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진단받았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말해야 한다.
나에게 가장 큰 숙제가 남았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말해야 한다. 암 진단을 받고도 한 달 동안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를 했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오면 일한다고 바쁜 척을 했고 문자가 오면 저녁 준비하느라 못 봤다고 했다. 대화를 이어나가다 보면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렇게 한 달을 버티고 버텼다. 그러고 나서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시간이 왔다. 곧 머리가 다 빠져버릴 것이기 때문에..
모든 부모들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엄마는 자식사랑이 각별했다. 결혼하기 전 26년 동안 나는 아침밥을 굶어본 기억이 없다. 아침식사를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마음이 조급해진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그래서인지 나의 어린 시절에는 늘 아침이 되면 압력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나의 고등학교 학창 시절에는 도시락을 점심과 저녁 두 개씩 싸서 다녔는데 나의 도시락은 늘 다양한 반찬들로 인기였다. 따뜻한 엄마 밥으로 자라온 나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늘 성실했다. 반에 한 두 명쯤은 있는 착한 얼굴의 모범생이었다. 초등 중등 고등까지 모두 개근상을 받았다. 당연히 서울대학교 입학은 못했지만 서울대를 갈 만큼 열심히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했고 대학에 입학해서도 그 성실함은 계속 유지가 되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친구들에게 쓴소리 잔소리도 도맡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헛웃음이 난다. 늘 모범생이고 할 일을 알아서 하던 나는 모든 세상의 딸들이 그런 것처럼 엄마에겐 귀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눈앞이 캄캄했다. 아니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는지 모든 것이 원망스러운 순간이 또다시 왔다. 신랑이 일찍 퇴근한 어느 날 저녁 아이들을 신랑에게 맡기고 홀로 지하철을 타고 엄마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 입구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전화드려보니 외출하셨다가 곧 들어온다고 하시길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집 앞에서 기다렸다. 저쪽에서 엄마가 걸어오고 있었다. 내게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마음이 점점 무너져 내렸다. 한창 바쁜 저녁 시간 혼자 친정집에 온 딸을 본 엄마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싸웠구나?
엄마 집에 가기 전 그때 당시 내 마음을 커뮤니티에 이렇게 끄적였다.
엄마.. 사랑하는 우리 엄마.
미안해 내가 얼마 전에 암 진단을 받았어.
금쪽같은 내 자식이라고
늘 홍삼에 꿀 넣어 타 주시고
탄 거 먹으면 몸에 안 좋다고
다 잘라내서 주시고
갈치 사서 늘 흰 살 떼어먹으라고 주시고
내게 한 번도 아침밥 빠트리지 않고 차려주셨는데..
엄마, 그동안 사실 입이 안 떨어져서 말을 못 했어.
엄마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나보다 더 많이 울고 힘들까 봐
이제 병원 가면 예전과는 다른
내 모습을 봐야 할 엄마께 미안해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
오늘 말하려고 해
엄마.. 내가 씩씩하게 한번 해볼게.
이제 오늘까지만 울고 그만 울 거야.
엄마 사랑해..
엄마 미안해..
엄마 앞에 조용히 앉아서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잠깐의 정적도 몇 분처럼 느껴졌다.
"엄마 내가 좀 아프데.."
나는 한 달 전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곧 항암치료가 시작될 거라고 말씀드렸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의 슬픈 눈빛을 보았다. 마음을 다잡고 왔지만 괜찮은 척해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아이처럼 울었다. 나는 다시 아이가 되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던가. 엄마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다. 나를 다독여주고 위로가 되어주셨다. 따뜻한 힘이 내게로 오는 것 같았다. 아마도 내가 엄마 집을 나서고 보이지 않을 때쯤 목놓아 우셨으리라... 집에 잘 도착했다고 전화드린 그때 엄마의 목소리에 눈물이 가득 담겼다. 고사리 같은 어린 마음에도 크면 꼭 효도해야지 그랬다. 세상에 나보다 더 불효를 하는 자식이 또 있을까...
엄마가 해주신 반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