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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해

2019년

by 하정

졸업을 하고 대구의 동성로에 있는 유명 Y 성인어학원에 취업을 했다. 나는 학원강사로 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같은 과를 졸업한 친구들은 교육대학원에 진학하여 임용고시의 꿈을 키우거나 어학연수를 많이 떠났다. 이미 고등학교 때 나는 서울대에 진학 못했으므로 공부에 소질이 없음을 확인했고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아래로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있는 집의 첫째인 나는 어학연수는 집안 형편상 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학원강사로의 취업은 그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다행이도 어학성적이 좋았고 성인어학원에서 바로 강의할 수 있었다. 대학시절 내내 아르바이트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학원강의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내 나이 스물 다섯이었는데 학생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일요일이 되면 잠이 오지 않았다. 수업에 대한 부담감과 새벽강의와 저녁강의 스케줄은 육체적으로도 참으로 힘들었다. 차라리 학원에가서 청소를 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적도 많았다. 스케줄을 조금 줄이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수업을 줄이면 학원 수익도 줄어들기 때문에 당연히 나는 짜여진 일정에 따라 강의했다.


강의를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나만의 강의실에 대한 꿈을 꾼다. 몇 년 전 나는 그 꿈을 이뤘다. 젊은 시절 대형어학원에서의 경험과 육아를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덕분에 충분히 나만의 강의실을 만드는데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작은 상가를 계약했고 강의실을 꾸몄다. 늘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나는 초등학생을 가르치다가 중학생 그러다가 고등학생들까지 가르치게 되었다. 2019년 학원은 학생들로 넘치고 새로 들어오고 싶은 아이들도 많았다. 꿈을 이뤘다. 어깨에 힘을 넣고 다녔다.


바쁘다보니 시간을 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신랑과 스케줄을 맞추어 여행을 가야하는데 나는 마음대로 휴가를 낼 수 없었고 신랑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결혼하고 해외여행을 가지 못했다. 그런데 그 해에는 무조건 여행을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그런 추진력이 생긴걸까? 아이들의 여권을 발급받고 여행사를 알아보았다. 올해는 무조건 해외여행을 가야한다고 우겼다. 꼭 안가면 안되는 것처럼. 여행지를 중국으로 정하고 신나는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여행을 가보니 그동안 얼마나 갇혀살았는지 알것 같았다. 좀 제대로 사는 것 같았다. 해외여행을 다녀오니 또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2019년에 공연이 보고 싶어졌다.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직접 듣고 싶어졌다. 그래서 콘서트 예매를 하고 지방에서 기차를 타고 홀로 서울로 공연을 보러갔다. 10년을 넘게 살면서 집과 일터 그리고 가끔 친구들 외에는 나가지 않던 내가 공연을 보고 싶다고 다니는 나를 보며 신랑은 좀 의아해했다. 좋아하는 연예인이라고는 고등학교 시절 듣던 푸른하늘이 전부였던 내가 나이 마흔이 되어 음악을 듣겠다고 기차를 탔다. 평소 안하던 일을 했다. 육아를 잠시 내려놓고 휴식시간을 가졌다. 홀로가는 기차여행은 꽤나 즐거웠다.


나만의 강의 공간을 가지게 되었고 학생들로 넘쳤다. 아이들과 해외여행을 처음으로 다녀왔다. 게다가 나는 바쁜 시간을 쪼개 좋아하는 공연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20년지기들과 꿈같은 여행도 다녀왔다. 2019년은 나에게 그런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 해 12월 암진단을 받았다. 2019년은 운수 좋은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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