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아앙.”
저만치 마을 앞 기찻길에서 용의 트림 같은 연기를 뿜어내며 기적 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란 기차가 옆 동네를 지나고 개울 다리를 건너 우리 마을 앞을 지날 때는 해가 뒷동산 나뭇가지에 걸려 어둠으로 들어갈 준비를 할 무렵이었다. 너덧 살의 계집아이였던 나는 팔짝팔짝 뛰면서 기차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손을 마구 흔들어 댔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나는 으레 작은아버지 집으로 마실을 갔는데, 기차가 기적 소리를 내며 마을 앞을 달리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우리 집에서는 보이지 않는 기차의 모습이 지대가 높은 작은아버지 집 마당에서는 훤히 잘 보였다. 나는 기차를 ‘빵차’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우리 동네 앞을 지날 때는 어김없이 ‘빠아앙’ 하고 긴 기적을 울려주었기 때문이다. 빵차의 최종 목적지는 막연히 꿈의 도시 서울일 것이라 생각했고 기차를 타기만 하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콧대 높은 서울 아이로 변신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기차 안엔 포근포근하고 다디단 맛있는 빵이 가득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나에게 기차는 빵을 실어 나르는 빵차였고 꿈을 실어다 주던 꿈차였다. 특별히 가야 할 곳도 없는 어린 계집아이 주제에 빵차를 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아쉽게도 우리 마을은 기차가 서지 않는 마을이었다. 작은아버지는 가끔 나와 한 살 어린 사촌 여동생의 머리를 번갈아 들어 올리며 꿈의 도시 서울 구경을 시켜주곤 했었다. 작은아버지가 “서울 구경이다앗!” 하면서 쭈욱 끌어 올리면 우리는 네 다리를 흔들며 까르르 웃어대던 서울 구경 놀이. 그 놀이는 꼭 빵차가 지나가는 저녁 무렵에 해야만 제맛이 났다.
어른이 되어 알고 보니 빵차는 서울행 기차가 아니었다. 내 고향 여주에서 수원까지 운행되었던 기차였는데, 일제강점기 때 여주 쌀을 수탈하려고 일제가 가설한 협궤열차였다. 일제가 물러간 후에는 통학생이나 장날 물건을 팔러 다니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기차로서 제 몫을 다하였지만, 새롭게 우회하는 자동차 길이 생겨 기차 이용객이 급감하게 되면서 내 나이 대여섯 살 무렵 선로는 완전히 철거되었고 지금은 도로로 사용되고 있다. 기찻길이 철거되던 날, 나는 여전히 작은아버지 집 마당에서 꿈이 무너지는 광경을 지켜보며 땟꾸정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몇 해 전 어느 날, 조용하던 시골 마을에 또다시 기찻길이 놓였다. 이번에는 동네 앞이 아니라 마을 뒤쪽으로 난 신식 기찻길이다. 빵차가 덩치 큰 시커먼 흑룡이었다면 신식 기차는 용의 비늘처럼 반짝이는 날렵한 백룡이다. 새로운 기찻길의 이름은 경강선京江線. 기찻길이 생긴다는 소식은 나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주고 뭉클한 설렘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마을 뒤쪽은 앞쪽과 달리 대부분이 산과 논밭이다. 경운기와 농사용 트랙터와 승용차 정도만 다닐 수 있는 좁은 길만 있을 뿐 번듯한 도로도 없다. 그곳에 군데군데 깃발이 꽂혔고 동네 사람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기찻길이 놓인다는 말은 목화밭에 피어오르는 하얀 솜뭉치처럼 시골 어르신들의 가슴속을 부숭부숭 일렁이게 했다. 그것은 마을 뒤쪽 산과 논밭이 기찻길로 편입되어 큰 보상을 받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보상금은 동네 몇몇 어르신들의 통장을 두둑하게 해주었고 마침내 신식 기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동네에서 제일 보상을 많이 받은 사람은 나에게 서울 구경 놀이를 시켜주던 작은아버지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식사 대접까지 하면서 마음껏 호기를 부렸던 모양이다.
“아, 기차역이 우리 마을에 생기기만 했어봐. 이깟 밥 한 끼가 문제겠어? 안 그런가?”
기차역이 생겼더라면 보상금은 훨씬 많아졌을 것이고 이것보다 더한 대접을 기대할 수도 있었다며 자못 안타까운 듯이 마을 어르신은 물었다.
“받은 보상금이 얼마인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나? 역이 생기든 안 생기든 내 상관할 바 아니라네.” 보상금에 만족한다는 뜻으로 작은아버지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러나 이 잔치에 웃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친정아버지였다. 보상 대상이 된 땅은 아들 4형제를 둔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산이었는데 동네 사람들에게 후한 인심을 쏟아놓던 분이 형제들에게는 그러질 못했다. 작은아버지는 받은 보상금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을 동생들에게 건네주는 걸로 일을 마무리했다. 친정아버지는 동생의 이런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일로 말미암아 친정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사이에는 돈독했던 우애 대신 어정쩡한 간격의 길이 놓이게 되었다. 만약 기차역이 생겨서 더 많은 보상금을 받았더라면 새로 생긴 기찻길보다 더 넓은 마음의 간격이 생기게 되었을 것 같다.
경강선 열차가 지나가는 친정 마을은 여주시 세종대왕면 용은리龍隱里다. 근방의 어르신들은 속칭 용구머리 마을이라고 부른다. 옛날 옛적에 우리 마을에는 용 열 마리가 살고 있었다. 머리를 나란히 하고 아홉 마리는 승천했지만, 나머지 한 마리는 승천하지 못하고 마을 어딘가에 숨어있다는 이야기가 지명 안에 담겨있다. 어딘가에 숨어있는 한 마리의 용이 비상하게 될 꿈의 날을 기다리는 자그마한 마을 용은리.
새로 난 기찻길은 일부 동네 사람들 통장을 그득하게 해주었다. 제일 두툼한 통장을 주머니 속에 간직하게 된 어떤 분은 새로 난 기찻길이 열 번째 용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기찻길이 그 용이 아니기를 바란다. 숨어있는 용은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마음의 간격을 허물어뜨리고 화해의 손을 잡게 할 궁리를 하고 있으리라. 그리고 빵차가 철부지 계집아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별을 안고 달을 지고 싶은 아이들의 보송한 꿈을 응원하리라. 마지막 용은 잠자코 어딘가에 숨어서 이 마을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용구머리 사람들의 행복과 아이들의 바람을 안고 자신이 멋지게 용틀임하며 비상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면서.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용은리는 기차가 서지 않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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