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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음성 유방암

암환자가 되다.

by 하정

수요일에 결과가 나오기로 했는데 화요일 아침 전화가 울렸다. 저장해둔 병원 전화번호였다. 결과가 나왔으니 병원에 내원하라는 간호사의 안내전화였다.


그래.. 그럼 그렇지. 의사도 사람인데 멀쩡한 사람 암환자 만들어놓고 미안했나 보다.

얼른 병원에 가야겠다. 지난주 병원에 갔다 온 뒤로 내가 힘이 없어 보였던 걸까?

7살 둘째가 내게 한마디 하며 유치원으로 등원했다.

"엄마 아프지 마.."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진료실에 들어서고 환자용 의자에 앉았다. 말 한마디를 듣는 잠깐의 순간 동안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여의사 선생님은 옅은 미소를 띠며 내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악성입니다."

믿을 수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순간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 뒤로 여러 가지 말씀들을 하셨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어떤 이야기인지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기억에 남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얼른 대학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

어떤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눈물만 흘렀다. 병원을 나서는 순간 내게 문자 한 통이 왔다.

"OOO님 중증환자로 등록되었습니다."

난 병원문을 들어설 때와 나설 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병원문을 나서니 나는 암환자가 되었다.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옮겨 진료를 시작했다. CT와 MRI 그리고 뼈스캔 등의 정밀검사를 끝내고 검사 결과를 듣는 날이었다. 두 분의 의사 선생님께서 진료를 봐주셨다. 백발의 선생님께서 들어오시자 젊은 의사 선생님께서 보고를 하셨다.

"트리플 네거티브입니다."

그 순간 백발의 선생님 눈빛이 흔들렸다. 찰나의 순간 절망을 느꼈다. 선생님은 젊은 나의 얼굴과 모니터를 번갈아 보셨다. 말씀을 다 해주시지 않아도 다 알 것 같았다. 진료실 안의 무거운 공기가 나를 짓눌렀다. 나는 유방암 중에서 가장 악성도가 높은 삼중음성 유방암 3기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좌절했다.


의사 선생님들께서 다시 분주해지셨다.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최대한 빨리 항암을 할 수 있도록 날짜를 확인하셨다. 혹시 빨리 들어갈 수 있는 스케줄은 없는지 전화를 걸어 여러 번 확인하셨다. 세상에 혼자 내버려진 기분이었다. 암흑 속에 갇혀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암이면 다 같은 암이 아니던가? 유방암에는 호르몬 관련성 유무와 허투 유무로 인해 총 4가지로 나뉜다. 호르몬성 유방암은 호르몬 치료가 이루어지고 허투는 신약이 개발되어 있다고 한다. 삼중음성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암 종류이고 그래서 치료가 까다로운 암이었다. 알면 알수록 겁이 나고 두려웠다. 그래서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계속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든 시련이 왔는지 나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세상 모든 것에 화가 났다. 무엇보다 열심히 살아온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고 일한다고 정신없어 나를 돌보지 않은 나의 바보스러움에 잠시도 견디기 힘들 만큼 미칠 것 같았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내 마음속에는 나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미로 속을 걸어 나가야 한다. 벼랑 끝에서 한발 더 나가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휘감았다. 하루 24시간 중에 24시간을 울었다. 잠자는 꿈속에서 마저도 계속 울었다. 눈을 뜨고 있는 순간과 감고 있는 순간.. 나의 모든 순간 눈물이 났다. 나는 그랬다.




저녁이 되면 아이들에게 저녁밥을 주고 집 밖으로 나왔다.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던 밤을 늘 놀이터에서 보냈다. 울기 위해서였다. 울면서 걸었다. 아무도 나를 알아볼 수 없게 패딩을 입고 모자를 쓰고 목도리로 얼굴을 가리고 무작정 걸었다. 울며 걷고 있는데 내게 남겨진 가장 큰 숙제가 떠올랐다. 항암보다 수술보다 훨씬 더 큰 숙제... 엄마에게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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