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난주 마리아(5)

어머니를 만나러 떠나다

by 최재효








본 소설을 하늘에 계신 정난주 마리아님께 바칩니다. - 저자 최재효










어머니를 만나러 떠나다






“얘야, 이제부터 너는 황경한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 마을에 사는 동안은 계속해서 업동이라고 불러야 하겠지. 그동안 너를 보호하기 위하여 가짜 이름으로 불렀던 게야.



우리 부부는 너를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네 형들보다 너에게 더 좋은 옷, 좋은 음식을 먹이고 공부도 더 많이 시켰다. 이만하면 정마리아님의 바람대로 된 듯도 하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구나.”

오씨는 울먹이는 업동이 황경한의 넓은 등을 다독거렸다.



“아버님, 어머님, 고맙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킨 황경한은 오상선 부부에게 큰절을 올렸다.



“두 분 정말로 고맙습니다. 저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도 저를 친자식처럼 키워주신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까요. 제가 오업동이에서 황경한이 되었지만 죽을 때까지 두 분 크신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황경한은 오씨 부부에게 다시 한번 큰절을 올리고 눈물을 훔쳤다.



“경한아, 고맙구나. 이것은 얼마 전에 제주 대정현에 계신 어머니 정난주 마리아님께서 인편에 보내오신 편지란다. 어머니는 또 다른 이름으로 정명련이고, 천주교 신자로 세례명은 마리아라고 하신다.”



“어머님이 저에게 보내신 편지라고요?”

“그래. 진작 너에게 보여줘야 했는데 좀 늦었구나.”



오상선은 언젠가 제주에서 소식이 올 것을 예견하고 경한에게 글공부를 시켰다. 추자도는 제주와 마찬가지로 조정에서 벼슬을 하던 유배인들이 거주하고 있어 뜻이 있는 주민들은 자식들을 그들에게 보내 글을 배우도록 했다.



오씨는 자신의 친아들들은 이름 석 자 쓸 정도로 간단한 교육으로 끝냈지만 경한은 정성을 다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남의 사정도 모르면서 오씨에게 업동이 아들을 공부시켜 과거를 보게 하려고 한다며 놀려대기도 하였으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남의 자식이기에 오씨는 더욱 신경을 섰다. 하늘이 준 자식이기에 그는 하늘이 내린 천명을 거스를 수 없었다.





나의 아들, 경한이에게


이십수 년 전인 신유년(辛酉年)에 어미와 자식은 하늘의 뜻을 어기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역모죄에 연루된 죄인의 자식은 대대로 노비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어미는 한쪽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을 참고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구나.


수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얼마 전, 네가 오상선님 댁에서 업동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지금쯤 너의 뿌리를 알게 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너를 친자식처럼 먹이고, 입히고, 보살펴 주신 두 분을 진정한 부모로 여기고 두 분이 세상을 뜨는 그 날까지 효도로써 깍듯하게 모셔야 한다.


북풍한설 휘몰아치던 그 날 너를 갯바위에 올려놓고 떠날 때 이 어미의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단다. 그 통한의 아픔은 우리 모자의 운명이라 누구를 탓할 수 없구나.

이 어미는 제주 대정현 유지 김석구님 댁에서 침모(針母)로 살고 있단다. 내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단 하루도 너를 잊어 본 적이 없었다. 네가 보고 싶을 때면 바닷가에 나가 갈매기에게 네 소식을 물었고,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뒷동산에 올라가 달님에게 이 어미의 소식을 띄웠단다.


앞으로 우리 모자가 상봉할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만, 설령 그런 날이 오지 않더라도 운명으로 간주하고 살아가야 한다. 너와 내가 이렇게 저 제주 앞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승과 저승처럼 떨어져 살아야 하는 말 못 할 운명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차피 인생은 한번 왔다 가는 것이니, 살아있는 동안 사람으로서 행동하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너는 모태 신앙으로 태어났으니 부디 하느님의 품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잠시도 잊으면 안 된다.


아들아, 네가 이 글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어미는 성령이 너에게도 임했다는 증거로 믿고 싶구나. 항상 윗사람을 존경하고 아랫사람에게도 예의와 은혜를 베풀고 살기 바란다. 간절하면 이루어지게 되니, 우리 서로를 그리워하며 기도하자꾸나. 또 기별하마. 늘 몸 건강하길 빈다.



제주 대정현에서 정난주(명련) 마리아




“어머니, 어머니…….”



언문체로 쓰인 편지를 다 읽은 경한은 대성통곡하면서 어머니를 부르짖었다. 경한은 한나절 통곡하고 나서 생전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답장을 써서 인편에 보냈다.



직접 다녀올 수도 있었지만 추자도에서 외부로 나가는 것을 관아에서 철저히 통제하였고, 더구나 경한은 숨어 사는 죄인의 자식이었다. 충격을 받은 경한은 식음을 전폐하고 두문불출하였다.



오상선 부부는 그런 아들을 딱한 시선으로 바라만 볼 뿐, 뭐라고 나무라거나 마음에 상처가 될 만한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거의 열흘쯤 방안에서 뒹굴던 경한이 어느 날, 이른 아침 괴나리봇짐을 메고 오상선 부부에게 인사를 올리고자 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이렇게 하면 안 되는 일인 줄 압니다만, 이 섬에만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제주 대정에 다녀와야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제가 아무리 죄인의 자식이라고 하지만, 저를 낳아주신 어머님께서 살아계시는데 이렇게 가슴만 태우고 있을 수 없습니다.”



오상선 부부는 경한의 차림새를 보고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령 제주에 가도록 허락을 한다고 하여도 제주에 가는 방법은 배를 타고 가는 수밖에 없었기에 관헌들의 시선을 벗어날 수 없었다.



경한아, 네가 가는 것은 막지 않는다. 네가 나의 입양아들이라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네가 제주에 발을 내딛는 순간 너는 관헌들의 오랏줄에 묶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에 용케도 마리아님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자칫 너로 인하여 정마리아님이 큰 곤욕을 치르게 될 수도 있다.



이십 년 전에 너는 죽었다고 조정에 보고가 되었는데, 네가 이렇게 버젓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정마리아님은 범인 은닉죄로 감옥에 가고 너는 노비로 전락하여 평생 후회하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단다.



“아버지, 제가 알아서 다녀오겠습니다. 절대로 관헌들에게 조사받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안심하세요.”



경한은 오상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섰다. 해남이나 강진에서 출발하여 제주로 가는 상선을 타기 위하여 업동이 경한은 상추자도 당포항으로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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