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줄어들다.
암이 줄어들었다. 항암 1차를 맞고나서부터 신기하게 암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항암이 중반이 지났을 무렵 중간검사가 이루어졌고 초음파 결과에서도 종양이 항암제에 잘 반응하고 있다는 종양내과 교수님의 설명이었다. 암에 걸리고 처음으로 기뻤다. 뛸듯이 기뻤다. 진단 이후로 그렇게 환하게 웃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항암이 끝나자 드디어 수술 날짜가 잡혔다. 수술을 위해 다시 전체 검사를 받았다. 이제 적응이 될만도 한데수많은 검사들은 여전히 낯설었다. 종이에 빼곡히 적힌 CT, MRI등의 각종검사 목록들에 긴장했다. 검사실의 큰 기계들에 주눅이 든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혼이 나는 것 같다. CT검사를 위해 손에 주사하여 조영제를 넣고 검사실로 들어선다. 약이 들어가면 몸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검사자의 작은 눈빛과 움직임에도 눈치를 보고 있는 내가 보인다. 혹시 어디 이상한 곳이 있는 건 아닐까? 아무런 의미 없는 한마디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왜 자세를 변경해야할까? 혹시 이상이 있어서 자세히 찍으시려고 그럴까? 내 머릿속은 온갖 상상들로 분주하다. MRI검사는 특히나 더 어렵다. 소음을 들을 수 없도록 귀마개를 하고 불편한 자세로 40분 이상을 버텨야한다. 중간에 검사가 끊기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한다. 그래서 할 수 있다를 백번쯤 외친다. 지금 나는 덤덤하게 쓰고 있지만 그때 나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수술전 검사결과를 보는 의사선생님의 표정이 밝았다. 진료실에 들어서면 선생님 말씀 한마디가 떨어지기 전에 의사선생님의 그 표정이 나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부분절제수술을 기대했지만 나는 전절제 수술을 받게되었다. 전절제 복부복원 수술이었다.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한시간 넘게 들었는데도 수술전날 아침에 들어가면 저녁때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도 놀라고 또 놀랐다.
나는 첫번째 순서였다. 수술시간이 길어서였다. 발에는 수술을 위한 라인이 잡혀있었고 휠체어를 타고 수술실로 이동했다. 수술대기실로 들어서자 나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아....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이 내게 몰려왔다. 수술실로 들어가니 열명이 넘는 선생님들이 계셨다. 수술대 위에 오르고 나는 그 뒤더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을 뜨니 나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내 오른팔을 제외하고 모든 곳에 링거가 달려있었다. 그날 아마도 제일 심각하게 아픈 모습을 하고 있는 환자가 아니었나 싶다. 목이 말라서 기절할 것 같은데 수술이 끝나도 상황을 봐야해서 물한모금 마실 수 없었고 몸을 스스로 움직일수조차 없었다. 3일동안은 꼼짝없이 한 자세를 유지해야했다. 당연히 걸을 수도 없었다. 화장실도 혼자가지 못했다. 수술 이튿날 새벽 나를 체크하던 간호사는 급하게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바로 의사선생님이 달려오셨다. 나는 열이났고 피검사 후 수혈을 시작했다. 이튿날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나는 아무 말 없이 울기만했다. 내 눈물이 마를 날이 과연 오는가..