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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리 Feb 27. 2023

 일의 기쁨과 슬픔

-젊은 소설의 향기를 맡다-

 장류진 소설에는 이 시대를 통과하는

다양한 젊은이들이 살고 있다.


그들의 한숨과 눈물에 같이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유는 우리 딸의 모습과 아들의 번민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겪었던 현대 직장인의 치열한 삶,

일의 기쁨과 슬픔을 젊은 작가의 눈으로 보며,

내가 지나왔던 시대와 많이도 다른 현실을 깊게 느낀다.


동시대 시간의 거리를 지나면서도 나이 든 세대가 알 수 없었던, 젊은 그들의 살아가는 세상을 엿보게 한 소설이랄까.


장류진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는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각 단편마다 이 삼 십 대의 주인공들이 당면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살아 내는지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잘 살겠습니다’에 등장하는 회사원‘나’는

같은 입사 동기인 빛나 언니에 대한 생각으로 글을 시작한다. 두 사람 모두 결혼을 준비하며, 주는 만큼 받는 청첩문화에 대해 너무나도 둔감한 빛나 언니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요즘 젊은이들의 정확한 계산의 교환논리를 리얼하게 보여준다.


‘나’와 입사동기로 만나 결혼을 하게 된

남편의 연봉은 정확히 1030만 원이나 많았다.


대학 일 학년 때부터 철저하게 준비한 스은 여자라는 이유로 백오피스로 발령이 났고 동기로 시작한 남편의 연봉차이는 두 사람 다 할 말을 잊게 한다.


치열하게 공부했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젊은 직장여성의 질문이 소설을 통해 던져진다.

 

책 제목이기도 한 ‘일의 기쁨과 슬픔’은

판교 테크노밸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스타트업 회사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수평적 업무환경 조성을 위한 영어이름 사용하기, 선 채로 짧은 시간 동안 진행하는 회의방식,

스크럼 등.


새로운 회사소설의 면모를 들여다보게 한다. 어쩌면 영악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젊은이들의 분명한 선 긋기, 자기 영역과 타인의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하며 스스로 자신을 향한 수고의 보상도 기꺼이 챙길 줄 아는 젊은 사고의

산뜻함이 묻어 있다.


한 여름 폭염 속의 출근길,

뜨거운 아메리카노 2000원, 아이스아메리카노 4500원을 비교하며 마실까 말까 망설이는

‘백 한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의 주인공은 인턴,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취업한 정규직의 첫 출근이다.


연봉 금액과 수없이 되뇌는 지출항목,

월세 50만 원, 관리비 7만 원, 공과금 10만 원 등...

나열되는 숫자들에 왠지 즐거움이 배어있는 것은 정규직 첫 출근의 여유 때문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백 번을 넘게 써야 했던 이력서,

이제 정규직이니까 많이 올랐다고 소개하는 연봉은 2666만 원, 꼼꼼하게 적어가며 한 달 살림을 계획한다.


어릴 적부터 다큐멘터리 감독의 꿈을 키운 주인공의 ‘탐페레 공항’은 졸업학기를 앞두고 해외연수대신 워킹 홀리데이를 선택한 평범한 젊은이다.


취업시장에서 평가되는 자신의 현주소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는 학자금 대출 때문에 워홀을 결정하고 우연히 탐페레 공항에서 만난 핀란드 노인과 자신의 풋풋한 꿈을 나누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병중인 그녀의 현실은

4대 보험과 안정적인 금액의 연봉을 필요로 한다.


서랍 속에서 오래전 핀란드 노인이 찍어준

사진을 보며 기어이 눈물을 쏟는 대목은, 평범한 일상에 묻힌 청년들의 부유하는 꿈이 산산이 부서지는 현실을 느끼게 한다.


장류진 소설 속 젊은이들은 우리 집에도

아파트 옆 동에도, 사거리에 나가봐도 다양한 표정으로 존재한다.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기도 하고,

깊은 슬픔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하며

그들의 청춘의 시간을 채우고 있다.


학령기를 마치며 준비했던 각자의 능력치를

가지고 사회에 내딛는 첫 발걸음이 녹록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은 급변하는 시대에 자신만의

방법으로 적응해 나가며 그들만의 세상을 펼치고 있음을 이 소설들을 통해 보여 준다.


가파르고 숨 가쁜 세월을 지낸 기성세대의 그것과는 또 다른 빛깔의 기쁨과 슬픔이 이 젊은이들의 세계에 촉촉하게 배어있는 것을.


오랜 기간 한국소설이 우리에게 던졌던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인생의 질문은 이 소설에서는 찾을 수 없다.


장류진 작가는 변화의 예측이 어려운 이 시대 젊은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우리 이렇게 살고 있어요’라며 젊은 세대의 삶을 코멘트하고 있다.


산뜻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적 코멘트에 이들과 다른 세대인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처음 맡는 이 젊은 소설의 향내를 눈을 감고 깊게 음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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