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난주 마리아(4)

오업동에서 황경한으로

by 최재효








본 소설을 하늘에 계신 정난주 마리아님께 바칩니다. - 저자 최재효












오업동에서 황경한으로





정난주 마리아는 신유년의 아픈 기억에서 어느 정도 마음의 치유를 이룬 상태였다. 더 늦기 전에 아들을 찾아야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진작부터 아들에게로 향하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주변의 상황이 아직은 녹록하지 않았다.



주인에게 깊은 신임을 받고 주인 아들까지 훈육을 맡은 터라, 그미의 행동은 더욱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아들 경한에 대한 모정의 사무치는 한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갔다.



“이모님, 그런 일이라면 진작 말씀하시지 않고요.”

그미는 더 지체하였다가 아들을 영영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집주인 김석구의 두 아들 중 자신의 형편을 잘 이해하고 있는 큰아들 김상집에게 넌지시 하추자도에 있는 아들을 찾고 싶다고 마음을 내비치자, 그는 선뜻 자신이 힘을 써보겠다고 했다.



“나는 죄를 짓고 이곳에 노비로 귀양 온 사람입니다.”

“이모님께서는 말이 죄인이지 사실은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대정현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제가 사람을 놓아 곧 하추자도에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다음날 김상집은 해남댁을 방물장수로 변장시켜 하추자도에 들어가게 하였다. 그녀는 황경한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정난주 마리아에게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집이나 불쑥 들어가 다짜고짜 황경한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릴 수 없었다.



해남댁은 김상집이 특별히 준비한 배를 타고 하추자도 예초리에 도착하였다. 예초리 주민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는 어부들이었다. 낮이라 그런지 마을에는 사람 구경하기조차 어려웠다. 마침 한 노파가 걸어오고 있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방물장수입니다. 말씀 좀 여쭤볼게요. 이 마을에 스무 살 정도 된 총각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느 집인가요?”

노파는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해남댁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방물장수가 그건 왜 물어?”

노파가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할머니, 이 마을에 착하고 성실한 총각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서 참한 색시를 소개하려고 제주에서 일부러 왔어요.”

해남댁은 생글생글 웃으며 노파의 환심을 사려고 애썼다.



“그럼, 업동이를 말하는 건가, 아니면 개똥이를 찾는 것인가? 이 마을에 총각이 둘이야. 아니지, 개똥이는 지난해 장가를 들었지참.”



“네네네. 맞아요. 그 총각 이름이 업동이라고 들었어요. 할머니, 이건 제가 이 마을에 처음 온 기념으로 드리는 선물입니다.”



해남댁이 얼른 방물함에서 바늘 한 쌈과 얼레빗이 든 예쁜 상자를 꺼내 노파에게 건네자, 노파의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줘. 저기, 저 바닷가에 있는 집이 업동이네 집이여. 업동이는 그 집 친아들이 아니고 상선이 먼 친척 아인데, 부모가 병으로 죽어서 데려다 상선이가 친아들처럼 기르고 있어. 업동이는 심성도 곱고 일도 잘해. 그 애가 뉘 집 사위가 될지 모르지만 그 애를 사위로 맞으면 복 받은 거여.”

노파는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해남댁에게 들려주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해남댁은 오상선의 집으로 향했다. 마침 오씨의 처가 마당에서 남편이 잡아 온 생선을 정리하여 횃대에 올려놓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방물장수입니다.”

“어서 오시구랴.”

“이 댁에 혼기가 꽉 찬 총각이 있다고 해서 들렀습니다.”



해남댁은 일을 거드는 척하다가 오상선의 처와 말이 통하자 왜국에서 들여온 분이며, 입술연지, 빗 등 여인네들에게 소용되는 물건을 잔뜩 벌여놓고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해댔다.



“아들을 장가보내려면 신부댁에 함을 보내잖아요. 요즘엔 함 속에 외국산 분첩을 넣어 보낸답니다.”

해남댁은 알록달록하고 앙증맞은 방물들을 들어 보였다. 그녀의 세 치 혀는 순진한 촌부의 눈을 어지럽히며 정신을 쏙 뺐다.



“우리 집에 총각이 있는 걸 어찌 아셨누?”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인물 좋고, 심성도 착하고, 일도 잘한다고요.”



해남댁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들어 댔다. 오씨 처는 해남댁 말에 기분이 좋아져 입이 벌어졌다.



“우리 업동이는 최고 신랑감이지. 이 물건들은 값이 꽤 나가겠는데.”

“오늘은 제가 이 마을에 처음 온 기념으로 외상으로 드릴 테니 값은 천천히 주셔도 돼요. 형편 안 좋으면 내년에 주셔도 되고요.”



외상이라는 말에 오씨 처는 방물함에 있는 물건의 반을 구입하였다. 해남댁은 방물 몇 가지를 덤으로 더 주면서 자연스럽게 업동이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냈다.



오씨 처는 처음 보는 해남댁에게 업동이에 대한 상세한 것까지 들려주며 참한 색시 있으면 중신을 서달라고 하였다. 해남댁은 오씨 집을 나오며 업동이에 관한 내용을 잘 기억해 뒀다.



“해남댁, 다녀오느라고 고생했어요. 이건 수고비입니다.”

“아이고, 안 주셔도 되는데요.”



해남댁이 돌아오고 나서 김상집은 집사와 하인 등 두 명을 하추자도로 보내 정식으로 황경한을 찾아가도록 하였다. 집사가 오상선의 집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제주 대정현에서 왔습니다. 이 댁에 황경한이라는 총각이 살고 있지요?”

“우리 집에는 그런 총각 없습니다.”



오상선은 낯선 사내들이 아들의 이름을 들먹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황경한을 잡으러 온 관헌들이 아닌지 오씨는 잔뜩 겁을 집어 먹었다.



“노인장, 안심하십시오. 우린 황경한의 어머니 정난주 마리아님의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업동이라는 총각이 황경한이라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고요.”

오상선은 사내들이 정난주란 이름을 언급하자 안도하였다.



“정말로 정난주 마리아님께서 보내서 오셨는지요?”

“노인장, 이것을 보십시오. 이것은 정마리아님께서 아드님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사내가 오상선에게 편지가 든 봉투를 건넸다.



“아, 그렇습니까? 진작부터 마리아님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그제야 오상선은 두 사내를 집안으로 안내하였다.



“총각은 지금 집에 있습니까?”

“업동이는 어장에 나가 있습니다. 해가 져야 들어 올 겁니다.”



오상선의 처는 급히 술상을 방안으로 들였다. 오상선은 황경한을 거두어 지금까지 자식처럼 키운 과정에 대하여 김석구의 집사에게 자세히 들려주었다.



황경한은 자라면서 형들과 달리 신체가 크고 골격 또한 굵었다. 언뜻 보아도 형들과 외관이 전혀 딴판이라 오상선은 업동이를 키우면서 무진 애를 먹었다.



먼 친척의 자식을 입양하여 키운다는 말로 겨우 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는 했지만, 언제 관아에서 업동이를 잡으러 올지 몰라 늘 좌불안석이었다.



“노인장께서 참으로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그 아이를 하늘이 내린 선물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이 편지만 전하고 갈 겁니다. 경한군이 잘 있으면 되었습니다. 신유년 천주교도 박해사건이 일어난 지 이십여 년이 훨씬 지났지만, 여전히 조심해야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경한군은 아직도 죄인입니다. 경한군이 이 섬을 떠나는 순간 위험에 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떠나고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가 되면 경한군의 탄생 비밀을 본인에게 알려줘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하겠지요. 이제 그 애도 자신의 뿌리를 정확하게 알 시기가 되었습니다.”



제주에서 온 두 사내의 방문을 받고 오상선은 한동안 고민하였다. 과연 아들 업동이가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되면 받게 될 충격과 그것으로 인해 자칫 정신이상자가 되어 집을 나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오상선 부부는 오랜 고민 끝에 하루라도 빨리 진실을 밝히기로 하였다. 만약 진실을 은폐하려다 업동이가 다른 사람 입을 통해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면 더 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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