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차 항암을 끝내다.
항암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4차 이후로 항암약이바뀌었고 TC항암이 시작되었다. 자고 일어나면 몸무게가 1킬로가 늘어나는 것 같았다. 여전히 거울 속 내 모습은 낯설었다. 호중구가 떨어질까 봐 열심히 음식을 챙겨 먹고 컨디션 조절을 위해 열심히 걷고 잘 자려고 노력했다. 내 삶에 항상 최선을 다했던 것처럼 투병 중에도 늘 최선을 다했다. 몸은 아팠지만 나는 그대로였다.
항암 중이면 잘 쉬고 잘 먹고 무엇보다 나를 우선으로챙겨야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엄마였다. 내가 돌봐야 할 아이가 있었다. 6차 항암을 하고 나서 둘째가 중이염 수술을 해야 했다. 간단한 수술이었고 1박 2일의 짧은 입원이었지만 나 때문에 수술이 늦춰진 것 같아 미안했다. 신랑이 휴가를 내서 보호자로 병원에 갔다. 코로나가 극성인 시절이라 내게 병원에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집에 있을 수 없었다.옷을 챙겨 입고 여름이 다가오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두꺼운 스카프를 매고 병원으로 향했다. 항암 중이었지만 나는 그래도 엄마였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이리저리 뛰었다.
약해진 몸에 무리를 해서 그런지 심하게 감기에 걸렸다. 그리고 잘 낫지 않았다. 인생사 전부 내 맘 같지 않은 날들이었다. 하루 종일 기침을 했다. 낮에는 기침하느라 힘들었고 밤에는 기침으로 잠들 수 없었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도대체 이 기침은 언제쯤 멈춘단 말인가.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내 안의 생각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곤 했다. 하지만 내가 엄마라는 사실은 이내 부정적인 생각들을 멈추게 했다.
8차 항암을 하기 위해 암병동 주사실로 향했다. 마지막 날이었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드디어 막항의 시간이 왔다. 그간 고생했던 날들이 한컷 한컷 스쳤다. 진단받고 병원 앞에 주저앉아 울었던 내 모습.. 설거지를 하다가 그냥 주저앉아 울던 내 모습.. 1차 항암을 하기 위해 긴장하며 이 주사실에 와서 울던 내 모습.. 울며 쉐이빙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마음 아팠다. 하지만 오늘은 좀 기뻐해도 되지 않을까? 내게 말했다. 고생했다. 잘 이겨냈어. 나는 항암 하는 내내 내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 원래도 사진을 잘 찍지 않는 데다가 아프고 나서는 특히나 더 카메라에 담긴 내 모습이 싫어서 찍지 않았다. 그래서 투병 시절 내게 남은 사진은 많지 않다. 코로나로 보호자가 주사실에 들어올 수 없었다. 항암 링거를 꽂고 나서 간호사 선생님께내 핸드폰을 내밀며 부탁드렸다.
"선생님 사진 한 장 찍어주세요. 오늘이 마지막 항암 날이예요. 지금 이 모습 기억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
“다시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아서요. 열심히 관리하며 살겠습니다. ”
이렇게 이야기하고 울먹이는 내 모습에 간호사 선생님은 바쁘신 와중에 나를 카메라에 담아주셨다. 그래서 내겐 마지막 항암 날 사진이 가득하다. 가끔 사진첩을 열어보면 그때의 생각과 감정들이 지금도 고스란히 내게 닿는다. 그래서 아프다. 이제 아프지 말자. 아프지 말자. 앞으로 다시 아프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