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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나는 항암 중이니까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하거나 암세포를 죽임.

by 하정

암 진단을 받고 첫 치료를 시작하기까지 대략 한 달의 시간이 걸렸다. 상급병원으로 자료를 옮겨야 하고 치료 전 몸의 상태를 알기 위해 정확한 전체 검사를 받아야 했다. 큰 병을 진단 받았지만 나는 내 몸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없었다. 병원에서 검사 스케줄을 주셨고 정해진 날짜에 가서 정해진 시간에 검사를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이름 조차 생소한 검사들이었다. 두려웠다. 검사해주시는 분의 작은 몸짓이나 눈빛에도 긴장했다. 한 달 동안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그저 기다려야했다. 누군가 내게 투병 중 언제가 제일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진단받고 한 달의 시간이라 얘기하고 싶다. 홀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던 그때 누군가 내게 그랬다. 지금 수영장 저 밑바닥에 있는 것이라 생각하라고.. 바닥에 있으니 이제 그곳에서 위로 솟아오를 일들만 있을 거라고. 위로였다. 암을 먼저 경험했던 이의 소중한 조언이었다.


AC라고 불리는 1차 항암 주사를 맞기 직전 너무 무서웠다. 그 긴장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가 가진 언어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하지만 막상 주사를 맞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주사가 나를 살려줄 것이다. 그리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지금부터 나의 치료가 시작된다. 앞으로 지금보다는 더 나은 상태가 될 것이다. 물론 아직 치료의 결과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그래서 나아지고 있다. 내 마음은 한결 더 편해졌다. 마음을 다잡고 다잡았다. 하지만 항암주사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첫 항암 주사를 맞은 직후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투병소식을 들은 친구녀석 하나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암 아니면 우리들 중 젤 건강하다고" 누가 들으면 웃겠지만. 역시 내가 건강체질이었지? 를 외치며 잘 이겨낼 수 있겠다고 자만했다. 미각이 상실되고 불면증이 왔지만 이 정도쯤이야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외쳤다. 왜냐하면 이겨내야 했으니까. 첫 항암 14일 차 열이 나서 입원했고 다음 항암을 위해 겨우 호중구 수치를 올려두었을 무렵 다시 2차 항암이 시작되었다. 여전히 입맛은 없었고 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상실된 미각과 울렁거림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때 식사는 내게 숙제 같은 것이었다. 음식을 먹어도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어떤 것도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러던 날 식탁 위에 놓여있던 딸기를 아무 생각 없이 먹었다. 맛있네? 딸기를 먹고 또 먹었다. 항암 중 날것의 음식은 조심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 후로 심하게 탈이 났다. 세상에 딸기를 먹고 탈이 나다니.. 장염에 심하게 걸려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다. 심지어 물만 먹어도 화장실에 갔다. 수액으로 겨우겨우 일주일을 버텼다. 네발로 다녔다. 서러웠다. 힘든 가운데 다음 주사를 맞지 못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다. 3차 그리고 4차까지의 항암이 진행되었다. 절반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항암 주사를 3주의 간격으로 맞는데 주사를 맞고 2주 정도는 몸이 힘들고 3주 차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다. 컨디션이 괜찮아질 때쯤 다음 항암이 시작된다. 물론 개인차는 있다. 진단 직후는 울기 위해 저녁마다 걸었다. 하지만 항암 주사를 맞는 동안은 살기 위해 걸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더욱 힘들었다. 궂은 날씨에도 매일매일 나가서 걸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걸었다. 날씨는 개의치 않았다. 생애 가장 고통스러운 이 시간은 다시 나를 찾는 길이다. 나는 치료되고 있다. 나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항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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