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난주 마리아(3)

서울 할망

by 최재효







본 소설을 천국에 계신 정난주 마리아님께 바칩니다. - 저자 최재효













서울 할망




정난주 마리아는 하루도 아들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미는 제주도 서남부 지역인 대정현 서정리의 유지 김석구((金錫九)의 집에 배정되어 침모(針母)로 노비 생활을 시작하였다.



김석구는 유학을 공부한 학자풍의 사람으로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다.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어 춘궁기에 가난한 백성들에게도 선심을 베풀었다.



그미는 김석구의 두 아들에게 공부를 가르쳤다. 큰 공부는 서당에 나가서 배우지만 서당에서 가르치지 않는 예의범절에 관한 과목은 그미의 몫이었다.



김석구의 두 아들은 그미를 이모라고 부르며, 그미를 존경하였고, 그미는 그들을 친자식처럼 가르쳤다. 김석구의 두 아들은 황경한과 비슷한 또래여서 그미는 더욱 정성을 다해 훈육하였다.



노비 생활을 하면서도 그미는 조심스럽게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어려서부터 늘 서책을 가까이 한 탓에 그미는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김씨 가족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예로써 대하며, 성실하게 생활하여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주인 부부는 그미의 인품에 반해 그미에게 별채를 내주어 생활하도록 편의를 제공하였다.



그미의 신앙심은 주로 자기 내적인 발전과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지인들의 교화로 이어졌다.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원도라고 하지만 아직도 신유박해의 두려움이 사람들 뇌리에 남아 있어 있었다. 그미가 노비로 생활하면서 알게 된 사람은 같은 처지의 노비와 평범한 섬 주민들이 고작이었다.



대정현의 현감이나 아전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늘 그미의 주변에 아른 거렸다. 지아비의 반역으로 인하여 죄인이 되어 하루아침에 양반에서 노비로 신분이 강등되어 귀양 온 신분인 만큼 조심해야 했다. 침착하고 차분한 성격의 그미는 대놓고 하느님을 칭송하거나, 모임을 하지 않고 생활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주변인들이 천주교를 이해하도록 교화하였다.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을까. 많은 사람이 모이다 보면 자연 관아의 기찰(譏察)에 걸려들게 마련이다. 그미는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하느님께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 때 역시 하느님을 호명하였다. 그미에게 일어나는 사소한 일부터 일상사까지 그미는 항상 하느님과 함께한다는 자세로 신앙심을 굳혀나갔다.



그러나 그미 역시 한 아이의 어머니였다. 그미가 하느님께 기도할 때마다 아들 경한을 생각하였다. 당장 섬을 탈출하여 아들을 두고 온 그 섬으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주에서 뭍으로 또는 다른 섬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지역을 관할하는 수령의 허가가 있어야 가능했다.



당시 제주에는 전국에서 몰려드는 불량한 기질의 유랑민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전국에 추쇄령(推刷令)을 내려 도망간 노비나 하층민들을 잡아 고향으로 돌려보내도록 하였으며, 이들을 잡기 위한 전문 추쇄꾼들도 생겨났다.



설날이나 추석 또는 경한의 생일이 되면 그미는 바닷가로 나가 북쪽을 바라보며, 아들 경한을 그리워하였다. 아무리 바다를 바라보며 아들의 이름을 외쳐도 돌아오는 것은 파도 소리뿐이었다. 강보에 싸인 어린 아들을 갯바위 틈에 두고 온 것이 그미의 흉중에 커다란 응어리로 남아 있었다.



경한아, 내 아들 경한아! 너도 이 어미를 생각하고 있느냐. 우리 모자가 저 바다를 가운데 두고 생이별을 하였구나. 지금쯤 어엿한 청년이 되어 있겠구나. 혹여 이 어미를 원망하거나 밤낮으로 울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내가 죽기 전에는 꼭 너를 만나볼 것이야. 저 갈매기도 나의 이 아픔을 알고 있을 것이다.



네가 있는 추자도에도 저 갈매기들이 날고 있겠지. 갈매기를 보거든 이 어미를 보듯 대하거라. 또한,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이 어미는 달님에게 너를 보호해 달라고 빌고 있으니, 달님을 보거든 이 어미를 대하듯 하거라.



“서울 할망, 또 아들 생각했나 봅니다. 아들이 있는 곳이 추자도라 했지요. 벌써 이십 년이 훨씬 지났으니, 아드님도 어엿한 청년이 되어 있겠네요. 어쩌면 장가를 들어 자식을 봤을 수도 있을 테고요. 저 달님이 서울 아지망 소식을 아들에게 전해 주었을 겁니다. 너무 상심하지 마셔요.”



그미가 보름달을 넋을 빼고 바라보고 있는데 같은 집에서 허드렛일을 거들며, 함께 사는 해남댁이 다가와 말을 붙였다. 그녀는 시가에서 쫓겨나 오갈 데 없는 처지에서 제주로 흘러들어와 유리걸식하고 있었다. 그미로부터 해남댁의 딱한 사정을 들은 마음씨 좋은 집주인이 그녀를 거두었다.



“해남댁이 내 마음을 잘 아는구려. 고향에 아들이 있다면서요?”



“그 녀석은 즈아부지만 알지 제 애미는 안중에도 없답니다. 즈아부지가 새 마누라를 얻었으니 새엄마하고 살겠지요. 바보 같은 자식.”

해남댁이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해남댁, 전 남편이나 아들을 원망하지 말아요. 사람 인생의 행로는 전적으로 본인의 행동에 따라 정해지는 겁니다.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남의 탓만 하게 되어 있답니다.



내가 노비가 되든 또는 장상(將相)이 되든, 그 모든 결과물은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랍니다. 하느님은 매사에 공평하세요. 치우친 데가 있다면 세상에 평지풍파가 일겠지요. 지금 내 행과 불행은 내일 반대로 바뀔 수도 있는 거랍니다.”



“잘 알겠어요. 그런데, 요즘 할망이 많이 안 좋아 보여요. 얼굴도 아주 핼쑥해졌고 드시는 것도 시원찮아 보여요.”

해남댁이 그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벌써 그미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눈치를 채고 있는 해남댁이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오랜 한이 사무치면 병이 되나 봅니다. 낮에 주인께서 약재를 주시어 한 첩 달여 마셨으니 차도가 좀 있겠지요.”



애써 해남댁의 시선을 피하는 그미의 눈시울이 가늘게 요동쳤다. 그미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은 채 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기도하는 그미의 모습이 얼마나 진지하고 경건해 보이는지, 해남댁도 옆에 서서 달을 올려다보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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