어넣어 피는 듯한 가을꽃은 아이 서넛을 길러낸 든든한 아낙의 모습이다. 서슬 시퍼런 수탉의 볏을 닮은 진홍빛 맨드라미가 그러하고 천둥과 먹구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뜬히 꽃을 피우는 노란 국화가 그러하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가을꽃도 아니고 봄꽃은 더욱 아닌 담장 안의 콧대 높은 장미꽃으로 변신해서 내 앞에 나타났다. 높아진 콧대 때문에 그녀는 더욱 예뻐져 있었다. 코 성형에 만족해서인지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로 꼬고 앉아 환하게 웃는 얼굴에는 전에 없던 자신감도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콧대만 높였다는 그녀의 얼굴은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코와 입 사이 인중이 짧아진 것 같았으며 입언저리마저 경직된 듯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조랑조랑 이어지던 우리들의 수다는 평소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그녀는 예전처럼 아이스커피를 오도독 씹어 마시지도 않았다. 마치 쇼윈도의 마네킹처럼 정형화된 미소만 우아하게 입가에 띄워 올릴 뿐이었다. 다른 날과 비교해 우리들의 대화는 간단했으며 마주 앉은 탁자 사이로 부연 냉기가 줄을 그어놓는 듯했다.
  



얼굴은 얼의 꼴이라더라.

타고난 관상과 달리 내면의 꼴에 따라 인상이 달라진다는 어느 분의 말이 괜한 얘기가 아닌 듯싶다. 바뀐 관상 때문에 인생이 정말로 바뀌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달라진 얼굴과 그로 인해 달라진 꼴의 변화로 이제껏 힘겨웠던 그녀의 인생길이 편안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관상이 달라져 인생이 달라진다면 나도 성형을 생각해 보겠노라는 농담 하나를 커피숍 탁자 위로 던지고 타박타박 발걸음을 되돌렸다.

아직 춥다고도 할 수 없는 이 계절, 가을과 겨울 사이에 부는 바람이 서늘했다.

바람을 느끼며 평소 아껴두는 시 한 수를 읊조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 전문
  

시는 여기서 끝이 나지만 나는 또박또박 또 한 줄을 엮어 내렸다.
   “나도 그렇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내 나이에 맞는 향기와 내 꼴에 맞는 빛깔을 가진 풀꽃으로 타인에게 비추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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