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태어난 그날이 아니라...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기억은 내 세 번째 생일을 앞둔 어느 가을밤이다. 부모님께 들은 말이 내 기억으로 자리 잡았는지, 온전한 내 기억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어두운 밤에 나는 집안 어딘가에 혼자 있었고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는 모두 할머니 방에 있었고 기다리다 심심해진 나는 그 방에 들어가 봤다. 나를 보자마자 할머니는 얼른 나가라고 하셨다. 다시 나가 혼자 있었는데 나중에 무슨 소리가 들렸고 동생이 태어났다.
동생이 태어나자 나는 질투라는 감정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과 할머니 모두 동생만 예뻐하는 것 같았다. 특히 아버지께서 그전보다 더 차갑게 대하시는 것 같아 거리감을 느꼈다. 내가 힘들어하자 어머니께서는 내가 기억 못 하는 갓난아기 시절을 말해주시면서 너도 그렇게 사랑받았었다며 나를 다독이셨다. 어린 나에게는 당연히 별 소용없었다. 시간이 흘러 동생이 걸아다니게 되자 동생은 질투의 대상에서 귀찮은 존재가 되었다. 동네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고 싶은데 말도 제대로 못 해 “이야”라고 날 부르던 동생이 자꾸 따라다니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동생은 말이 늦게 트여 만 4세쯤이 되어서야 제대로 말을 했다.)
일곱 살 쯤의 어느 날 나는 귀찮은 동생을 따돌리고 혼자 집 밖으로 나가려 했다.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동생을 따돌리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집안을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집은 1층짜리 한옥이었는데 내가 집을 한 바퀴 또는 두 바퀴 정도 돌면서 거리를 넓히고 나면 동생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동생이 당황한 사이 나는 대문을 얼른 닫고 밖의 친구들에게 달려가곤 했다. 내가 그렇게 대문을 닫을 때 동생의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그날도 똑같은 수법을 쓰려했지만 말도 제대로 못 하던 동생이 눈치 빠르게 따라붙어 떼어내는데 실패하고 어쩔 수 없이 동생과 함께 대문 밖을 나섰다.
그날 우리 무리는 여러 놀이 끝에 마지막으로 동네 뒷산으로 향했다. 놀이터도 마땅치 않았던 그 시절 동네를 여기저기 다니다 해 질 녘쯤 동산에 올라가곤 했다. 붉은색의 햇빛이 비치는 동네의 지붕을 바라보는 것은 어린 나에게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동산에 올라 별 시답잖은 대화들과 놀이를 하고 나서 다시 내려왔다. 좁은 산길을 따라 걷느라 일행은 한 줄로 걸었고 발걸음이 느린 동생의 손을 잡고 있던 나는 일행의 맨 끝에 따라가게 되었다. 길어진 산 그림자에 주위는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어느 묘지 앞을 지나게 되었다.
앞서 가던 녀석들 중 한 명이 “귀신이다!” 하고 소리쳤다. 뒤따라 가던 아이들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환호성과 비명을 동시에 지르며 서둘러 산을 뛰어 내려갔다. 나도 얼른 따라 내려가고 싶었지만 동생이 내 손을 잡고 있었다. 동생의 작고 유난히 흰 손이 내 손을 꼭 움켜쥐고 있었고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다시 앞을 보니 친구들은 모두 시야에서 사라졌고 어둑해지는 산길은 조용하기만 했다. 몇 번이고 다녀 익숙한 길이었지만 적막해진 산기슭은 낯설게 보였고, 내가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는지 확신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동생에게 자신 있는 표정으로 “형이 내려가는 길 아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다. 동생은 울지 않았지만 내 손을 더 힘주어 잡았다. 갈림길이 나오면 나는 망설였고 어두운 길을 지날 때는 겁도 났다. 하지만 꽉 잡은 동생의 손을 의식했고 가끔 동생을 쳐다보며 미소도 지었던 것 같다.
마침내 익숙한 동네 파출소 담장이 보이자 크게 안심이 되었고 동생을 바라보며 “봐! 형이 다 알지?”라고 말했던 것 같다. 말도 제대로 못 하던 동생은 크게 미소 지었다.
난 그날 형이 되었다.
그 뒤로도 많이 다퉜고 (사실 내가 형이고 덩치가 더 컸기 때문에 다투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서로 데면데면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초저녁의 느낌은 내 가슴속에 항상 남아있었다. 정작 실질적인 도움을 준 적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엔 언제나 '어린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형이 된 순간은 내 동생이 태어난 날이 아니라 동생에게 의지할 만한 사람이 된 순간이었다. 가까운 시일에 동생에게 전화해 혹시 그날의 기억이 나는지 물어봐야겠다. 이제는 말을 아주 잘하고 흰머리도 듬성듬성 난 학부모는 아마 기억을 못 할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