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을 하늘에 게신 정난주 마리아님께 바칩니다. - 저자 최재효
어머니, 불효자를 용서하소서
당포항은 후풍처로 뭍에서 제주를 오가는 상선이나 관선이 풍랑이 심할 경우에 잠시 바람을 피하는 포구이기도 했다. 어렵게 상선에 오른 경한은 오상선이 한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외지에서 추자도에 들어오기는 어려웠다. 뭍에서 죄를 짓고 섬으로 도망오는 자들이 배에서 내려 제주 관아에서 파견 나온 관리들에게 신분 검사를 받다가 체포되곤 했다. 하지만 추자도에서 제주나 강진 등 외부로 향하는 배를 타기는 쉬웠다.
'내가 어머니를 찾아갔다가 나로 인하여 나나 어머니가 감옥에 갇히게 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나는 평생 노비로 살아가야 하고 어머니는 나를 추자도에 내려놓고 죽었다고 하였으니, 범인 은닉죄가 추가되어 모진 고문을 받을 수도 있다. 안 돼. 내가 어머니에게 가면 안 돼.’
황경한은 아버지 오상선의 말을 듣지 않고 도망가듯 집을 뛰처나온 자신의 경솔함을 탓했다.
“이보시오. 나를 내려주시오. 중요한 물건을 빠뜨리고 왔소.”
“그럼. 빨리 내리시오.”
배가 막 당포항을 출발할 무렵 경한은 배에서 내렸다. 그는 항구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한 주점에 들어갔다. 배가 들고 나는 곳이라 주점에는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경한은 하추자도에 사는 관계로 상추자도에 올 일이 별로 없었다.
어쩌다 형들하고 어구(漁具)를 구입하거나 기녀가 있는 주점에 술을 마시러 오기는 했어도 혼자 주점에 들어오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술을 주문하고 쓰린 가슴을 진정시켰다. 술과 안주가 나오자 그는 연거푸 술을 따라 뱃속에 들이붓다시피 했다. 옆에 있는 술꾼들이 그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금방 술 한 주전자 비워졌다. 경한은 술 한 주전자를 추가했다.
“여기 술 한 주전자 더 주세요.”
“총각, 웬 술을 물 마시듯 한대요? 벌써 취하셨구먼.”
“나 아직 괜찮습니다. 어서 술이나 가져와요.”
주모인 듯한 여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경한을 보고 한마디 했지만, 경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낮부터 대취한 경한은 당포항을 이리저리 배회하였다. 그가 휘청거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니자 당포항 주위에서 외지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거나 주점으로 손님을 호객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건달들과 어깨가 부딪히면서 시비가 붙었다.
“야! 두 눈 뜨고 왜 사람을 치는 거야?”
“젊은 놈이 대낮부터 술에 취해 비틀대는 꼬락서니라니…….”
두 건달이 경한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
“뭐야? 내가 비틀거리든 말든 네놈들이 뭔데 참견이야?”
“저 자식! 맛 좀 보여주자.”
“좋다. 오랜만에 몸 좀 풀자. 당포에 사는 놈은 아닌 듯하다.”
두 건달은 싸움에 이골이 난 자들이었다. 경한은 술에 취한 상태라 그들과 상대가 안 되었다. 경한은 일방적으로 건달들에게 흠씬 얻어맞고 말았다. 그가 얻어터지고 있어도 누구 한 사람 달려와 말리지 않았다.
포구 사람들은 좋은 구경거리라며 은근히 건달들의 편을 들고 있었다. 경한은 건달들에게 대적하지 않고 맞고만 있었다. 경한이 까무러칠 정도가 되자 건달들은 손을 털며 골목으로 사라졌다.
“어머니! 소자를 용서하세요. 어머니를 보고 싶어도 달려가지 못하는 용렬한 아들을 용서하세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경한이 울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마침 건달들이 도와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통곡하였다. 건달들한테 맞은 데가 아파서 우는 게 아니었다. 덩치 큰 사내가 길바닥에 앉아 통곡하자 사람들도 이상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저 총각이 매를 맞더니 서러운가 보네.”
“그런 것 같지 않은데? 무슨 말 못 할 사연이 있는 거 같아.”
“덩치도 크고 힘깨나 쓸 것 같은데, 피라미 같은 건달들에게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 게 이상하기는 했어.”
경한은 술이 깨고 정신이 들자 훌훌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주로 가지 않을 거면 집이 있는 하추자도로 가는 배를 타야 했다. 상, 하추자도를 오가는 배는 작은 거룻배를 타야 했다. 경한은 밤늦게 집으로 되돌아오면서 멀리 제주를 바라보며 또 오열하였다.
“어머니,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머니를 꼭 뵙고 싶었는데, 갈 수 없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오상선 부부는 돌아온 아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마음을 다잡은 경한은 다시 예전처럼 생활하면서 가끔 어머니에게 서신을 보냈다. 정난주 마리아는 아들에게서 온 편지를 받는 날이면 밤새도록 그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그리움을 삭혔다. 세월은 문틈으로 지나가는 백마처럼 무심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 사이 황경한은 추자도 처녀를 맞아 가정을 꾸리고 두 아들을 두었다. 추자도에는 황씨 성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에 그는 창원 황씨 입도조(入島祖)가 되었다. 황경한은 틈만 나면 산에 올라 남쪽바다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일락 말락 하는 제주도를 바라보며, ‘어머니’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맑은 날은 제주를 더 가까이 볼 수 있었다.
아들이 추자도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로부터 마리아 난주는 매사가 고맙고 행복하였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을 돕고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사랑을 베풀었다. 주변에는 그미의 덕행을 칭송하는 사람들이 꽤 늘었다. 그러나 그미는 행동거지가 예전과 다름없이 무척 조심스러웠다. 아직도 그미는 자신이 노비라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경거망동 할까 극도로 경계하였다.
세월이 흘러 그미도 나이를 먹게 되었다. 그미는 풍부한 교양과 지식으로 섬사람들을 교화시켰고, 관청에 소속된 노비의 신분임에도 대정현 사람들은 그미를 ‘서울 할머니’라고 부르며 존경하였다. 그미는 늘 추자도 쪽을 바라보면서 아들을 그리워하였다.
그미 역시도 관노의 신분이라 대정현 지역을 이탈할 수 없었기에 바다를 가운데 두고서 모자의 상봉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음력 정월 하순에 접어든 어느 날, 아침까지 별탈이 없던 그미는 오후가 되면서 갑자기 자리에 누웠다.
“이모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아침나절까지 멀쩡하시던 분이 갑자기 자리에 눕다니요?”
“조카님, 이승을 떠나야 할 때가 된듯합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드님 뵐 때까지 기다리셔야지요.”
“우리 모자는 어차피 이승에서 만날 수 없습니다. 내가 먼저 천국에 가서 기다려야 겠어요. 조카님, 그동안 너무 고마웠습니다.”
정난주 마리아의 모습은 이미 이승 사람 모습이 아니었다. 꼭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해남댁이 곁에 앉아 그미의 손을 잡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안 됩니다. 이리 허망하게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이모님.”
하루 종일 사경을 헤매던 정난주(명련) 마리아는 음력 2월 초하루, 66세로 한 많은 세상을 뒤로 하고 선종하였다. 김씨 집안에서는 즉시 인편으로 하추자도에 부고를 보냈다. 그러나 황경한은 부고를 받고도 어머니 장삿날에 갈 수 없었다.
김씨 집안에서는 정난주(명련) 마리아를 제주 대정읍 보성동 김씨 선산에 유택을 마련하고 영면할 수 있게 하였다. 안동 김씨에 의한 세도정치가 본격화 될 무렵이었다.
“어머니의 부음을 받고도 찾아뵙지 못하는 불효자식을 용서하세요. 훗날 저승에 들면 어머님께 천배, 만배 절을 올리겠습니다. 어머님, 부디 천국에 가시어 하느님 품에 안기소서.”
경한은 삼년 동안 베옷을 입고 아침저녁으로 산봉우리에 올라 제주 쪽을 향해 어머니를 부르며 통곡하였다. 자신이 대역죄인 황사영의 아들이라는 것을 숨기고 당장 제주도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절해고도에 숨어 사는 처지에서 고인이 되신 어머니의 명예를 위해서 차마 그리할 수는 없었다. 대왕대비 김씨의 정적들을 향한 복수극으로 말미암아 모자의 눈물바다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끝-
_()_ 긴 글 읽어주신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본 소설을 쓰기 위해 완도에서 배를 타고 하추자도 신양항에 내려
황경한 님의 묘소를 들리고 제주에 도착하여 정난주 마리아 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행여 저의 졸작으로 두 분에게 누가 되지나 않을 지
걱정입니다. 본 글은 오로지 소설로만 읽어주세요.
저자 최재효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