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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효 Jan 28. 2024

녹족부인




(최종) 고구려의 어머니






“어제는 그대가 나에게 고구려 태왕이 올 것이라 하지 않았소이까?”


“어제는 어제입니다. 대장군, 한시가 급합니다.”



우중문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하면서 금방이라도 유사룡을 때려죽일 것만 같았다.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발악하였다. 그 바람에 옆에 있던 참모들이나 병사들은 몸을 숨기기 바빴다. 우중문이 겨우 진정하자 우문술이 찾아왔다.



“우익위대장군, 지금이라도 철군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어차피 늦었습니다만, 우리라도 살아야 할 거 아닙니까? 병사들은 몰라도 우리 장수들은 고구려군에 생포되면 참수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어서 속히 짐을 싸서 퇴각합시다.”

우중문은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그가 삼록과 구록을 불렀다.



“너희들은 전군에게 빨리 살수 쪽으로 퇴각하라고 전하라. 무거운 짐은 버리고 가도 좋다. 몸만 챙겨 철군하라고 해라.”



삼록과 구록은 미소를 머금고 말을 타고 병영을 누비며 우중문의 명령을 하달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설세웅, 신세웅, 우어위장군 장근(張瑾), 우무후장군 조효재(趙孝才) 등 장수들도 자신의 휘하 병사들에게 빨리 철군하라고 독촉했다. 별동대의 진영은 한순간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겁에 질린 병사들은 주린 배를 끌어안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상당수의 병사는 걷기조차 힘든 상태였다. 발 빠른 병사들은 이미 진영을 빠져나와 삼삼오오 도망쳤다. 군대의 질서정연한 행군 대열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매에게 쫓기는 토끼 떼처럼 별동대 병사들은 북쪽을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수나라 별동대 중에서 병든 자와 운신하기조차 어려운 자들은 맨 뒤로 쳐져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군대의 일원이라고 할 수 없었다. 겁에 질린 채 죽기 살기로 북쪽으로 향하는 거지 떼와 같았다.



우중문은 낙오된 병사들은 차마 죽일 수 없어 그대로 두었다. 말을 탄 별동대 지휘부와 기마대 등 선두는 이미 살수 근처에 접근하고 있었다. 별동대 병사들이 군영을 거의 다 빠져나가고 한나절이 지났을 때였다.



“고구려군이다. 고구려 철갑기병대가 온다.”

“빨리 도망쳐라. 꾸물거리다가 죽는다.”


남쪽에서 뽀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고구려 기마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낙오된 별동대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뛰었지만, 비호처럼 달려드는 고구려 철갑중기병대의 추격을 따돌릴 수 없었다.


“공격, 오랑캐 놈들을 살려두지 말라.”



기병대를 이끄는 고구려 장수가 소리쳤다. 지축을 흔들며 달려오는 고구려 기병대가 도망치는 별동대의 후미부터 공격을 시작하였다. 제 한 몸도 가누기 어려운 별동대는 추풍낙엽이었다. 고구려 기병대의 칼날 아래 그들은 피를 뿌리며 처참하게 죽어갔다. 순식간에 낙오된 별동대 수만 명이 어육이 되었다.


기병대 뒤로 보병부대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또 한 번 별동대의 심장을 꿰뚫었다. 고구려군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수나라 별동대의 잘린 머리통과 몸통이 이리저리 뒹굴었고, 굶주린 까마귀 떼와 산짐승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그들의 육신을 뜯어 먹었다. 다음 날 아침 기를 쓰고 밤새 달려온 별동대가 살수 근처에 도달했다.



“별동대는 나를 따르라. 이곳 지형은 내가 잘 안다. 저기 저 살수만 건너면 안심할 수 있다. 나를 따르라. 우리가 건너온 곳을 건너면 안 된다. 그곳에는 이미 고구려군이 매복해 있을 것이다. 나를 따라 서쪽으로 가는 자는 살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는 저 살수에 갇혀 고구려군의 화살이나 창칼에 죽을 것이다.”

일록이 칼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나를 따르라. 북쪽으로 좀 더 올라가면 강폭이 좁은 곳이 나온다. 나를 따르는 자들은 고향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삼록과 구록도 별동대를 향해 소리쳤다. 녹족 삼 형제는 겁에 질려 갈팡질팡하는 별동대를 세 곳으로 분산하여 유도하였다. 세 형제가 별동대를 인도하는 지역은 웅록이 알려준 살수 남안(南岸)에 있는 고구려군 매복 지점이었다. 군 지휘체계는 벌써 무너지고 장수들도 무거운 투구와 장군 복장을 벗어 던지고 병사들 사이에 숨어들어 도망치기 급급했다.


그 와중에 녹족 삼 형제는 투구를 쓰고 붉은 망토를 걸친 채 이리저리 달리며 별동대를 지휘하였다. 우중문과 우문술은 친위부대에 둘러싸여 도망치기 바빴다. 살수에 도착한 별동대는 20만 명이 조금 넘는 정도였고 나머지는 이미 고구려군의 창칼에 찔려 저승길로 향하고 있었다.


“역시 녹족 형제들은 진정한 전사로다. 나를 대신하여 군사들을 진두지휘하는구나. 잘한다. 아주 잘해. 내가 돌격대장은 정말로 잘 뽑았어. 저 애들은 지금도 공을 세우고 있지만, 나중에는 수나라를 위하여 큰일을 할 인재들이다.”


우중문은 도망가면서도 군대를 지휘하는 녹족 삼 형제를 칭찬하였다. 지휘부가 없어 오합지졸로 변한 별동대는 녹족 삼 형제가 이끄는 대로 따랐다. 일록이 ‘左翊衛大將軍宇文述(좌익위대장군우문술)’이라고 쓰인 대장군 깃발을 들고 앞장서서 서쪽으로 말을 달리니, 우문술 휘하의 별동대들이 모두 그의 뒤를 따랐다. 또한, 삼록과 구록이 ‘右翊衛大將軍于仲文(우익위대장군우중문)’의 깃발을 각각 하나씩 들고 흔들며, 동북쪽으로 달려가니 우중문 휘하의 제장(諸將)과 별동대들이 두 형제 뒤를 따라 달렸다.


“아니, 저놈이 나의 허락도 없이 군사들을 서쪽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그리 가면 몰살한다. 그 지역은 강폭이 넓어 건너기 어렵다. 빨리 군사들을 원위치로 돌리라고 하라. 빨리.”

우문술이 발을 동동 굴렀다.



“이놈들아, 돌아와라.”


“그리 가면 모두 죽는다. 원위치로 와라.”


“좌군은 돌아오라.”


우문술과 휘하 군관들이 별동대를 향해 소리쳤지만, 대군의 함성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다. 우문술과 우중문도 장군 복장을 버리고 일반 병사들처럼 허름한 옷을 입은 상태라 병사들은 그를 몰라보았다. 명령 체계도 마비되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우문술은 키가 작아 그가 아무리 소리치며 명령을 내려도 누구 한 사람 들으려 하지 않았다. 별동대가 일록을 따라가자 우문술도 할 수 없이 그를 따라가야 했다.


“여봐라. 우리도 어서 삼록 대장이 이끄는 방향으로 쫓아가자. 지금 상태에서는 오로지 녹족 형제 말만 들어야 살 수 있다. 곧 고구려 철기(鐵騎)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고구려 철갑중기병은 천하무적이다. 그들에게 걸리면 살아남지 못한다. 빨리 가자.”


별동대는 두 편으로 나뉘어 이동하였다. 우문술이 지휘하는 좌군 10만 별동대가 살수 서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달려갈 때 갑자기 하늘에서 화살 비가 쏟아졌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카맣게 쏟아져 내리는 화살 비에 수나라 별동대는 속수무책이었다. *이각(二刻)도 안 되어 10만의 별동대가 대부분 강기슭 모래사장에 쓰러졌다. 화살 비가 그치자 이번에는 고구려 철갑중기병대가 들이닥쳤다. 그 뒤로 창칼과 도끼를 든 고구려 보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수나라 오랑캐들을 죽여라. 한 놈도 강을 건너게 해선 안 된다.”


고구려 철갑중기병을 지휘하는 장수의 명령이 떨어졌다. 강기슭에 숲속에 숨어있던 고구려 기병대가 나타나자 별동대는 눈이 뒤집혔다. 별동대는 서로 먼저 도망치려다가 고구려군의 칼을 맞고 절명하거나 강물로 뛰어들었다가 화살을 맞기도 했다. 별동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우문술은 자신을 호위하는 친위부대 백여 명과 함께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우문술은 도망치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지만 끝내 일록은 보이지 않았다.



*이각 – 일각이 15분이니 이각은 30분이 된다.



우중문의 휘하의 살아남은 별동대 10만 명도 삼록과 구록의 뒤를 따르며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그렇게 *이각(二刻)을 달려갔을 때였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화살 비가 쏟아졌다. 고구려군은 1인당 화살 50개를 전통(箭筒)에 담아 대기하고 있었다. 이각이 지났을 때 우중문 휘하의 별동대는 거의 쓰러진 상태였고 용케도 살아남은 자들은 살수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들도 날아드는 화살을 맞고 절명하고 말았다. 우중문과 휘하 장수들은 정신이 나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지리산가리산 허둥대기만 했다.



“삼록 대장과 구록 대장은 어디 있느냐? 나를 호위하라. 내가 무사해야 한다. 졸병들은 죽거나 말거나 신경 쓸 거 없다. 내가 살아서 황제 폐하께 이번 진군의 자초지종을 말씀드려야 한다.”



“대장군, 녹족 형제는 고구려군과 전투를 하는 중인가 봅니다.”


“그럼, 신세웅이는 어디 있느냐?”


“신세웅 장군은 고구려군이 쏜 화살을 맞고 전사했습니다.”


“뭐라? 세웅이가 죽었단 말이냐? 여봐라 녹족 형제를 찾아와라. 이제 내가 믿을 부하는 녹족 형제뿐이다.”



우중문이 ‘삼록’, ‘구록’을 찾았지만, 녹족 형제는 보이지 않았다. 우중문은 자신을 호위하는 친위부대에 둘러싸여 강을 건너가려 했다. 전투가 끝나가고 있었다. 고구려군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고구려군은 싱겁게 끝난 전투에 모두 서름한 표정이었다. 살수를 건너려다 별동대 대부분이 목숨을 잃고 지휘관들을 포함하여 약 일만여 명의 기병(騎兵)만 겨우 강을 건너 북쪽으로 도망쳤다.



살수에서 압록수까지는 대략 4백 리가 넘는 거리였다. 살수는 수나라 별동대의 시체로 뒤덮였고, 강물은 피로 물들었다. 고구려군이 죽은 수나라 병사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맨발이었고, 뼈에 살가죽만 남아있는 병사도 상당수였다. 시신 한 구에 화살 10발 이상이 꽂혀 있었다. 고구려 고대원(高大元) 태왕 즉위 23년 7월 하순 고구려군은 수나라 별동대 대부분을 살수에 수장시켰다.



별동대들이 가지고 있는 병장기는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작은 칼 하나가 전부였다. 도망치는 마당에 큰 병장기는 도움이 안 되니 버린 것 같았다. 살수 주변에서 노획한 물건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살수가 다시 조용해졌다. 강변과 강 위에 둥둥 떠다니는 오랑캐 시체에 까마귀와 독수리 떼가 몰려들어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새들뿐만 아니라 멀리서 피 냄새를 맡은 늑대와 이리 등 야수들도 떼를 지어 살수로 몰려들었다. 살수에는 밤새도록 오랫동안 굶은 금수(禽獸)들이 먹이를 두고 다투는 소리만 요란했다.



“저기 오랑캐들이 온다.”


살수에서 살아 남은 수나라 오랑캐들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이틀 반나절 만에 압록수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그곳에도 이미 을지문덕이 배치한 고구려군이 지키고 있었다. 우중문과 우문술은 탈진한 상태로 간신히 압록수에 도달했지만, 추격해오는 고구려 기병들을 완전히 따돌릴 수는 없었다.



진퇴양난의 처지가 된 별동대 잔당들은 우중문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우중문은 멀리 까치놀이 반짝거리는 압록수를 망연자실 바라보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는 지금의 이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설령, 살아서 요동 대본영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황제 양광이 자신을 살려두지 않을 것 같았다.



“녹족 형제는 어디 있느냐?”

우중문이 자신을 따르는 여러 장수에게 물었다.



“대장군, 녹족 삼 형제들도 살수에서 모두 목숨을 잃은 모양입니다. 이곳까지 오는 내내 볼 수 없었습니다.”



“저런, 저런. 참으로 아까운 인재들이었는데, 전사하다니 내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구나. 잠시 행군을 멈추고 녹족 형제의 명복을 빌자.”

옆에 있던 우문술이 우중문의 엉뚱한 행동을 보고 속으로 비웃었다.



“대장군, 잠시도 지체하면 안 되오. 고구려 기병대가 추격해오고 있소이다.”


“시끄럽소이다. 당신은 총애하는 부하가 전사하여도 그리 비정하게 말할 거요? 살고 싶으면 당신이나 먼저 가시오.”

우중문이 우문술을 향해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대장군들은 싸우지 마시오. 좌익위대장군 말씀이 맞아요. 곧 고구려군이 들이닥칠 것이오.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하오.”

유사룡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싸움을 말렸다.



“저 압록수에도 우리 별동대를 기다리는 야수 같은 고구려놈들이 있을 것이오. 유 위무사, 어찌하면 좋소?”



“대장군, 우리 모두 한곳으로 압록수를 건너가면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지금 대략 세어보니 일만 명의 기병들이 있소이다. 우리 지휘관들은 저 뒤의 능선을 넘어 강기슭을 따라 북쪽으로 달리고 나머지 기병들은 직선으로 압록수를 건너가게 해야 합니다. 고구려군을 속여 지휘부만이라도 살아야 합니다.”



“그거 아주 기막힌 계략이오. 그리합시다. 설세웅과 최홍승(崔弘昇)은 방금 위무사께서 하신 말씀대로 해라. 그리해야 지휘부가 무사히 살아서 도망칠 수 있다.”



‘나쁜 놈들, 지휘관이란 놈이 저 살 궁리만 하는구나. 내가 저런 놈을 상관이라고 믿고 여기까지 왔으니, 나도 참으로 딱한 인생이로구나.’



설세웅은 우중문의 명령을 받들어야 했다. 그는 기병대에게 곧바로 압록수를 건너가라고 명령했다. 우중문, 우문술을 비롯한 좌효위대장군 형원항(荊元恒), 우익위장군 설세웅, 우어위장군 장근(張瑾), 우무후장군 조효재(趙孝才), 검교좌무위장군 최홍승, 검교우어위대장군 위문승 등 별동대 지휘부와 눈치 빠른 자들, 대략 7백여 명이 능선을 넘어 강기슭을 따라 북동쪽으로 달렸다. 별동대 지휘부가 북동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그만 고구려군이 눈치채지 못했다.



“저기 오랑캐 놈들이 압록수를 넘고 있다. 한 놈도 건너게 하면 안 된다. 자랑스러운 고구려 전사들이여, 저 오랑캐들을 모두 압록수의 물고기 밥이 되게 하라.”


“고구려의 철천지원수 놈들이다. 모두 수장시켜라.”



철갑중기병대를 지휘하여 달려온 을지문덕과 웅록은 수나라 별동대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웅록은 말을 타고 앞장서서 기병대와 함께 압록수로 뛰어드는 별동대를 후미를 공격했다. 압록수 남북 양쪽 강기슭에서 화살이 별동대를 향해 빗발쳤다. 병사들 비명, 말 울음소리, 북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일각도 안 돼서 압록수는 핏물로 물들었고 황해에서 날아온 갈매기들만 무심하게 강 위를 날아다녔다. 압록수를 건너던 일만여 명의 별동대 중 8천여 명이 압록수에서 고구려군에게 희생되었다. 그 와중에도 별동대는 마구(馬具)나 갑옷, 나무토막 등을 엮어 구명대(救命帶)를 만들어 타고 황해로 떠내려갔다. 고구려군이 보는 앞에서 압록수를 건너간 별동대는 한 명도 없었다.



“우리 고구려가 승리했다. 수나라 오랑캐들은 모두 어육이 되거나 용왕님을 뵈러 갔다.”



“대고구려 만세.”

“을지문덕 장군, 만세.”

“웅록 부관님, 만세.”



해가 뉘엿뉘엿 서산 아래로 지고 있었다. 압록수는 다시 조용해졌다. 7월 하순 가장 무더운 날에 고구려와 수나라의 2차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을지문덕과 웅록은 얼싸안고 승전의 기쁨을 나누었다. 고구려군은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다. 을지문덕은 전 병사들에게 술과 고기를 내리고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군 지휘부는 조촐한 자축연을 벌였다. 을지문덕은 여러 장수의 노고를 위로하고 술을 한 잔씩 따라 주었다. 지난 두 달은 고구려 역사 650년 만에 최대 고빗사위의 나날이었다. 고구려군의 승리는 을지문덕의 탁월한 지도력과 고구려 전 백성이 일치단결한 결과였고, 고구려를 지켜주는 천지신명과 조상들의 응원 덕분이기도 했다.



“장군님, 소관이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웅록이 자축연이 무르익을 무렵 을지문덕을 막사 밖으로 불러냈다.



“왜 그러는가? 혹시 아들들이 찾아왔는가?”

“장군님, 소관이 작별 인사를 올립니다.”



웅록은 그 자리에서 을지문덕에게 큰절을 올렸다. 웅록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을지문덕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는 압록수까지 고구려군을 진두지휘하면서 녹족 삼 형제의 안위를 걱정했다. 웅록이 잠시 보자고 했을 때 을지문덕은 ‘올 것이 왔구나’하고 생각했다.



“어디로 가시려는가?”


“강 건너에서 세 아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장군님 곁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20년 전에 잃어버린 아들 육록이와 팔록이를 찾아야 합니다. 그 두 아들은 장안(長安)의 인간 시장에서 페르시아 노예 상인에게 팔려갔습니다. 요즘 들어 그 애들이 밤마다 꿈에 나타납니다.



우선 세 아들과 장안으로 가서 노예 상인들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저의 두 아들이 사는 곳이라면 인도, 페르시아, 비잔틴 등 그 어디라도 찾아가서 반드시 데리고 오겠습니다. 장군님, 이렇게 이별을 고하는 무례한 저를 용서하십시오. 장군님이 보고 싶으면 저는 무산(巫山)의 신녀 처럼 아침에 구름이 되었다가 밤에 비가 되어 내리는 흉내는 낼 수 없지만, 매월 보름밤, 저 달님에게 장군님의 안부를 묻고 저의 소식도 알리겠습니다. 이제 떠나면 십 년이 걸리든 또는 백 년이 걸리든 아니면 천만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고구려로 돌아와 장군님을 찾아뵐 것입니다.”

웅록이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이런 날이 올 줄 예상은 하고 있었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자네와 이별할 줄 몰랐어. 오늘 밤부터 꿈속이라도 상관없으니 찾아오게. 이제 나도 몽중인(夢中人)을 두었으니,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가 있을 것이야. 꼭 돌아와야 하네. 나를 영원히 오매불망(寤寐不忘)하는 사람이 되게 만들지 마시게. 그리고 자네와 자네 아들들은 자랑스러운 고구려 후예들이네. 부디, 몸조심하고 무탈하길 빌겠네.”



“장군님-.”


을지문덕은 흐느끼는 웅록을 살며시 안아주었다. 웅록의 가슴이 고동치면서 웅숭깊은 사나이 가슴에 온기가 전달될 때 을지문덕도 눈물을 쏟아냈다. 을지문덕은 막사로 들어가더니 금덩이가 든 상자를 가져와 웅록에 건넸다. 상자를 열어보던 웅록은 그만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동녘에서 달이 오르면서 사방이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냈다. 웅록이 을지문덕에게 작별을 고하고 압록수를 향해 가자, 을지문덕은 배웅하기 위해 웅록을 따라나섰다. 그때 강 건너에서 횃불 세 개가 빙빙 돌고 있었고, 강 양쪽에서 수천 마리의 사슴들이 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웅록이 강을 무사히 건너갈 때까지 끊이지 않았다. 

                                                                                                                                                                                                      <끝>







* 긴 글 읽어주신 님에게 머리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곧 다른 소설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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