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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뻤다.

나를 잃어버리다.

by 하정

대학시절 나의 별명은 영문과 인기녀였다. 여중, 여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는데 새내기가 되니 나를 좋아하는 녀석들이 꽤 있었다. 어느 날 하루는 같은 과 남학생이 좋아한다고 하기도 했고 어느 날은 동아리 선배가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기도 했다. 이런 나를 두고 친구들이 인기녀라 이름 붙여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당당하게 예뻤다고 글을 쓸 수 이유 중 하나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들이 직접 나를 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웃음) 언젠가 필자를 만나면 꼭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예쁜 것이 좋았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미용실에 가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고 깔끔한 옷을 좋아하기도 했다. 쇼핑도 즐거웠다.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워킹맘이었다. 일 년 365일 일터와 집 이외에는 가는 곳이거의 없었지만 단정한 모습은 나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이자 만족이었다.



일차 항암이 시작되고 14일이 지났을 무렵 병원에서 그 쯤 호중구 수치가 떨어지면서 열이 날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정해진 날짜에 피검사를 꼭 받아야 했다. (내가 맞는 항암제는 암세포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정상세포도 같이 파괴되어 우리 몸의 면역세포인 호중구 수치까지 같이 떨어졌다.) 아니다 다를까 14일쯤 되니까 열이 나기 시작했다. 겁이 났다. 출근한 신랑을 대신해 여동생과 택시를 타고 인근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에 접수를 하고 급히 검사를 받았다. 호중구 수치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하셨다. 병원에서 격리 입원 치료를 권하셨다.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입원한 김에 책을 좀 읽어보라는 친구였지만 사실 그때 나는 핸드폰을 손에 쥘 수 있는 여력조차 없었다. 입원 치료 5일 차 몸이 겨우겨우 회복되어갔다. 아침에 눈을 뜨니 어제보다는 좀 나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조금 괜찮아진 걸까? 몸을 일으켰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건 병원 로고가 가득 박힌 내 침대 위의 베개였다. 그 위에 무서울 만큼 머리카락이 빠져있었다. 숨이 턱 막혔다. 베개에 시선이 뺏겨 있는데 혈액종양내과 선생님이 나를 보러 오셨다.


"곧 쉐이빙을 하셔야 할 거예요."


퇴원을 하면 미용실에 가야겠다 마음먹었지만 그래도 쉐이빙을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아니할 수 없었다. 생사의 순간 머리 그게 뭐라고 나는 집착을 했다. 미용실에 못 간다고 고집을 부렸다. 머리카락이 없다니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매일 붓는 얼굴 때문에 집에 있는 거울들을 모조리 치워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민머리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샤워를 하면 개운해져 기분이 좀 나아질까? 겨우겨우 힘없는 몸을 이끌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머리를 감고 방에서 머리를 말리게 되면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떨어질 것 같아 오늘은 욕실에서 말려야겠다 생각했다. 콘센트에 드라이기를 꽂고 드라이기를 머리에 갖다 댄 순간 머리카락들이 흩날렸다. 흩날려진 머리카락이 그대로 습기 가득 찬 욕실 벽에 붙어버렸다. 그리고 엉킨 머리는 더 이상 풀리지 않았다. 욕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만 울고 싶었다. 얼마나 더 울어야 한단 말인가? 더 이상은 힘들었다.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이제 암환자이다.


암 투병을 시작하게 되면서 힘들었던 것을 꼽으라면 책 한 권을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중 하나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는 일이었다. 머리카락이 없어졌고 퉁퉁 부어버린 얼굴에 정돈된 가지런한 가발은 한없이 어색했다.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스무 살 대학시절 나는 누구보다 예뻤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예쁘지 않다. 나를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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