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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실 Feb 23. 2024

달밤에 선글라스를

정월 대보름 달

좋아하는 빛이 별빛에서 달빛으로 바뀐 건 열두 살 적이었다. 그보다 어렸던 여름날,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마당 한가운데 있는 평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모니카 불듯 후후 식혀가며 찐 옥수수를 먹노라면 하늘에서는 아기 눈망울 같은 별이 하나둘 돋아나기 시작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작은 별 아기별 저녁별…, 별이란 말이 들어가는 노래란 노래는 모조리 불렀다. 평상에 누워 한밤중이 되도록 별을 세다 보면 둥근달이 떠올라 별빛이 흐릿해지곤 했다. 빛을 잃고 깜빡깜빡 스러져 가는 여린 별이 안쓰러웠다. 그렇게 아끼던 별을 열두 살 적에 과감히 놓아버렸다.  

아직 철 모르는 계집아이였고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날이 날인지라 언니들과 시시덕거리느라 늦게 잠자리에 들었을 터였다. 어떤 기운에 끌려 잠에서 깨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얼떨결에 마루를 지나 마당까지 내려왔다. 잠든 사이에 눈이 하얗게 내린 줄 알았다. 밟으면 발목까지 옴팍 빠져 뽀드득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발을 들어 내려놓는 순간 허방을 딛는 느낌이 들었고 곧이어 딱딱하고도 차가운 기운이 발바닥에 닿았다. 그제야 시린 발을 옴츠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 마당 가득 소복이 내려앉은 건 눈이 아니라 하얀 달빛이었다. 우리 개 누렁이도 교교한 달빛에 그만 얼어버렸을까. 더없이 고요하고 거룩한 밤에 나는 달빛과 맞닥뜨리고야 말았다. 고양이 눈 같은 동그란 보름달이 저 높은 하늘에서 마당 가득 새하얀 빛을 내리 쏟아붓는 중이었다. 희다 못해 푸르기까지 한 달빛에 숨이 멎는 듯했다.  파리한 달빛과 여자아이의 뽀얀 입김과 아주 잘 어울렸던 어떤 크리스마스였다.  
  

그날 이후로 내가 쭉 보아온 달은 이랬다. 초승달은  희미하고 작아서 하늘에서 떨어질까 안쓰러웠다. 반달은 어딘가 어수룩하고 늘 모자라고 부족한 내 인생 같아서 친근했다. 보름달숟가락으로 폭 떠서 입 안에 넣으면 사르르 녹아버리던, 소복이 쌓인 눈꽃빙수를 닮았다. 그믐달은 가늘고 길게 돌아간 모양새라 잃어버린 모나리자 눈썹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런가 하면 달님은 신윤복의 「월하정인」 속 음탕한 눈빛의 사내를 비웃었다. 또 황진이가 되어 세상 남자들의 콧대를 풀썩 주저앉히기도 했다. 메밀꽃밭 동이 아비 허 생원의 사랑에 종지부를 찍기도 했지만, 우주선을 타고 날아온 암스트롱에게 정복당함으로써 신비주의를 털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 달은 모든 이의 것이었지 나만의 것은 아니었다.   

달을 좋아했던 사람이 여럿 있었다. 무소유 법정 스님도 달을 무척 좋아했던 분이다. 오두막에 살 적에 향기 나는 달빛이 방 안까지 들어오는 날이면 정갈하게 옷을 갈아입고 뜰을 서성였다. 그런 날 경전을 펼친다면 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해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듣기도 했단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옛날 어떤 선비가 달빛이 방 안 가득 들어오니 하도 좋아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런데 가까운 곳에  달빛을 함께 볼 벗이 마땅히 없었다. 이렇게 좋은 달빛은  아무 하고나 나누는 것이 아니라 생각됐다. 가만히 다시 헤아려 보니 10리 밖 절에 마땅한 지기가 있었다. 그를 찾아갔더니 그 또한 달을 보느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지기의 달마중에 방해가 될까 싶어 아무 말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는 이야기다.  

 달을 좋아했던 또 한 분은 연암 박지원이다. 연암의 『열하일기』에는 유난스레 달 이야기가 많다. 병진일丙辰日 일기 마지막에는 기풍액과 대낮같이 밝은 달구경을 하는 대목이 나온다.      

“저 달 속에 만일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면, 달에서 땅을 바라보는 이가 있어 난간 밑에 기대서서 달에 가득 찬 땅의 빛을 구경할 테지요?” (중략) “그것 참, 기이한 말이로군요! 어허.” -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하(下), 북드라망

  과연 조선의 대문장가인 연암다운 달구경 방법이 아닐 수 없다.

법정 스님이나 연암의 품격 있는 달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쓸 만한 달은 있었다. 여중생이 되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때면 창문 커튼을 비집고 방까지 들어왔다가 홀연히 멀어져 갔던 달이 있었다. 시집간 첫해, 낯선 부엌일에 데고 베어 눈물 날 때 따사로이 어깨를 감싸주던 포근한 달빛도 있었다. 마흔 넘어 도서관에 갔던 날, 립스틱을 고쳐 바르는 척하면서 거울 속으로 옆자리 콧대 높은 남자를 힐끔 훔쳐봤던 일이 있었다. 낮의 일을 나에게 보고받고도 여태껏 소문내지 않은 달도 있었다. 2015년에는 특이한 달을 만났는데, 이름도 생소한 럭키 문이었다. 럭키 문이란 크리스마스에 뜨는 보름달을 일컫는다. 그날 나는 달빛을 놓칠세라 마음에 풍선을 달고 풀 방구리 드나드는 쥐처럼 문밖을 몇 번이나 들락거렸는지 모른다. 럭키 문은 19년 주기로 볼 수 있는데 윤년이 겹치면 38년 주기를 갖기도 한다. 열두 살 적 마당에서 만났던 달이 럭키 문이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아주 오래전 그 달을 다시 만난 셈이었다.

 

이 나이 먹도록 여태 감춰두었던 ‘내가 당신을 극진히 사랑합니다.’라는 수줍은 고백을 새삼 달님에게 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해는 얼굴을 비추고 달은 마음을 비춘단다. 가로등이 등 뒤를 비추면 애써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속 고백이 월식 그림자처럼 달에 그려질지 모른다. 그래서 유난히 맑은 달이 떠오르는 날이면 나는 문밖을 서성이게 된다. 그러다 내 모든 비밀을 아는 달 아래 서있기가 차마 부끄러워질 때면 깜장 선글라스를 콧잔등 위에 꾹 눌러쓴다. 그런 나를 처연한 달빛은 한량없이 내려 비출 뿐 이렇다 저렇단 한마디 말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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