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을 천국에 계신 정난주 마리아님께 바칩니다. - 저자 최재효
추자도 애가(哀歌)
한양을 떠난 지 이십 여일 만에 남해 바닷가 전라도 강진(康津)에서 그미는 제주로 향하는 작은 관선(官船)을 탔다. 초겨울 검푸른 새벽 바다를 넘실거리는 파도는 모자(母子)의 앞날을 예고하고 있었다. 열 명 정도 탈 수 있는 소형 관선이 중간 지점인 추자도(楸子島)쯤에 이르자 바람이 더욱 세차게 불기 시작하면서 배가 난파될 위험에 처했다.
“저 바닷가에 배를 대시오. 바람이 잠잠해지면 출발합시다.”
유배인의 감시를 맡은 호송관은 선임 사공에게 이름도 모르는 장소에 배를 대라고 명했다. 관선이 섬 가장 자리에 정박하였다. 섬은 바다와 달리 바람이 심하지 않았다. 호송관은 잠시 볼 일을 보고 오겠다며 어부 마을로 향했다. 그는 어촌을 잘 아는 모양이었다.
‘아들을 나처럼 평생 노비로 살게 할 수는 없어. 호송관도 없으니 마침 잘되었어. 저기 바닷가에 어촌이 있는 것 같으니 어부들에게 맡겨야겠어. 그러나 어떻게 이 아이를 맡긴단 말인가. 어부들이 받아나 줄까. 천주님이시어, 이 아이가 자유인이 되어 주님만을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미는 간절히 기도하였다.
“아저씨, 저기 바위에 앉아 아기 젖 좀 먹이고 올게요.”
“조심해요. 바위가 미끄러우니.”
그미는 사공들을 이끄는 선임 사공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들을 안고 바닷가에 있는 갯바위로 올라갔다. 어미와의 이별을 눈치를 챘는지 아기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미는 한양을 떠나올 때 만약을 위해서 아기 옷깃 안에 부모의 이름과 세례명, 직함 그리고 아기 이름과 생년월일 등 인적 사항을 상세히 적어 놓았다.
그미는 울며 보채는 아기를 달래고 찬바람을 맞으며 젖을 물렸다. 주변을 살펴보니 한 마장쯤에 어부의 집으로 보이는 민가 두 채가 시야에 들어왔다. 민가를 찾아가 아기를 맡길 시간이 없었다. 만약 민가에서 아기 맡기를 거절하면 일이 꼬일 수 있었다. 아기가 젖을 다 먹고 잠이 들자 그미는 아기 손에 묵주를 감고 강보에 둘둘 말아서 어부의 집과 가까운 바위 위에 아기를 올려놓고 배를 향해 돌아섰다.
“천주님, 아기를 살펴주세요. 아기가 비록 제 몸을 빌려 세상에 태어났지만, 당신의 자식이나 같습니다. 아기가 이 섬 어부의 손에 맡겨지길 빕니다.
경한아, 이 어미를 용서해다오. 젖먹이인 너를 두고 떠나는 이 어미의 가슴은 갈가리 찢어지고 있단다. 부디 아프지 말고 질경이처럼 자라서 창원(昌原) 황씨 가문을 일으켜야 한다.”
정난주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돌아보다가 다시 아기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아들을 귀양지에 데리고 가면 그 아이는 평생 노비로 인생을 살아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미는 소리 없이 눈물을 뿌리며 돌아섰다. 겨울 하늘은 파랗고 하얀 구름이 남쪽으로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뭐라고, 아기를 바위에 떨어뜨려 죽어서 물속에 버렸다고?”
“네. 나으리, 용서하십시오.”
그미는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그미가 대성통곡하자 호송관과 사공들은 한동안 말없이 뱃머리에 앉아서 먼바다만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이를 어쩐다. 배를 타고 가다 아기가 병으로 죽었다고 보고를 올려야 하겠구먼.”
그미를 호송하던 호송관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대충 짐작하고 그미에게 더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한양에서 유배지로 향할 때부터 그미는 호송관을 친정아버지처럼 따르며 진심으로 그를 존경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미가 한양을 떠날 때 친정과 친지들이 돈과 패물을 마련하여 그미에게 건넸다.
일반인이 유배를 갈 경우 현지에 도착할 때까지 일체의 비용은 유배인이 대야 했다. 심지어는 호송하는 의금부나 포청(捕廳) 관리의 비용도 대야 하는 예도 있었다. 그미는 패물 일부를 호송관에게 주며, 제주에 도착할 때까지 안전을 부탁하였다.
유배 행렬은 한양에서 출발하여 남으로 향하면서 밤이면 주로 객사(客舍)에서 묵었는데, 이때 그미는 호송관에게 저녁 식사 때면 사비로 술과 좋은 안주를 주문하여 호송관의 환심을 샀다.
호송관은 그미가 남편으로 인하여 양반의 여식에서 하루아침에 노비로 신분이 격하되고 억울하게 유배 가게 된 내막을 잘 알고 있었다. 다행히 호송관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는 어찌 된 상황인지 알고 있으면서 그냥 덮어 버리기로 하였다. 마침 바람이 잠잠하여 다시 배를 띄울 수 있었다.
“나리, 빨리 출발해야 해 떨어지기 전에 제주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요. 해가 지면 바람이 다시 불어 뱃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한 젊은 사공이 호송관에게 빨리 떠나자고 채근했다.
“아저씨, 저 섬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그미는 선임 사공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기는 추자도야. 추자도는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로 나뉘는데 댁이 아기를 수장한 곳이 하추자도라는 섬이지. 그 마을에 어가(漁家)가 서너 채 보이던데 아마 내 짐작으로는 그 마을이 예초리(禮草里)가 맞을 거야. 추자도에도 한양이나 다른 외지에서 죄를 짓고 귀양 온 귀양다리들이 더러 있다고 들었어.”
선임 사공은 묻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하추자도 예초리. 누군가 경한이를 빨리 발견해야 할 텐데. 날씨가 추워 장시간 바위에 있으면 위험해. 아! 천주님, 경한이가 심성 좋은 어부님의 손에 들도록 도와주세요.’
그미는 속으로 수없이 천주님을 부르며 눈물로 간절히 기도했다.
선임 사공도 그미의 의도를 눈치채고 호송관에게 길을 재촉하였다. 만약 호송관의 마음이 변해 아기를 찾겠다고 나서면 일이 복잡하게 전개될 수 있었다. 그미는 어서 배가 떠나가기를 가슴을 졸이며 기다렸다.
‘아가야. 이 못난 어미를 용서하거라. 너의 운명이 어부님의 손에 달렸구나. 그분이 어미를 대신해서 너를 보살펴 주실 것이다. 우리 모자가 운이 좋으면 먼 훗날 상봉을 할 수 있겠지만, 혹여 만나지 못하더라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 아들 경한아, 잘 자라다오.’
“선임 사공, 돛을 최대한 높이고 빨리 노를 젓도록 하시게.”
호송관이 소리쳤다.
그미는 아기가 있는 바위를 향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속으로 아기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사공들이 노랫가락에 맞춰 제주를 향해 노를 저었다. 다행히 풍랑이 잦아들어 추자도에서 제주까지 가는 바닷길은 순탄하였다.
“여보, 저기 바닷가 황새바위 쪽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서 가보니 이 아이가 강보에 싸여 있었어요.”
그미의 바람대로 섬 주민이 아기를 발견하였다. 하추자도 예초리에 거주하며, 대대로 어업에 종사하던 오상선은 아기의 옷깃 안에 적힌 인적 사항을 보고 아기가 섬에 남겨진 자초지종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낮에 관선 한 척이 바닷가에 잠시 정박하다 떠나더니만.’
오씨는 아기와의 만남을 하늘이 맺어준 인연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낳은 자식처럼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그에게는 이미 장성한 자식들이 있었지만, 아기를 내다 버리거나 관아에 신고하지 않았다.
“이 아이는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귀한 선물이오. 혹여 누가 물으면 뭍에 사는 친척의 아인데 아기 엄마가 병으로 죽어 우리가 대신 키우고 있다고 둘러대야 하오. 아기는 본관이 창원 황씨로 이름은 경한이지만 우리는 이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만 업동이라고 부릅시다.”
“업동이? 거 이름 한번 좋구랴.”
오상선의 처도 남편의 뜻을 받들기로 했다. 오씨 부부는 정성을 다해 아기를 키우기로 했다.
오상선이 아기의 이름을 바꾸어 부르기로 한 것은 만약 관리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올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종종 전라도나 제주에서 죄를 짓고 추자도나 횡간도(橫看島)로 도망하는 죄인들이 있어 관아에서 그들을 추포하기 위하여 가택수색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