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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50입니다.

1차 항암을 시작하다.

by 하정


수서역에 내렸다. 다음 날이 명절이라 기차표를 못 구해 서울에서 숙박을 하기로 했다. 짐이 많았다. 택시를타고 송파구에 있는 암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내리니 처음 와 본 곳인데도 낯설지 않았다. 뉴스에서 자주보던 병원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아 내가 많이 아프구나. 그래서 이렇게 큰 병원에 왔구나.


암병동 주사실


1층에서 채혈을 하고 혈액종양내과로 향했다. 진료실 앞은 정말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렇게나 아픈 사람이 많단 말인가. 도착 확인을 하고 조용히 내 차례를기다렸다. 진료실 앞의 작은 전광판에는 대략 6명쯤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진료 중이신 분의 성함이 표시되고 이름의 중간 글자는 동그라미로 가려진 채로 아래 다섯 분 정도 이름이 보였다. 화면에 내 이름이 올라오길 기다렸다.


띵동. 000님 들어오세요. 진료실로 들어갔다. 환자용 의자에 앉았다. 나는 그 의자가 싫다. 종양내과 선생님은 간단한 촉진 후 내 암 타입에 관한 설명과 앞으로 항암 과정을 설명해주셨다. 3주 간격으로 총 8차까지의 항암 주사 후 수술이 진행된다. 항암으로 암이 줄어들 수도 있다. 그리고 아닐 수도 있다. 효과가 좋을수도 아닐수도 있다.


"50대 50입니다."


50프로구나. 내가 괜찮을 확률이 50프로구나. 나는 긍정의 여왕이었는데 그날로 그런 별명 따위는 버렸다.

항암 주사를 맞기 전에 처음이라 간호사를 만나 따로 교육을 받아야 했다.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과 응급상황 시 대처법 등을 보다 상세히 교육받았다. 정신없는 가운데 참 친절한 병원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처방전을 들고 주사를 맞기 전 먹을 약을 원내 약국에서 받아 곧바로 암병동 주사실로 향했다. 태어나서 처음 가본 암병동 주사실은 진료실 앞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간호사들은 분주했다. 접수하시는분께서 내 팔에 내 이름이 쓰인 팔찌를 채워주셨다.


띵동. 000님 들어오세요. 주사실에 들어가 간호사 앞에 앉았다. 아 이제 치료가 시작되는구나. 무서운 항암이 시작되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차라리 편해졌다. AC 1차 항암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만 울기로 했다. 울다가 이제 지쳤기 때문에. 더 이상 울고 싶지 않았다. 태어나 처음와본 암병동 주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또 울고 있었다. 내게 항암제를 놔주시는 간호사 앞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이제 울보이다. 나를 보던 젊고 예쁜 간호사님은 나를 위로해주셨다.


"일 년만 딱 고생하시면 금방 괜찮아지실 거예요. 제가 보장해요."


사실 암 진단을 받고 앞으로 괜찮을지 괜찮지 않을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하지만 간호사분의 말씀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다시 만나면 꼭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말 한마디 덕분에 저는 8번의 항암을 버텼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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