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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실 Jan 05. 2024

죠다쉬와 샤넬

백화점  샤넬 가방과 청바지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나는 휴대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인터넷 뉴스를 자주 본다. 그날 보게 된 뉴스는 백화점 샤넬 매장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것이었다. 아직 오픈 전이라 번호표를 받아 들고도 두세 시간은 기다려야 한단다. 지난번 뉴스에는 번호표를 주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이 새벽부터 나와서 긴 줄로 늘어선 사진이 실려 있었다. 코로나 때문인지 덕분인지 해외여행에 제약을 받자 보상 심리로 명품을 사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지하철에서 보는 젊은이들은 거의 다 명품 가방을 둘러메긴 했다. 새벽잠을 양보하면서까지 누려야 하는 유행에 대한 그들의 열정은 어디에서 왔을까. 나 때는 어떠했는지를 생각하며 기억의 시계를  되돌려 보았다.     


이마에 여드름 두어 개가 돋아나기 시작했던 나의 사춘기는 격변의 시대와 함께 펼쳐졌다. 컬러 TV 시대가 열렸고 두발 자유화, 교복 자유화가 시행된 때였다. 귀밑 1cm 단발머리로 여중생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1년 후 교문 앞 복장 검사의 긴장감은 두발 자유화와 함께 서서히 무너져 갔다. 여고생이 되었을 때는 교복마저 자유화가 되어 같은 학교 출신인 언니의 교복을 물려 입지 않아도  되었다. 컬러 TV는 교복 대신 멋스러운 청소년용 옷 광고를 자주 내보내곤 했다. 나는 커트 머리를 하고 재킷과 주름 스커트를 사 입은 다소곳한 숙녀로 여고에 입학했다. 그렇지만 그 시절 최고로 인기를 누렸던 옷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죠다쉬Jordache 청바지였다. 당시 청바지 브랜드로는 리바이스도 유명했지만, 역시 미국 브랜드인 죠다쉬는 반도상사의 기술 제휴를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 청바지 중 ‘갑’으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오리지널에는 엉덩이 부분 주머니에 몸통 없는 말 한 마리가 흰색 실로 스티치되어 있었다. 발랄해 보이기도 했지만, 글래머 여학생이 입으면 섹시해 보이기도 했다. 조회 시간에 교장 선생님은 복장에 대해 자주 말씀하곤 하셨는데 평범한 바지나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스커트를 입으라고 부탁을 하셨다. 그렇지만 예쁨을 한껏 뽐내고 싶었던 우리들은 생각이 달랐다. 너 나 할 것 없이 빨간 티에 죠다쉬 청바지를 입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가격이 비싸 아무나 입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죠다쉬 사달라고 엄마 조르는 사람은 진짜로 쪼다다.”라며 영어 선생님이 우스갯소리로 아이들의 흥분을 누그러트린 날도 있었다. 어느 주말, 큰맘 먹고 이천에서 서울 가는 버스를 탔다. 서울 남대문 시장을 자주 드나들었던 친구의 말대로라면 거기는 뭐든지 싸다고 했다.

“골라, 골라. 미쓰 리도 골라, 미쓰 킴도 골라!” 도깨비에 홀린 것 같았다. 리어카에 올라서서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는 옷 장수들 때문에 커다란 내 눈은 이리저리 바삐 돌아갔다. 평생 이렇게 많은 사람을 본 적도 없었고 이렇게 많은 죠다쉬도 처음이었다. 여기저기 리어카마다 청바지를 걸어도 놓고 흔들기도 하면서 팔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죠다쉬 청바지 한 장에 5,000원’을 발견했다. 인파를 헤치고 누런 박스에 쓰인 글씨만 보고 달려들어 당당하게 5,000원을 냈다. 그러고는 바삐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 화장실에서 바지를 갈아입었다. 길이가 길어서 반 뼘 정도 바짓단을 접어 올리긴 했지만 서울 올라올 때 입고 온 하얀 티셔츠와 깔끔하게 어울렸다. 시내 가게 앞에 붙여놓은 포스터 속 여자 모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퍽 멋져 보이기까지 했다. 하얀 티셔츠에 하얀 말이라. 뒤태를 상상한 나는 다음 날 청바지를 입고 등교했다. 평소와 다르게 엉덩이를 쑥 내밀고 걸었을지도 모른다.

“뭐야? 니 거는 말이 세 마리네?” 누군가의 뾰족한 지적질에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남대문표 죠다쉬는 ‘쪼다시Jjodachi’였다.   
   


요즘 재테크의 일종을 가리키는 샤테크라는 말이 생겼다. 샤테크란 샤넬과 재테크가 혼합된 말로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샤넬 백은 일단 사놓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올라가니 재테크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는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 하니  백화점 앞에 줄을 섰던 이들이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한다.  훗날 그들의 나때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천정부지로 값이 올라간 샤넬 백을 안고 쓰담쓰담 하고 있을까? 아니면 그보다 고가의 명품이 나온 탓에 내가 죠다쉬를 떠올리듯 추억 속 한 토막으로만 기억하게 될까.  

죠다쉬가 재테크 수단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이제는 알지만 그렇게 되었다 해도 가져보지 못한 나와는 무관한 일이었을 것이다.  진한 에스프레소에 나 때의 낭만을 섞어 마시는 커피가 라테가 되어 덤덤한 입 안을 달달함으로 가득 채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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