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인의 입에서‘황제’라는 말이 나오자, 눈치 빠른 진관과 황보 유의는 즉시 대량원군 앞에 고개를 숙였다. 대량원군은 황제가 정식으로 황위를 양위하지는 않았지만, 곧 황제가 될 귀하신 몸이었다.
[폐하, 소신 강조가 폐하의 명을 받고 군사를 이끌고 왔습니다. 소신이 황성을 장악한 뒤에 황권을 위협하는 김치양 일당을 척살할 것입니다. 거사 중에 옥체에 흠이 갈까 저어하오니 일단 귀법사(歸法寺)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역도들이 평정되는 대로 소신이 모시러 가겠습니다.]
강조의 서신을 받은 황제는 채충순과 유충정(劉忠正) 그리고 내관 등을 데리고 귀법사가 아닌 법왕사(法王寺)로 피신했다. 강조는 곧장 궁궐로 달려가 순식간에 궁성을 장악하였다. 김치양 일파가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궁성과 대궐이 강조의 손에 넘어간 것이었다.
“김치양과 천추태후를 잡아라.”
“김은도 체포하라.”
강조의 군사들은 궁궐에 숨어 있던 천추태후와 김치양 그리고 그들의 아들을 체포했다. 또한, 김치양 일파와 유행간 등도 붙잡혔다. 강조는 법왕사로 피신한 황제를 궁궐로 모셔 오게 했다. 궁성에서는 강조가 황제나 다름없었다.
“모든 조정 신료들은 지금 즉시 입궐하시오.”
만조백관이 대전에 입조하였다. 서산으로 해가 막 넘어갈 무렵이었다. 길고 숨 막히는 하루가 막을 내리고 있었다. 대전에 수백 명의 신료가 늘어서 있었지만,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신료들 뒤로 창칼로 무장한 무관들과 군사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서 있었다. 강조의 명령만 떨어지면 모두가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초긴장의 상황이었다.
잠시 후 황제가 내관의 부축을 받으며 대전으로 들었고 대량원군과 강조가 뒤따라 들어왔다. 황제가 금상에 앉고 그 옆에 대량원군이 앉았다. 그런데 대량원군도 황제와 같은 곤룡포를 입고 관모(官帽)를 쓰고 있었다. 황제 앞에 강조가 섰는데 그의 손에는 황제의 성지(聖旨)가 들려 있었다. 강조가 만조백관들을 두루 살펴보고 나서 성지를 읽었다.
[짐은 오랫동안 병석에 있던 관계로 정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였다. 또한, 짐이 후사가 없이 날로 쇠약해지자 불순한 세력들이 황위를 노리고 반역을 꾀하였다. 다행히 서북면 도순검사 강조가 입경하여 조기에 반역도당들을 제압하였다. 이에 짐은 태조 황제의 손자인 대량원군에게 황위를 양위코자 하니 백관들은 지극 정성으로 새 황제를 보필할지어다. 아울러 반역을 도모한 불순한 무리에 관한 처결은 도순검사에게 일임한다.]
신료들은 현재 돌아가고 있는 정국을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전격적으로 양위가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황제는 강조의 강압으로 폐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천추태후와 폐위된 황제 왕송은 양국공(讓國公)으로 격하되어 유폐되었다.
강조는 김치양과 그의 아들 김은 그리고 참소를 일삼던 유행간 등 일곱 명을 참수하고, 그 여당과 천추태후의 친족 서른 명은 원도(遠島)로 귀양 보냈다. 강조는 중대사(中臺使)에 오르고 채충순은 직중대(直中臺)에 제수되었다.
며칠 후 강조는 전 황제 왕송과 천추태후를 충주(忠州)로 추방했다. 강조는 천추태후와 왕송이 모반을 획책할지도 모른다는 부하들의 권유에 불안을 느껴 군사를 보냈다. 모자가 *적성에 이르렀을 때 왕송은 군사들에 의해 살해되었고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천추태후는 황주(黃州)로 도망쳤다.
조정에서는 전 황제 왕송에게 목종(穆宗)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황제가 된 왕순은 신혈사에 *진관사(津寬寺)라는 편액을 내리고 불사(佛事)를 대대적으로 일으키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