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승은 정말로 원군께서 어디로 가셨는지 알지 못합니다. 소승이 산속으로 들어가 원군을 찾아보겠습니다.”
황보 유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진관은 황보 유의를 처음 대하는지라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며칠 전 새벽에는 자객이 들었고 다음 날에는 천추태후가 보낸 김상궁이 다녀간 상태라 진관의 의심은 당연하였다.
그는 잔뜩 긴장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황제의 특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관도 밖의 소식을 수시로 듣고 있는 터라 조만간 황제가 특사를 보낼 수도 있으리라 추측하고 있었다. 진관은 황보유의 말을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
“이보시오 대사, 우리는 황제 폐하께서 대량원군의 안전을 위해 직접 모셔 오라는 명을 받고 왔단 말이오. 어서 대량원군께 안내하시오,”
꺽지게 생긴 문연이 소리쳤으나 진관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문낭장, 기다려 봅시다. 날이 어두워지면 돌아오시겠지요.”
황보유의 일행은 대량원군을 기다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성질 급한 문연이 함께 온 군관 이성언 등과 대량원군을 찾아보겠다며 군사들을 이끌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진관은 황보유의 일행이 정말로 황제의 명을 받고 대량원군을 모시러 온 것인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그렇다고 법당 아래 숨어 있는 대량원군을 데리고 나와 대면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진관이 경보에게 귓속말로 무엇인가 지시하였다.
“황제 폐하께서 나에게 군사를 이끌고 개경으로 와서 도성을 수비하고 황실을 지키라고 하셨는데 도성에 무슨 변고라도 난 게요?”
강조가 황제의 밀서를 가지고 온 전령에게 물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천추태후와 김치양 일당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내가 내일 군사를 이끌고 개경으로 갈 테니, 그대는 속히 개경으로 돌아가 폐하께 그리 아뢰시오.”
강조도 김치양과 천추태후가 대량원군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강조는 병약한 황제가 승하하면 대량원군이 보위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강조는 그들이 대량원군을 죽이려고 자객을 보내고 김상궁 편에 독이 든 다과를 전달한 사실 등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강조는 즉시 참모들을 불러 황제가 보낸 밀지(密旨)의 내용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황보 유의는 대량원군을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황보유의 일행에 대한 의구심을 풀지 않은 진관은 계속해서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진관은 경보를 통해 법당 수미단 아래 은거하고 있는 대량원군에게 황보유의가 왔음을 전하고 대량원군의 의향을 알아보라고 했다. 대량원군은 황보 유의는 황제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진관을 제외하고 대량원군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천추태후에 의해 머리를 깎이고 강제로 출가한 뒤로 황궁의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었다.
대량원군은 황보유의가 그사이에 김치양과 천추태후의 사람이 되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대량원군을 찾아 나선 문연 일행이 군사들과 아무 소득 없이 신혈암으로 돌아왔다. 황보 유의는 일단 궁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대사님, 대량원군은 장차 고려국을 이끌어 가실 천주(天柱) 같은 분이시오. 황명을 받고 오늘 중으로 개경 궁성으로 모시려고 했으나 이곳에 아니 계시니 참으로 난감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일단 황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대사님께서 원군이 돌아오시면 잘 보살펴 주시오. 지금 원군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많습니다. 나는 대사님만 믿고 돌아갑니다.”
“원군께서는 그리 쉽게 해를 당하실 분이 아닙니다.”
황제는 밤늦게 빈손으로 돌아온 황보유의 일행을 보고 크게 낙심하였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유행간을 통해 황제가 신혈사에 황보유의 등을 보냈다가 그냥 돌아온 사실을 알고 심복인 백가와 천가를 황제가 보낸 밀사로 가장하여 아침 일찍 신혈암으로 급파했다. 황보유의 일행이 돌아가고 다음 날 김치양의 두 심복이 신혈암으로 찾아왔다. 그들 역시 대량원군을 모시고 황궁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진관을 쥐 잡듯 채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