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실 Apr 02. 2024

명품보따리

명품가방과 보따리

                                          

이탈리아 여행 때였다. 날이면 날마다 찾아오는 장날이 아니라며 큰마음을 먹었다는 듯 남편이 명품 가방을 골라 보란다. 명품을 알아보는 눈이 아니라서였을까.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눈높이를 조금 올렸더니 여닫이 유리장 안에 홀로 모셔져 있는 가방이 보였다. 내가 그 물건에 관심을 두자 장갑을 낀 매장 직원이 옆에 찰싹 붙더니 영어로 빠르게 설명을 시작했다.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으로 역시 눈이 높으신 당신이 메면 매우 아름답겠다. 아직 한국에는 상륙하지 않은 물건이다. 대충 이런 뜻으로 이해했다. 내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던 표현은 고작 두 개, ‘beautiful’과 ‘only one’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 가방을 들면 아름다워지는 건 당신이 아니고 가방이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쨌건 다른 물건 앞에 있는 가격 표시가 그 물건 앞에는 없었다. 얼마냐는 물음에 매장 직원이 계산기를 두드려 보여준 가격은 너무도 많은 숫자의 조합이었다. 옆에 멀뚱하게 서있던 우리 집 남자의 눈은 숫자를 아직 다 세지 못한 듯, 그리고 저 여자가 저걸 사겠다고 하면 어쩌나 싶어서였는지 작은 파장을 일으키며 달달 떨리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어설픈 “Thank you.”를 남긴 채 매장 문을 확실하게 열고 나왔다. 마침 매장 밖 거리 어디쯤에서 클래식한 음악 소리가 들려 찾아갔다. 커피집 앞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린 모양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에스프레소를 맛있게 마셨다. 조금 전 매장에서 보았던 숫자들이 쓰디쓴 커피 한 모금으로 말끔히 씻겨나가는 듯했다. 
  

옛날로 치자면 가방은 필요한 무언가를 넣어 들고 다니는 보따리다. 남자들에게는 별것 아닌 물건이 여자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긴 있나 보다. 백팩에서부터 앙증맞은 손가방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신체의 일부라도 되는지 어디를 가든 몸에 붙이고 다니며 함부로 아무한테나 맡기지도 않는다.     

고 박완서 선생의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이란 단편소설은 어렵고 힘든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고된 객지살이를 마감하고 달뜬 마음으로 고향에 돌아가지만 고향이라고 해도 반겨줄 피붙이 하나 없는 중년 남녀의 이야기다. 여자는 인생이 통째로 담긴 보따리를 꼭 쥐고 있다. 생판 모르는 사이인 그들은 차가 끊어진 차부 근처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이러쿵저러쿵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 도저히 아무한테나 맡길 수 없었던 여자의 보따리가 남자의 양손에 들려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여관 마당에서 붉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당당히 맞이했다는 이야기다.


소설 속 남녀가 맞이한 아침 해만큼이나 붉었던 가방이 내게도 있었다. 어디서 들었는지 빨간 내복 대신이라며 수능 시험 후 아르바이트해서 탄 첫 월급으로 딸아이가 안겨주었다. 딸아이 고생 값이기도 하고 디자인이나 사이즈가 내 체격에 맞아 늘 어깨에 매달고 다녔다. 짜증이 나는 날이면 소파 위로 휙 던지며 화풀이를 했던 적도 있다. 어느 날 정리를 하려고 가방을 뒤집어 털었다. 아줌마들 가방을 뒤지면 1년 살 물건이 다 나온다더니 별의별 제제한 쪼가리들이 방바닥에 수북했다. 혹시나 해서 넣고 또 넣고 했는지 볼펜이 몇 자루나 나왔다. 버릴 곳을 못 찾았던지 사탕 껍데기도 있었다. 그중에는 몰래 먹으라며 화이트데이에 누군가가 보내준 초콜릿도 숨어있었다. 귀퉁이가 뭉개진 초콜릿 박스에는 다 지난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섭섭하고 달콤 쌉쌀한 흔적이 묻어있었다. 짜증을 받아주기도 했고 비밀 일기장 노릇까지 했으니 이 가방이 내게는 어떤 물건보다 소중하다. 장식이 떨어져 나가고 모서리에 구멍이 나고 어깨끈이 닳도록 메던 가방은 또 다른 가방에 밀려 사라졌지만, 첫 정의 애틋함은 아직도 기억 속에 삼삼하다.     

명품 가방이 우리나라 아줌마들의 품격을 대신해 주기라도 하는 것일까. 너 나 할 것 없이 명품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지인들은 이탈리아에서 가방을 산 뒤 우리나라에 와서 되팔면 차액이 쏠쏠했을 거라며 훈수를 두었다. 백화점 오픈런 open run 보도를 볼 때마다 가끔 이탈리아 숍을 떠올리지만, 그날 가방을 사지 않은 것에 큰 후회는 없다. 이탈리아 매장에서 본 물건은 연두색과 초록색의 중간 톤으로 브랜드 로고와 체인이 금색으로 장식된 클래식한 물건이었다. 정장 차림과 잘 어울릴 것 같았지만 웬만한 시집 한 권도 넣을 수 없을 정도로 사이즈가 작았다. 그 가방을 샀더라면 털털하기 그지없는 나는 어떤 옷차림을 하고 가방 속에 무엇을 넣고 다녔을까. 그 물건이 나의 품격을 얼마나 올려주었을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그보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마신 커피 향이 아직 기억 속에 머물러 있다.     

과연 명품의 조건은 무엇일까? 명품가 로고가 찍힌 물건만이 명작에 등극하게 되는 것일까. 하느님 핸드메이드 작품인 인간이라는 물건도 외관만으로 명품이 되는 건 아닐진대 외피와 브랜드만으로 명품이 되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문학에서 명작이란 사회, 정치, 경제, 철학, 연애, 육아 등 삶의 모든 부분을 망라한 것이라고 한다. 명품 가방의 조건에도 만든 이의 철학에 사용자의 진심 어린 애정과 의미가 포함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백화점 명품 가방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소설 속 여인의 허름한 인생 보따리와 일기장 같았던 내 빨간 가방을 떠올린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3987814


매거진의 이전글 민들레 연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